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 종소리>가 들려온다
젊었을 적에는 멋을 좀 부리고 싶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돼도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고전을 ‘붙들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순간 그것이 덧없게 느껴지면서 나의 읽는 생활은 즐거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재미를 쫓는 독서만 하기에도 읽고 싶은 책이 넘쳐 시간이 부족한데 굳이 나를 괴롭히는 독서까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나는 고전과 담쌓은 사람인데, 순전히 김하나 작가님에 대한 팬심으로 <금빛 종소리>를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약간 괜히 읽었다 싶은 느낌도 든다. 평온했던 나의 읽는 생활이 이 책으로 인해 즐거운 괴로움을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자꾸만 어디선가 금빛 종소리가 들리는데, 들리지 않는 척을 할 수가 없다. 들리지 않는 척을 할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다시 고전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아니,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금빛 종소리>를 읽다 말고 이북으로 <순수의 시대>를 찾아 읽었다. 역시 쉽지 않았다. 육아를 우선에 둔 삶을 살면서부터는 늘 시간에 허덕이며 살아왔던 터라, 마음이 조급하여 읽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평소에 읽던 속도로 읽었더니 읽자마자 글자들이 휘발되는 느낌이 들었다. 책의 초반에 ‘문장은 시대의 호흡을 반영한다.’는 작가님의 말에 끄덕이며 밑줄까지 그어놓고, 나는 또 21세기 육아맘의 속도로 읽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0.8배속으로 읽어 볼 셈이다. 찬찬히 느린 숨을 쉬어가며.
게다 프롤로그에 밝혀주신 고전 읽기의 즐거움, 세계인과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공통분모가 생긴다는 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작가님께서 아르헨티나에 계실 때, 스페인어 선생님과 <제인 에어>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게 작가님의 독서 경험을 충격적으로 확장시켜 주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이제 막 해외 생활을 시작한 나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훗날 언젠가의 충격적인 경험을 위해 차근차근, 하나씩.)
올해 초, 책발전소 북클럽에서 김하나 작가님과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을 읽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게 신기했다. 읽었던 책을 작가님의 글로 다시 만나니 내게 남아 있던 이야기가 훨씬 더 풍성해지며 마음이 몽글몽글한 행복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금빛 종소리>에 소개된 다른 고전들도 찾아 읽어본 뒤, 다시 이 책을 펼쳐 볼 셈이다. 나의 고전 생활의 안내자가 되어주실 김하나 작가님께서 성심껏 써 주신 이 책을 아주 꼭꼭 씹어 즐겨볼 작정이다.
‘여둘톡’에서의 작가님은 닮고 싶은 멋진 언니였는데, 금빛 종소리의 작가님은 범접할 수 없는 독서 경지에 이른 높으신 분의 아우라가 가득했다. 오늘밤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마저 닮아보고 싶도록, 책을 통해 손 내밀어 주신 김하나 작가님께 아주 큰 감사와 더 큰 사랑을 보내야지. (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