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새해 첫날부터 만 보 걷기를 시작했다. 하루 하나의 루틴으로 삼고 싶었다. 물론 매일 성공한 건 아니다. 하루를 거르고, 이틀을 거르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어느새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겼다.
동네 산책은 생각보다 많은 기쁨을 건네준다. 특히 해 질 무렵, 하늘이 붉다 못해 핑크빛으로 물들어 갈 때가 가장 좋다. 넋을 놓고 멈춰 서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새삼 사는 게 뭐 별건가 싶어진다. 이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저 감사하고 감탄하게 된다.
산책은 매일 지나온 길에서 늘 새로움을 보게 한다. 같은 길인데도 어제는 보지 못했던 풍경, 사물,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니까.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것들과 만날까. 그 작은 설렘이 지치고 힘든 날에도 기어이 신발을 신고 문을 열게 만든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침대에 누워 있거나 핸드폰을 쥐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던 내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음악도 끄고, 그저 걸을 수 있게 된 건 산책이 주는 기쁨들이 하나둘 쌓여 가는 걸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음악을 들으며 걸었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정작 주변의 소리에는 귀를 닫게 됐다. 새소리, 바람 소리, 자연이 있는 그대로 전하는 소리를 놓치게 됐다. 음악을 끄게 된 건, 그 소리보다 먼저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서였다.
산책이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늘 몸과 마음 돌보는 일을 뒷전으로 미뤄왔으니까. 이제는 걸으며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듣고, 말하기를 연습한다. 세상의 풍경을 눈에 담듯, 내 마음과 몸을 천천히 살핀다. 온전히 나를 향하는 그 시간이, 산책이 무엇보다 기쁜 이유가 되었다.
산책은 어렵지 않다. 아니, 처음엔 어려웠다. 그 어려움을 넘고 나면 익숙해진다. 익숙해지면 흥미를 잃기 쉽다고들 하지만, 매일 새로움이 펼쳐지기에 그럴 틈이 없다. 산책이 내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단순하다. 아무런 핑계 대지 말고, 그냥 신발을 신으라고. 문을 열고 한 걸음만 내디디면 된다고.
망설임과 걱정, 불안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산책은 그런 나를 꾸짖지 않았다. 그저 시원한 바람으로 달래주었고, 따뜻한 햇빛으로 위로하며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냥 시작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