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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엄마HD아들 Oct 28. 2023

항우울제, 항불안제와의 안녕

우울증, 불안장애를 동반한 성인 ADHD, 진단명 좀 줄여보자

2022년 3월, 평생 관리해야 하는 고혈압, 당뇨라도 되는 것처럼 두 손 가득 들어오던, 줄줄이 사탕 같은 약봉지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약국에서 잠시 담소를 나누게 된 아기엄마가 나와 아이의 약을 보고는 흠칫 놀라면서 '어디가 아프길래 약이 이렇게 많냐'라고 물었지만 '하하'웃을 수밖에 없어 씁쓸했던 2022년 가을의 어느 날도,


을 줄여보자며 야금야금 용량을 내리시던 의사 선생님의 모습도. 모든 순간이 생생하다.




2023년 가을.

약의 개수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내 머릿속 걱정은 조금씩 커져갔다. 장장 20개월을 함께한 버팀목과의 안녕을 준비해야 한다니. 두려웠다.


단약을 결정한 것은 의사 선생님의 제안도, 나의 의지도 아니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졸림'과 '멍함'이었다. 1년을 넘게 먹으면서 잘 지내왔는데 1년 반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약들 간의 질서가 무너졌다. 엉망이 되었다.


ADHD의 치료제 중 하나인 콘서타의 각성은 나의 잠들어 있던 뇌를 깨어나게 했고, 원래 가지고 있던 불안증상과 콘서타 부작용으로 인한 긴장은 항불안제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평생을 괴롭히던 수면장애와 콘서타의 부작용인 불면은 항우울제와 신경안정제(수면제)로 잠재웠으며, 수면제로 인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를 다시 콘서타가 흔들어 깨웠다.


서로 상부상조하며 돌고 도는 일상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모든 것이 다 깨져 버렸다. 


2023년 여름부터 시작된 이겨내기 힘든 피로감은 몇 달간 계속되었고 결국 졸음을 유발하는 약들이 강제 퇴출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단약을 하게 된 것이다. 약물치료에도 한계가 있음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늘 최선을 다해 약처방을 해주셨지만 결국 내 몸뚱이는 내가 알아서 케어해야 한 다는 것.






약봉투를 처음 받아 들던 순간에는 우울, 불안과 함께 동고동락한 7년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완전한 단약이 결정된 순간에는 매일 아침저녁 약을 삼키던 20개월 동안의 나의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주르륵 펼쳐졌다.


우울증, 불안장애 때문에 약물치료를 할 때 사람들은 증상이 호전되는 것 같으면 의사와 상의 없이 임의로 단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것이 재발률을 높여 더 오랜 시간 힘들게 약물치료를 해야 한 다는 것을 알기에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처럼 꼬박꼬박 약을 잘 챙겨 먹었다. 10년 가까이 나를 괴롭힌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떨쳐내기 위에 10년의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해도 받아들이고 꾸준히 치료를 이어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2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계획에 없던 단약은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많은 금단증상을 불러일으켰다.


약을 점진적으로 줄이면서 단약을 시도했기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었다. 몇 달간 여러 계열의 약을 줄이고 끊었지만 마지막으로 SNRI 계열의 항우울제를 끊고 나서 나에겐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다. 다른 약들도 단약을 하고 나서 두통과 근육긴장 불면정도는 있었지만 최강의 상대는 벤라팍신계열의 약이었다.


반감기도 짧은 약이라 약물을 끊고 이틀째부터 왜 약을 먹지 않냐고, 약을 먹을 시간이라고 나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두통과 근육긴장 불면은 물론 구역감, 구토, 설사등의 위장장애 증상이 나타났으며 현기증과 피로감은 나를 두 손 두 발 다 들게 했다.


세상에, 약을 복용할 때 부작용만 걱정했지 약을 끊고 나서 금단증상이 이리 심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너무나 괴로워 의사 선생님이 원망스러웠다. '에프람(SSRI계열)보다 두통이 조금 더 심할 거예요'라고만 이야기해 주었던 선생님께 당장 달려가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주 치료약으로 먹고 있었던 에프람이 졸림을 유발할 수 있는 약이라, 몇 달간 계속된 '졸려요'라는 나의 말에 졸림을 덜 유발하는 벤라팍신계열로 바꾸어주신 것인데 금단증상이 이리 심한 줄 알았다면 차라리 '졸림'을 선택했을 것이다.



약을 먹어도 힘들어, 끊어도 힘들어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나는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 최우선순위만 남기고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열망하던 '브런치 북 공모전'을 포기하였으며, 아이들의 학습 지도 시간을 줄였고 난장판이 된 집속에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집안일만 하며 버텼다.


내가 한 것이라곤 반년 넘게 유지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던 새벽기상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기록, 아이들의 식사준비뿐이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두통, 어지러움으로 힘들지만 이제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체적인 금단증상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약해졌던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동안 '약을 끊어서 힘드니까 나는 쉬어야 해'라는 마음이 강했지만, 완벽한 컨디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저 주어진 상황 속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금단증상으로 인해 더 이상 할 일을 미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점점 나아질 것이고, 그동안 만들어놓은 강력한 습관으로 약물 없이도 안정된 일상을 살 것이다.


단약을 하고 고생했지만 얻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다시는 항우울제를, 항불안제를 복용하지 않기 위해 행복하게 살겠다는 강한 의지다. 지옥의 금단증상을 한번 맞보고 나니, '몸 컨디션만 돌아오기만 해 봐라, 세상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보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항우울제, 항불안제가 빠지고 ADHD약인 콘서타와 저녁에 먹는 최소용량의 수면제만 남은 단출해진 약봉지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길고 길었던 진단명이 줄어들었음이, 우울과 불안이란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음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이제는 말하겠다. 나는 우울증 불안장애를 동반한 성인 ADHD가 아니라, 그냥 ADHD라고. 너무 졸려서 의도치 않게 시작한 단약이지만, 나는 20개월 동안 우울과 불안을 극복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단약을 하니 눌려있던 감정들이 다시 하나 둘 튀어나온다. 기쁠 때 더 크게 웃고, 슬플 때 쉽게 눈물이 나며, 행복할 때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오름이 느껴진다. 나의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평온하게 유지시켜 주었기에 참 고마웠던 약들이지만, 생동감을 느끼기 힘들었던 지난 20개월.



이젠 안녕을 고해 본다.




그동안 고마웠어, 이젠 나 혼자도 괜찮아.
다시 우울과 불안이 찾아와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의 힘이 생겼어.
다시는 만나지 말자!









구독자님들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마지막으로 글을 발행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네요. 뭐라도 쓰자고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한 달을 쉬어버려 민망할 따름입니다. 예기치 못하게 단약이 빠르게 진행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한 달을 보냈는데, 그 와중에도 계속 브런치가 눈에 밟히더라고요.


아직 컨디션이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의지를 더 강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력하며 한 번 더 성장해보고 싶어요.


마지막글 제목이 글쓰기 싫어서 쓰는 글이었는데도 저를 기다려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단약지옥에 한번 다녀오고 나니 아프지 않은 몸상태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한 달씩 자리를 비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프고 나면 성장한 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브런치를 시작하고 계속 편하게 부담 없이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다 보면 쓰고 싶다는 것을요. 완벽한 상태에서 쓰는 완벽한 글은 애초에 없다는 것을요. 그냥 지금 나의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을요.


우울할 땐 우울한 글을, 즐거울 땐 즐거운 글을, 편안할 땐 편안한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을, 나의 기분을 거스르는 글이 아닌 나의 기분에 충실한 내면이 소리치는 것들을 쓰면 된다는 것을요.


한 달 동안 구독자수도, 조회수도, 라이킷도 댓글도 다 신경 쓰지 않고 내려놓고 나니 이제 정말 홀가분 해졌습니다. 이젠 무리하게 뛰다 오래 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으려고요!


천천히 마라톤을 완주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랜만에 눌러봅니다.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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