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엄마HD아들 Aug 28. 2023

ADHD, 아픈 게 아니라 다른 겁니다

아픈 아이라고 하지 마세요. 차라리 다른 아이라고 하세요.

나도 결국 듣고 말았다. 지인이 학습지 선생님께 아이가 ADHD라는 것을 밝혔을 때 들었다던 '아픈 아이'라는 말.


나는 매주 수요일, 아이와 함께 발달센터에 간다. 40분 수업에 부모상담시간 10분. 나는 그 시간 동안 선생님과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주로 지난 일주일 동안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담시간에 아이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듣는다.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 일주일 동안 어땠나요?'라고 물어보시면 나는 언제나 똑같은 대답을 한다. 잘 지내는데 동생이랑 몸으로 투닥거리는 일이 많다고 말이다.


그러면 선생님은 다른 집 형제들도 다 그런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나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다. 우리 아이는 잘 지내기 때문이다. 힘들 때도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정말 다른 아이가 된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잘 지낸다. 그런데 매번 '잘 지냈어요'로만 끝내면 아무런 걱정도 안 하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무심한 엄마처럼 보일까 이야기를 꺼냈다.



"낮에는 동생이랑도 잘 지내고 차분한데, 약효가 떨어질 시간에는 텐션이 높아져서 재우기가  힘들어요"



아이는 약효가 떨어지면 반동 효과처럼, 낮에 눌려있던 움직임에 대한 욕구를 분출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잠을 잘 시간이면 안방에서 동생이랑 투닥거리며 몸으로 노는데, 위험하기도 하고 동생이 힘들어할 때도 있다. 물론 둘째의 장난도 한 몫하지만 시작은 거의 첫째여서, 첫째에게 잔소리 폭탄이 날아간다. 두 살 터울의 6살 둘째는 형의 텐션이 감당이 안되어 울고 소리 지르고 육탄전을 벌이는데 나 이때가 하루 중 제일 힘들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둘째가 안쓰러우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랬군요, 그럼 동생한테 형이 아파서 약을 먹는데 저녁시간이 되면 약효과가 떨어져서 조절이 잘 안 돼서 그래, 조금만 이해해 줄래?라고 말해보시면 어떨까요?





내가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머리가 멍했다.




나는 '아파서'라는 단어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 아이의 상담선생님께 아파서라는 단어를 듣게 될 줄이야.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들은 이야기에 너무 당황스러워서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우물쭈물했다.



지인이 학습지선생님에게 '아시다시피 우리 아이가 아픈 아이잖아요. 진도는 천천히 나가도록 할게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을 때 노발대발하지 않았는가. 당장 학습지 끊으라고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생각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며 지인보다 더 흥분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막상 나에게 그런 상황이 닥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아이의 이야기를 다정하게 잘 들어주시는 분이다. 부모 상담시간에도 아이를 많이 칭찬해 주라고 말씀하시고, 늘 아이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신다. 동생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늘 형의 자존감을 지켜주라고 하신다.


지난주에는 첫째와 둘째가 서로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온 가족이 모여서 '서로 칭찬하는 시간'을 게임하듯이 매일 가지라고 하셨다.


그런데 형이 아파서 그런 거라고 하면 동생에게 아픈 형의 이미지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첫째는 동생에게 멋진 형이 되고 싶을 텐데 어찌 엄마가 둘째에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아프다고 하면 몸이 아프다, 좀 더 크면 마음이 아프다 까지만 생각한다. 그렇기에 말해 봤자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끊임없이 물어볼 것이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원망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씁쓸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아이는 어디선가 '아픈 아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겠구나, 나도 아픈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구나. 이게 현실이구나.




아픈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몸이 아프다고 하면 걱정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하면 위로해 준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어디가 아픈 걸까?



ADHD는 아픈 게 아니다. 다른 것이다. ADHD증상으로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아픈 게 아니다. 나쁜 게 아니다.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아픈 아이가' 되는 것이다.







선생님이 어떤 의도로 이야기한 것인지는 잘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어린 둘째가 이해하기 쉬울까 생각하다 보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첫째와 둘째가 싸우지 않고 잘 지내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첫째의 행동으로 힘들었을 둘째의 마음을 다독여 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내가 가장 답답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런 이야기를 듣게 한 ADHD도, 조금만 배려해서 이야기했으면 좋았을 선생님도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남편도 저도 아이가 ADHD 때문에 조절이 안 되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6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아이가 이해를 할지..



나름대로 대답을 했지만, 끝까지 우리 아이 아프지 않아요. 아파서 약 먹는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못 했다. 



같은 상황을 겪었던 지인이 그 자리에서 큰 목소리로 "어머~ 선생님 우리 아이 안 아파요!"라고 이야기했던 것과 너무 비교가 됐다. 지인에게는 당장 학습지 선생님 바꾸라고 하며 길길이 날뛰었으면서, 막상 내가 같은 상황에 놓이니 입이 안 떨어졌다. 



나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선생님 우리 애 아픈 거 아니에요' 했을 때 미안해할 선생님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고치고 싶은 습관이다.

나는 또 내 아이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했다.


남들이 내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표현하는지는 내가 바꿀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남들이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아니다. 당사자가, 그의 부모가, 그의 가족들이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 애가 ADHD가 있어요'혹은 '우리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어요'라고 말하기가 꺼려 저서 '우리 애가 좀 아파요'라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다.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으나, 아이를 생각해서 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거나, 너무 말하기 힘들다면 '우리 애는 조금 다른 아이예요'라고 말했으면 좋겠다.


성인 ADHD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때 '제가 좀 아파요', '제가 병이 있어요'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좀 달라요'라고 말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 스스로가 아프다고 표현해 버리면 우리는 정말 아픈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프다는 표현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사회적인 의미가 어떤지 우리는 알고 있다. 결코 좋은 뜻은 아니라는 것을. 말을 하는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배려는 고맙게 여겨야 하지만 그 속에 있는 편견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학에서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고, ADHD환자라고 부르는데 아픈 거 맞잖아?'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그저 다수의 사람들이 정한 것일 뿐이라고. 우리는 아픈 것도 비정상도 아닌, 그저 소수일 뿐이라고 말이다.


ADHD증상으로 인해 본인이, 주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사회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편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인정하면서 내 생각대로, 내 신념대로 살면 되는 것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다른 사람이 정한 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이에겐 부모가 우주다. 전부다.

내가, 우리 가족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난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야,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생각은 엄마인 내가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자. 적당히 선을 긋자. 상처받지 말고 당당히 말하자 '우리 아이 건강해요'라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챙기다 내 아이에게 상처 주는 일은 하지 말자.







윤우상 저자의 <엄마심리수업>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냄새. 아이에겐 엄마의 냄새가 밴다.


고기를 먹으면 고기 냄새가 배어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를 채듯, 내가 아이를 걱정스럽게 말하면, 아이에게 내 걱정의 냄새가 배어서 다른 사람들도 내 아이를 걱정스럽게 본다는 것이다.


내가 아이를 힘들다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도 그 냄새를 맡고 그 아이를 문제가 있는 힘든 아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진 다는 것을.


정신을 차리자. 내가 '아이가 저녁시간에 과잉행동을 해서 힘들어요, 동생도 힘들어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아파서'라는 이야기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힘든 것, 걱정스러운 것을 티 냈기 때문에 선생님도 같은 마음으로 피드백을 해준 것이다.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한다. 생각을 확실히 한다. 나의 중심, 나의 생각을 지키자. 누가 뭐래도 부모는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부모는 아이의 우주니까. 


다른 사람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럴 수 있지 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 지켜야 한다. 내 생각을, 신념을, 중심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상담선생님이 말한 대로 둘째에게 '형이 아파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면? 절레절레.

그 자리에서 '우리 아이 아프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지만 그래도 칭찬을 해본다.



잘했어. 남을 이해하면서도
나의 생각을 지킨 것,
남의 말대로 행동하지 않은 것,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 것.
다음부터는 당황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자.






사랑하는 내 아들아, 엄마가 세상의 모든 편견과 오해를 다 막아 줄 수는 없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단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행동을 하든 사랑으로 가르치고 바르게 키우겠다고 말이야.

어떤 시련과 좌절도 이겨 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건강한 생각을, 마법 같은 회복의 힘을 너에게 물려주겠다고 약속할게.

너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예쁜, 사랑스러운, 건강한 아이란다. 그러니 씩씩하게 당당하게 자라거라. 엄마가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게.

사랑한다. 내 보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