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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Dec 05. 2023

감동란으로 비롯된 감동

  아이들과 마주 앉아 감동란을 처음 먹던 날, 짭쪼롬하게 간이 된 흰자에 퍽퍽하지 않은 노른자까지. 표정을 보니 우리집 일곱 살, 네 살 꼬마들도 감동란의 맛에 감동을 받은 게 역력해 보였다. 갑자기 감동란을 먹던 둘째, 시안이가 물었다.

시안 : 엄마 근데 감동받았다는 게 뭐예요?
엄마 : 감동받았다는 건 눈이 띠용 나올 정도로 맛있다는 뜻이지!



  며칠 뒤, 점심으로 인스타그램에서 본 레시피대로 주먹밥을 만들어 라이스 페이퍼로 감싸 구워주었더니, 쫄깃한 주먹밥 맛을 본 시안이가 ‘우와 나 감둥받아떠!’ 하고 말하는데 너무 사랑스러워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시안이는 둘째답게 어휘력이 좋아서 또래에 비해 사용하는 단어가 많은 편인데 가끔 이렇게 엉뚱한 허당미로 귀여운 매력을 뽐내서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감동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일곱 살은 감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재이한테 물었다.

엄마 : 재이야, 감동받았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재이 : 응, 음식이 엄청 맛있다는 뜻이지!
엄마 : 맞아, 그런데 편지를 받거나 엄마가 재이한테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도 감동받았다고 말하지 않아?
재이 : 어? 그러네? 음 그럼 감동받았다는 건 마음이 엄청 행복하다는 거네!


  아 명쾌하다. 나는 큰 아이와 나누는 이런 대화가 너무 좋다. 아이의 입을 통해 듣는 반짝반짝 명쾌한 단어의 뜻이 좋고 오래 기억해두고 싶어서, 더 나아가 온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어서 무시로 단어의 뜻을 묻고 싶은데 자꾸 괴롭히면 아이가 그만 물어보라고 귀찮아할까 봐 질문을 아끼는 중이다.



  한때, 아이를 더 특별하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엄마의 세련된 언어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아이와 관련된 일화를 기록할 때면 최대한 예쁘게, 그렇지만 담백해 보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쓴다. 훗날 아이들이 커서 내가 기록해 둔 것을 보고 흐뭇한 웃음을 지을 수 있도록 정성껏 마음을 담아 본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작은 순간까지도 반짝이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었구나. 우리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구나.’ 알아주면 좋겠지만, 알아주지 못 한다고 해도 괜찮을 마음.


  오늘 밤도 이렇게 작은 마음 하나를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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