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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May 16. 2024

단단하고 든든한 취향

  이것도 안 맞고 저것도 안 맞고, 안 맞는 것 투성이인 남편과 찰떡으로 들어맞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음악 취향이다. 다행히 그와 잘 맞는 몇 가지가 갖는 힘이 무척이나 강력한 덕분에, 우리는 햇수로 10년 동안 무탈하게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2013년 가을, 썸타던 시절에 그와 GMF을 간 적이 있다. 먼저 나는 서울까지 운전해서 가는 차 안에서 ‘불독맨션’의 신나는 음악들을 선곡하는 그의 센스에 반했고, 그는 내가 싸 온 김밥을 먹으며 나의 음식 솜씨에 반했다고 했다. (사실 그 김밥은 우리 엄마가 싼 것이고, 훗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그는 속았다는 사실에 무척 분개했다. 그는 n 년째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또, 체조 경기장에서 스탠딩으로 장기하 공연을 보다가 인파에 밀려 넘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에 나를 붙잡아 준 그에게 무척 고마웠던 기억도 있고, 핸드볼 경기장에 좌석이 없어서 좁은 계단에 붙어 앉아 이승환 공연을 보았던 설렘도 무척이나 생생하다. 그런데 이게 다 11년 전 일이라니.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다니. 그 사이 우리에게 아이가 둘이나 생기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아무튼, 그와 함께 아이들 없이 즐기는 공식적인 페스티벌은 11년 만이었다. 매년 결혼기념일에는 아이들 없이 둘이 여행을 하곤 했는데, 남편이 올해는 ‘뷰민라’를 가면 어떻겠냐며 제안을 해왔다. 이사 이틀 뒤에 페스티벌을 간다고? 상상만 해도 힘들 것 같아 거절했는데 막상 가면 좋을 거라는 그의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정말, 막상 가면 좋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아니까. 분명 진짜 좋을 테니까.


  페스티벌 당일, 몸 컨디션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별로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 소식까지 있었다. 절망적이었지만, 취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막상 가면 좋을 거라는 실낱 같은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올해 봄, 그와 내가 사랑한 뮤지션 ‘한로로’의 무대로 시작한 ‘2024 뷰티풀 민트 라이프’. 잔디 마당을 가득 채운 음악과 사람들을 보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간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료, 혹은 부담 없는 가격의 페스티벌은 종종 다니곤 했지만, 비싼 돈 내고 온 고퀄리티 페스티벌은 너무 오랜만이라 자꾸만 기분이 둥실둥실했다. 그렇지만, 둥실둥실 뭉게구름은 곧 비구름이 되어 잔디 마당을 뒤덮었고… 한로로의 무대가 끝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푸트 트럭 앞에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내리더니, 갑자기 우두두두두두. 딱 울고 싶었다. 아니 내가 무려 11년 만에 올림픽 공원에 왔는데, 하늘도 야속하지. 어쩜 이럴 수가 있나. 비를 맞으며 케밥을 먹고 (맥주도 마시고 싶었는데 엉엉) 돗자리를 접었다. 실내 공연장으로 들어가려는데 ‘너드 커넥션’의 음악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서 우비를 입고 비를 맞으며, 잠시 비 오는 페스티벌의 낭만을 즐겨보았다.


  좋긴 좋은데, 이 정도로 좋아서는 어림없었다. 더 강력하게 좋아야만 했다. 나의 기분을 자꾸만 짓누르는 것은 다름 아닌 비. 낭만이고 뭐고, 비를 맞으며 공연을 보는 것은 너무 꿉꿉해서 싫었다. 본래 계획은 그와의 옛 추억을 떠올리며 잔디밭에서 ‘불독맨션’의 신나는 음악을 듣고, ‘페퍼톤스’까지 신명나게 즐기다가 실내로 들어가 ‘10cm’ 스탠딩으로 마무리하는 거였는데, 이 페스티벌을 마지막까지 즐기기 위해서는 무조건 실내여야만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40대니까. 쩜쩜쩜…


  핸드볼 경기장으로 들어갔더니 2층 좌석은 자리가 없어서 1층 스탠딩 존으로 가야 한다는 날벼락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저에게는 연속으로 스탠딩을 할 체력이 없는데 이를 어쩌죠?) 울며 겨자 먹기로 스탠딩 존에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사람이 많은 공간에 들어가 빼곡히 붙어있으니 자꾸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공포감이 자꾸만 커져 태어나 처음으로 숨쉬기가 곤란한 지경에 이르러 2층 진입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렵사리 2층 진입에는 성공했으나 제일 끝 자리라 무대와 일직선이어서 보이는 건 하나도 없고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약간 헛웃음이 나는 자리에 앉았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남편이 눈치 게임을 통해 계속해서 더 좋은 자리를 확보한 덕에, 마치 영화 ‘설국열차’를 찍는 느낌으로 꼬리칸 탈출! 기대하던 ‘소란’의 무대가 시작될 즈음에는 2층 펜스를 잡는 영광까지 누리게 됐다.


  소란, 데이브레이크, 십센치는 너무도 익숙한 잘 아는 맛이라 이번에는 새롭게 불독맨션, 페퍼톤스, 십센치의 조합으로 즐겨보고 싶었는데, 날씨 때문에 차선으로 택한 조합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서 역시 어쨌거나 아는 맛이 최고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소란의 공연은 대략 십 년 만에 보는 것 같았는데, ‘가을목이’를 들으니 자동으로 ‘우윳빛깔 고영배’를 외치게 되는 내 모습에 나도 놀라고 남편도 웃었다. 소란 공연은 처음이라던 남편과 함께 북유럽 댄스도 추고, 농익은 밴드의 미친 합을 보며 감탄하고, 같이 즐기고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남편과의 음악 쿵짝, 내가 정말 좋아하는 포인트!


  소란으로 시작된 감동은 데이브레이크에서 화룡점정!! 반 백 살 오빠들의 미친 에너지가 남편과 나의 체력을 바닥까지 쏟아내게 만들었다. 대망의 헤드, 내 사랑 십센치의 무대가 남았는데 이를 어쩌나. 걱정이 무색하게, 십센치의 공연은 편안했다. 편안하고 좋았다. 이것은 분명 우리와 같은 노장 관람객을 위한 주최측의 배려일 거라고 확신했다. 에너지는 데이브레이크에서 다 썼는데, 공연 후 자꾸만 기억에 남는 것은 십센치의 무대였다. 2010년부터 지속되어 온 나의 십센치 사랑 때문인 걸까. 권정열 오빠의 목소리는 분명 내 마음 속 무언가를 울리는 힘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꾸준히 사랑해 왔다. 나만의 십센치가 모두의 십센치가 되어 체조 경기장에서 단독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괜시리 마음이 헛헛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외모는 아이돌로 변했어도(?) 목소리는 여전히 내 사랑 권정열이었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남편을 옆에 두고 내 ‘부동의 첫사랑’을 만난 느낌이었달까.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쌓아 온 취향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마흔 살의 나를 먹여 살린다. 아이를 낳고 난 뒤로는 새로운 취향을 쌓을 여력이 없어서 한동안은 음악을 듣는 것조차 귀찮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음악이 듣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그때 그 시절 나를 붙잡아 준 음악들을 찾아들었고, 그 취향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그렇게 생긴 아는 맛, 고마운 맛, 든든한 맛.


  사실 이번 페스티벌을 다녀오며 제일 고마운 건 남편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이삿짐 정리를 하며 대차게 한 판 붙고 그 고마움이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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