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 수요일 날씨 안개
이번주는 방과후 수업이 없어서 아이들을 직접 픽업해야 하는 터라 학교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부르고 나면 ‘제발 냄새 안 나는 택시가 오게 해 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게 된다. 담배 냄새도 힘들지만, 택시에 깊게 밴 사람 냄새(?)도 담배 냄새 못지않게 힘들 정도로 지독한 경우가 많아서 택시 타기 전에는 늘 긴장되는 마음.
다행히 오늘 택시는 아무 냄새도 안 난다. 차도 깨끗하고 좋다. 연세가 지긋하신 기사님 인상도 좋아 보인다. 럭키비키!
기사님께서 목적지를 보시더니 뭐라고 길게 말씀하셨는데 내가 알아들은 단어는 꼴랑 두 개. 시아스(=아이들 학교)와 대학생. 스피킹은 물론이거니와 리스닝도 안 되는데, 기사님과의 스몰 토크가 시작됐다.
- 나 한국인이야
- 한궈???????(=한국), 중국말
- 미안, 나 중국어 못 해
- 시아스? &₩/@;₩!2!;7/-!;@/“/)2):?
- 나 못 알아들어(=팅부동) 내 아들 시아스 학생
- 너, 회사, 정저우?
- 아니 내 남편 회사 정저우
- (엄청 긴 문장 중 드문드문 들린 단어 다섯 개) 너 한궈 하오 쭝궈 하오(=좋아하다)
- 나 한궈 하오, 땅란!!(=당연히!!)
- 허허허 &₩/@;₩!2!;7/-!;@/“/)2):?
- 팅부동 나 여기 8월에 왔어 잘 몰라
- &₩/@;₩!2!;7/-!;@/“/)2):?
- 팅부동 요즘 나 중국어 공부해 중국어 어려워
기사님께서 갑자기 누군가와 음성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더니, 지금 내 차에 한궈런이 탔다고 자랑하며 뜬금없이 상대방에게 영상으로 나를 보여주셔서 무척 당황했다. 중궈런들 초상권 개념 없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직접 당해보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기사님께서는 나와 눈을 맞추며 대화를 시도하셨다. 대화의 반 이상이 뚜이부치(=Sorry!)와 팅부동(I don’t know.)이었고, 기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긴 문장 가운데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겨우 단어 몇 개였지만, 중국에 와서 가장 길게 나눈 대화(?)라 마냥 기분이 좋았다. 기사님께서도 외국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신기하신 듯, 팅부동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주셔서 감사했다.
만약 중국어를 조금 더 할 줄 알았더라면 ‘내가 얼른 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올게 잠시만 기다려줄래?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택시에서 보낸 시간이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랬는데, 마지막에 와장창…
학교에 도착해서 내리려는데 기사님께서 갑자기 핸드폰을 들고 한궈런 사진을 찍으셔서 매우 당황. 무슨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내렸다. 사람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는 걸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너무 무례한 행동이지만, 중국 사람들은 초상권 개념이 없어서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나 역시도 당황스럽고 불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 진짜? 너무 웃긴다‘까지만 했으면 좋겠다. 이는 마치 내 남편 욕은 나만 했으면 좋겠는 마음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내가 내 남편 욕한다고 상대방도 같이 욕하면 듣기 싫은 것과 같다. 나는 중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중국의 이런저런 모습을 아니까 욕해도 괜찮지만(?) 언제부터인가 중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욕을 하면 마음이 불편했다. 다 그런 건 아닌데, 이래서 그런 건데, 이런 좋은 점도 있는데, 괜히 내가 나서서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든달까?
기사님과의 대화에서 발음이 귀여워 꼭 한 번 써보고 싶었던 ‘땅란!(=당연하다)’을 당당히 외쳤던 것처럼, 당연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이 좋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좋은 점도 있고 싫은 점도 있다. 문화가 달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힘든 것들이 있었는데 맥락을 알고 나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기도 했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다른 나라도 아니고 중국이라니. 중국 싫다고, 정말 싫다고, 생난리를 피웠는데 막상 와서 살아보니 살아진다. 해외 살이라서 힘든 거지 중국이라서 힘든 건 크지 않은 것 같다. 모든 게 익숙하고 편안한 내 나라에서 사는 게 아닌 이상, 어느 나라에 가서 살든 다 똑같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의 나는 중국 사람들한테 받은 크고 작은 호의가 감사해서, 나중에 한국에서 중국인들 만나면 정말 잘해줘야겠다고 다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넉 달 전의 나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 할 마음으로 바뀌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예민하고 까다롭단 소리 많이 듣고 사는 나조차도 중국에 살아보니 살만하다. 직접 겪어보면 친절한 중국인들도 많다.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국을 조금만 미워하면 좋겠다. 중국 사람들을 조금만 싫어하면 좋겠다.
사이좋게 지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