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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Aug 15. 2023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나'다

첫 번째 독자에게 진심을 다하라


에세이는 내가 독자인 글이다.
나를 위안하고 내 생각을 정리하며,
내가 깨달은 것을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글이다
-기록학자 김익한 교수-



애들을 시댁에 보낸 황금 같은 시간, '김익한 교수님'의 유튜브대학 강의 '에세이 쓰는 법'을 듣다가 머리가 멈췄다.



에세이가 내가 독자인 글이라니.


여태껏 '에세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 감상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며, 일기와 다르게 읽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며 써야 한다'라고 알고 있었고, 그렇게 쓰고 있었다.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바보같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내가 쓴 글을 가장 먼저 읽는 독자는 '나'라는 것을. 


나는 지금껏 누구를 위한 글을 쓰고 있었는가?


'나는 에세이를 쓰고 있어. 에세이는 독자가 있는 글이야. 그러니 일기로 끝나지 않도록 메시지를 전해야 해. 위로를 건네고 공감을 이끌어내야 해. 읽기 편하게 깔끔하게 써야 해'라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3개월 정도 브런치에 글을 쓰니 일기 같았던 글이 점점 남들이 읽기에 괜찮은 글이 되고 있었다. 잘 읽었다고 해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셨기에,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독자인 글'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생각이 멈췄다.



물론 김익한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가 독자인 글'이라는 것은 '나만 읽는 글'이라는 뜻이 아니다. 독자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글을 가장 먼저 읽는 첫 번째 독자는 '나'이기에 내가 원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남을 위한 글을 쓸 수 도 있지만, 진정한 에세이는 '나'로부터 출발한다.


나를 위로하는,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내가 깨달은 것들은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기억하게 해주는 글인 것이다.


'나'를 위한 글, 그 글을 남과 공유하고 싶다면 이해하기 쉽게 손을 보고, 다듬으면 된다. 그런데 나는 모든 단계를 건너뛰고 처음부터 남에게 보이기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자유롭게 쓴다고 썼지만, 자유롭지 못했다. 초고를 완성하지도 못했으면서 쓴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던 나의 모습은 '잘 보이기 위한'글을 쓰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나에게 미안해졌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잘 못된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독자를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글을 왜 쓰기 시작했는지. 처음으로 돌아가야 답이 나올 것 같았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책을 쓰고 싶어서였다.



8년간 아이들을 키우며 속으로만 쌓인 나의 감정과 에너지는 밖으로 터져 나오기 직전이었고, 남편의 외벌이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뭐라도 해야 했다.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뒹굴던 내가 붙잡았던 것은 책이었다. 나를 다시 일으켜준 은인 같은 책.


무작정 읽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깨달으며.


아이와 함께 ADHD치료를 받고 조금 살만해지자 나와 같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아이의 앞날과 나처럼 힘든 부모들을 생각하니 읽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의 계시처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ADHD아이를 키우는 성인 ADHD부모들을 위한 책이 필요해. 그 책은 내가 써야 해. 나여야만 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와 아이의 이야기를. 이제 겨우 32년 살아 놓고선 나름대로 사연 있는 인생이라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글을 쓰는 것이 나도 살고 내 아이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처럼 ADHD를 가지고 태어나 ADHD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세상의 오해와 편견들 때문에 아이를 숨기고, 자신을 꽁꽁 숨겨야 했던 사람들. 속 시원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힘든 사람들.


그들을 대신해 외쳐주고 싶었다.

그래! 나 ADHD다! 내 아이도 ADHD다! 그게 뭐 어때서! 나 엄청 잘 살거든!!!!!!!!!


폭발하듯이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집에서 혼자 소리 치면 뭐 하겠는가. 나에겐 무대가 필요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다 깨부수고 싶었다.




유명해지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용보다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가 중요한 세상이기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할 수 있는 사람말이다.


언젠가 '나는 왜 달라? 나는 왜 ADHD야?'라며 혼란스러워할 내 아들을 위해, 내 아들과 같은 아이들을 위해 당당해지고 싶었다. 길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말해주고 싶었다. 앞에 있는 걸리적거리는 것들 다 치워놓을 테니 안전하게 따라오라고.



확실한 목표도 있었다.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고 그 책을 발판 삼아 커뮤니티를 만들고 강연을 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 그리고 ADHD를 가진 아동들의 치료와 교육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것.


나는 간절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에. 생계를 위해 일터로 뛰어 들어가면 나의 꿈이 점점 멀어질 것 같았기에.


그런 생각들은 나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었고, 글을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했다.


 

스스로를 채근했다.


잘 읽혀야 한다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공감이 되는 글을 써야 한다고. 그리고 그 글들을 모아 잘 팔리는 책을 내야 한다고.









남을 도우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 목표에는 문제가 없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책을 읽고, 글감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과정에도 문제는 없었다.



내 마음이 문제였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어마한 부담을 주고 있었다. 쓰고 나서도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써야 한다는 마음으로 썼기에.


남들은 글을 쓰고 나면 후련해진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뭔가 계속 찝찝하고, 답답했다. 진짜로 풀어야 할 감정들을 다 풀지 못했기에. 누가 볼까 두려워 꽁꽁 싸매고 있었기에.


첫 번째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데 누가 그 글을 읽고 글쓴이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글을 쓰는 내내 진솔하려고 노력했지만, 남에게 보이는 글을 쓰고 있었기에 모든 걸 꺼낼 수 없었다. 내 속에 있는 우울, 불안, 부정적인 감정과 상처, 꺼내기 두려워 묻어두었던 감정들. 힘들었던 지난날을 쓰면서도 '긍정적인 면'만이 보이길 바랐다.



언제쯤 다 꺼내 볼 수 있을까. 꺼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과연 내가, 남들이 보지 않는 일기장 위에도 써보지 못한 나의 어두운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누가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꺼내지 않고 숨겨놓은 것들이 냉장고 속 상한 음식들처럼 썩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강의를 다 듣고 나서 생각했다. 나를 위한 글을 먼저 쓰자고.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 고 '용기'있게 써보자고. 아직 두렵지만 지난날의 나의 상처와 잘못을 마주하자고.


토해내자.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쓰고 나면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모두 다 사라 질 것처럼.






여러분은 누구를 위한 글을 쓰고 계시나요?


첫 번째 독자에게 가장 먼저 위안을 주고 힘을 주는 글을 쓰고 계신가요?




김익한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에세이는 여러 의미로 해석되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에세이는 '나'를 위한 글이다.
에세이를 잘 쓰는 방법은 '용기'를 가지고 마음속 나의 여러 모습을 순수하게 표출하는 것이다.
글이 아름다울수록, 화려할수록 필자의 마음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문장이 아름 다운 것 보다, 마음 가는 대로 순수하게 표현된 그 마음이 아름다워야 진정 아름다운 에세이다.
문법, 문장의 간결성, 신선함, 표현의 아름다움 등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순수하게 마음을 쭉쭉 써내려 간 다음 조금 손을 보고 다듬으면, 남이 보기에도 편안하고 내 마음에도 쏙 드는 에세이를 쓸 수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저를 위한 글쓰기, 일기조차 제대로 쓰지 않고 보이는 글에만 집중하는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나를 위한 글쓰기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지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게 될까', '어떻게 써야 더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수 있을까'하는 생각들로 가득 차 글쓰기가 점점 부담이 되고 있었습니다.


나와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마음이 벅차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막힘없이 써 내려가던 이전의 제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다시 돌아가자고.


물론 글쓰기 실력은 성장시켜야겠지만 마음만은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쓰고 나면 기분이 상쾌했던 그때로 돌아가자고.


이미 잘하고 있으니까 초초해하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나의 글을 쓰자고.


독자님들께서는 제가 앞으로 쓰는 글이 이전의 글과 어떤 점이 다른지 모르실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은 알겠지요. 나를 먼저 생각했는지, 남을 먼저 생각했는지.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자신을 위한 글을 쓰면서 '진정한 나'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넋두리 같은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이미지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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