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0일 토요일 날씨 맑음
어제 저녁에 한국에서 보낸 택배가 모두 도착했다. ems 택배를 보낼 때 수량과 금액을 적어야 하는데 귀차니스트답게 대충 적었더니 세 박스 중 한 박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출국 전 날 보냈던 터라 중국 주소가 없어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남편의 동료 주소로 보냈는데, 나의 대충대충이 그에게 굉장히 번거로운 수고를 만들어 주게 되어 무척 송구스러웠다.
한 박스가 세관에 걸려서 박스 안의 물품 가격을 다 입증해야 한다는데, 입고 쓰던 오래된 물건을 어떻게 증명하나요? 영수증을 만들어서라도 첨부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남편의 동료에게 너무 큰 민폐를 끼치는 상황이라 반송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하필이면 그 박스는 신발 박스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나마 남편은 운동화를 신었지만 아이들은 크록스, 심지어 나는 신고 온 슬리퍼가 전부였기 때문에… 정말 감사하게도 동료가 진술서를 써 보겠다고 해서 마지막 희망을 걸었는데, 며칠 뒤 통과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반갑던지. 23층에 사는 우리의 이웃, 정말 귀인을 만난 기분! 그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에 나의 온 마음을 담았다. 땡큐 쏘 머치. 씨에씨에.
중국은 차를 많이 마셔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커피집이 적다. 심지어 마트에도 커피가 없다. (있긴 한데 모카맛처럼 달고 맛없고 비싸기만 한 것뿐) 중국 스타벅스는 쓸데없이 비싸서 (톨 사이즈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5,700원 정도!) 그 돈이면 차라리 중국 프랜차이즈의 티(3천 원 대)를 마시는 게 훨씬 이득인 기분이다. 그래서 지난 며칠간 커피를 못 마셨더니 카페인이 무척 절실했는데, 한국에서 보냈던 택배 안에 커피가 들어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했다.
출국하면서 이민 가방에 전기밥솥을 챙겨 오며 내솥에 아끼는 잔 두 세트를 포장해 넣었다. 무사히 정저우까지 날아온 커피잔에 커피를 마시며 아껴둔 초콜릿을 꺼냈더니, 다시 익숙한 내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이제 중국에서 먹고사는 일이 조금 익숙해져서 오늘은 처음으로 관광을 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정저우의 랜드마크인 옥수수 빌딩. 근처 몰에서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러 갔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았다. 사람 구경 실컷 하고 랜드마크에서 사진도 찍고, 신나게 걸었던 우리의 첫 관광.
모든 게 낯선 곳에 왔는데 외롭지 않고 낯설지 않은 건, 사랑하는 나의 박씨들과 함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하니 그곳이 어디라도 두렵지 않은 기분. 시안이의 손을 잡고 걸으며 앞서 가는 남편과 재이의 뒷모습을 보니 하나도 두려울 게 없는 천하무적의 마음이 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나는 너무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다행이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