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2일 월요일 날씨 맑음
마음이 힘에 부쳐 알 수 없는 짜증으로 가득했다. 아침에 아이들 건강검진 하러 가서 122번 번호표를 뽑은 순간부터가 고난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오후에는 아이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이 있었다. 새 학년 시작 전에 선생님과 아이들이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과 학부모의 만남에 아이들이 동행하는 격이었다. 시안이의 담임 선생님은 한국분이시라 지난주에 뵌 적이 있고, 재이 선생님은 오늘 처음 뵀는데 에너지가 너무 좋았다. 선생님은 한국 친구들이 많아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하셨고, 이제부터 남편과 나 역시 그녀의 한국인 친구가 되었다. 굉장히 유쾌한 만남이었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선생님은 말을 할 때 영어와 중국어의 경계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그게 나뿐만 아니라 재이의 눈에도 특별해 보인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제 여기 학교 다니면 재이는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할 수 있어 좋겠다고 하니, 자기도 선생님처럼 영어랑 중국어를 다 말할 수 있게 되는 거냐며 얼굴이 희망으로 가득 찼다.
학교 행사는 영어와 중국어로 진행된다. 오늘도 담임 선생님께서 영어로 말씀하시면 보조 선생님께서 중국어로 통역해 주셨다. 지난주 오티 때와 다르게 오늘은 아이들의 생활과 직결된 만남이다 보니 조금 더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까 그 시간이 내게 상당한 피로를 안겨준 것 같다. 기관에 처음 보내는 것도 아니라 결과적으로 다 아는 이야기를 듣는데 불필요하게 큰 에너지를 쓴 기분이었다. 나의 하찮은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니 좋게 생각해도 될 텐데 오늘은 그냥 다 짜증이 났다.
기분도 별로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에 무척 피곤해서 일찍 자려다가 책을 조금 읽으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한 편 읽었다. 중국 오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사 왔던 <음악소설집>에 실린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는데, 외국어가 소재로 등장해서 나 혼자 괜히 운명적인 기분이 들었다. 읽고 나니, 기분이 조금 괜찮아진 것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