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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pr 27. 2024

사랑을 차곡차곡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잠시 시간이 남아 시립 도서관에 갔던 날. 주차장에 들어가다 커피 맛집의 위용이 느껴지는 카페와 눈이 슬쩍 마주친 순간, 갑자기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아침 열 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라 카페가 문을 열었을지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다가 커피 가격을 보고 흠칫 놀랐다. 카페는 영업 중이었지만 시그니처 커피가 6천 원인 메뉴판을 보니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열망이 사그라들었다. 다음 일정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는데, 그 짧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공간에 지불하기에 6천 원은 다소 호사스러운 가격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결국 나는 도서관 1층 카페에서 맛있어 보이는 카페를 바라보고 앉아 2,5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인스타그램에 궁상맞은 스토리를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같은 날 오후, 중국어 수업을 마치고 나와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장단이가 메시지와 함께 돈 봉투를 보내왔다. 정산할 것도 없는데 웬 봉투? 메시지를 읽어 보니 내가 호사스럽다고 내려놓은 ㅇㅇㅇ 카페의 커피를 사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동네에 살지도 않는 애가, 나도 아침에 한 번 보고 잊은 카페 이름을 대체 어떻게 알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어안이 벙벙하여 전화를 했더니, 지도 검색으로 그 카페를 찾아봤다고 했다. ’검색해 보니까 거기 커피 맛있다더라 내가 사 줄 테니 가서 맛있는 커피 마셔라, 두 번 마셔라‘ 당부를 하길래 봉투를 열어 보니 커피 두 잔 가격이 폭죽과 함께 터져 올랐다.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궁상 한 번 떨었을 뿐인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장단이와는 깔깔깔 웃으며 통화를 끝냈지만 자꾸만 마음이 울렁울렁 요동쳤다. 이 사랑은 대체 뭔가, 내 속은 대체 왜 이렇게 생각이 없는 것이며, 장단이의 속은 대체 왜 이리도 깊은 것인가. 장단이가 웃자고 베푼 사랑에 죽자고 덤벼들어 감동을 키워나갔다. 곱씹을수록 고마움이 커져갔다.


  이튿날, 장단이에게 받은 사랑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감동이 내 마음을 울려왔다. 민지와 카톡을 하던 중 이사 날이 확정되었다고 소식을 전했더니, 바로 답이 왔다. ’그럼 이사 전 날 저녁 우리 집 와서 먹고 가‘ 아니 대체 얘는 이런 사려 깊은 멘트를 어떻게 이렇게 즉각적으로 날릴 수 있는 걸까? 같은 동네에 살면서 민지네가 두 번의 이사를 겪는 동안 이런 생각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마 민지가 베푼 호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몰랐을 것이다. 민지 덕분에 나도 앞으로 이사를 앞둔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호의가 하나 늘었다. 이사 전 날 저녁 식사 대접.


  그리고 오늘은, 사랑하는 책방의 사장님들께 사랑을 넘쳐나게 받고 울렁울렁거리는 감동이 가라앉질 않아 급기야 갱년기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공간의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 쌓아 온 애정이 이렇게 깊어질 수 있다니.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내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이가 된 이 관계가 오늘따라 새삼 신기하고 감사하고, 소중했다. (정말 갱년기인가, 불안하게 왜 자꾸 뭉클한 거지.)


  나는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 열심히 다정한 척 하지만 실상은 뾰족한 성정을 숨길 수 없는 예민한 사람이다. 자기애가 넘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애랑 친구 하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내 곁을 지켜주는 이들은 대체로 마음밭이 넓고 넉넉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까다롭고 예민한 나를 품어주는 이들의 넉넉한 마음에 기대어 내가 외롭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늘 고맙다.


  매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는 사랑 덕분에 나는 요즘 외로울 틈이 없다. 역시, 사랑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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