방학이 길다. 숨구멍 같은 봄방학이 없어진 두 달여간의 긴 겨울방학은 살을 에는 날씨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한다. 6년 동안 달고 있던 병아리 같은 초등학생 딱지를 떼고, 이제 중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이가 있어 내 마음도 같이 긴장모드에 돌입했다. 무난히 중학교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긴 겨울방학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아이와 나의 양 어깨에 매달려 통증을 불러왔다. 투정과 짜증과 칭찬과 회유가 난무한 '종합통증세트'. 덩달아 둘째도 눈치껏 옆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이 배배 꼬여 꽈배기상을 하고 앉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었다.
어느 날, 올림픽대로를 지나가던 중 옆으로 경사진 너른 눈밭을 보았다. '잠원 한강공원 눈썰매장' 잊을세라 얼른 메모장을 열어 적어두었다. 적어두었으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실천의 날이다. 썰매를 타러 가야 하니 오전에 할 일을 바삐 마쳐보자며 아이들과 으쌰 으쌰 공부를 끝내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했다. '목적지까지 17분'. 이렇게나 가깝다.
아이들의 달뜬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진다. 이렇게 가까운데 왜 이제야 가보나 하는 안타까움은 잠시 넣어두고, 아이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아이돌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운전했다.
와..! 눈이 시리다 못해 아렸다. 멀리서 보던 것보다 넓고 긴 슬로프에 꽉 채워진 하얀 눈에 잠시 눈이 멍해졌다. 후다닥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평일 오후 시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어 더 드넓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제까지만 해도 손끝의 감각마저 없애버리는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오늘은 코 끝에 스치는 바람이 솜이불처럼 포근하다. 게다가 새파란 하늘까지 얹으니 썰매장 풍경이 강원도에서나 볼법하게 그럴듯하다. '엄마, 사진 그만 찍고 얼른 타러 가~' 아이들과 튜브를 하나씩 끌고 슬로프를 따라 오른다.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아아아아~~~~ 악!!!!" 위에 선 안전요원이 발로 툭 밀어준 나의 튜브는 아이들을 저만치 앞서 슬로프를 질주했다. 슬로프 꼭대기부터 도착할 때까지 10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정말이지 엄청난 속도감 그 자체다. 눈썰매를 만만히 봤던 나는 호되게 신고식을 치렀다. 내려오자마자 엉덩이가 땅에 붙을 새도 없이 일어나 다시 슬로프를 오르는 아이들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엄마는 좀 쉴게~~~"
튜브를 서로 잡고 타기도 하고, 뒤로 내려오기도 하고, 기차처럼 타기도 하며 아이들은 큰 썰매장을 앞마당처럼 날아다녔다. 사람이 없어 줄을 서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흡사 전세를 낸 모양새다. '출발!'
'스으~~~~~윽, 촤아아~~'
'올라가자!' 나중엔 나도 아이들과 쉬지 않고 썰매를 탔다. 이렇게 쉼 없이 썰매를 타고 노는 것이 몇 년 만인지.. 썰매를 타고 슬로프를 내려올 때 반짝거리는 눈이
얼굴을 바삐 스친다. 유쾌한 싸대기다. 90분 남짓 한 시간 동안 썰매에, 빙어낚시에, 어묵 타임까지 완벽한 스케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