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탑방이주민 Jun 24. 2023

드디어 해봤다, 케이팝 수업!

저는 파리 한국어 교사입니다_교육

고등학교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왜 한국어 수업에 등록했는지 그 동기와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예상했던 대로 절반 이상이 K-문화의 영향을 한국어 학습의 가장 큰 동기이자 이유로 꼽았고, 그래서 한국 문화와 관련된 수업을 하고 싶어 했다. 나 또한 문화 수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항상 이런저런 생각만 했었고, 또 대학에서의 수업은 커리큘럼을 따라가기에 바빠 그 이외의 수업을 구상하고 실현하기엔 여유가 없었기도 했다. 고등학교 수업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다양한 수업들을 시도해보고 싶어서였기에 학생들의 이런 반응이 반갑기도 했다. 그래서 꼭 문화 수업을 하자고 다짐하며 첫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학기는 끝나 가는데 계속 고민만 하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기 전 학기의 피날레를 문화수업으로 마무리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소재는 케이팝이었다. 학생들의 흥미도 흥미지만 가장 자신 있고 그래서 꼭 해보고 싶었던 수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짜고짜 의미 없는 춤 수업을 할 수는 없는 일. 빌드업이 필요했고 그래서 수업을 구성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먼저 학습자들은 이제 막 한글을 익힌 초급 중의 초급 단계로 당시 ‘-이에요/예요’, ‘-아/어요’와 같이 가장 기초적인 문형과 문법들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렵지 않은 문형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노래를 고르고자 했다. 두번째로는 안무가 쉬워야 했다. 수업 목표는 항상 ‘언어’이고 또 케이팝이나 문화가 교실에 앉아 있는 모든 학생의 학습 동기가 아니기에 안무 익히기가 수업의 핵심이 아니어야 했다. 그래서 선정한 노래가 세븐틴 부석순의 ‘파이팅해야지’였다. ‘-아/어야지’는 ‘-아/어요’와 동일한 동사 변화 형태를 보여 학생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가사 또한 단순 사랑노래가 아니기에 조금 다른 내용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즉, ‘파이팅해야지’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올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이해하고, 그만큼 정확한 문맥 속에서 ‘-아/어야지’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게다가 포인트 안무도 쉬웠다! 


수업은 총 3차시로 구성했다. 아무리 쉬운 안무라도 준비 운동 없이 시작한다면 몸에 무리가 올 수 있다. 그래서 1차시에는 몸 풀기에 필요한 어휘와 표현들을 공부하고 카운트에 필요한 한국어로 숫자 세기도 공부했다.


- 위, 아래, 옆, 오른쪽, 왼쪽, 앞, 뒤, 안, 밖

- 머리, 눈, 코, 입, 귀, 목, 어깨, 팔, 손, 허리, 엉덩이, 다리, 무릎, 발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이후에 이어질 준비 운동과 춤 수업에서 교사-학생 간 의사소통에 꼭 필요한 어휘와 표현들이라고 설명을 하니 학생들도 더 열심히 익히고자 하는 것 같았다. 언어 사용의 목적과 동기가 확실할 때 학습자의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수업이었다.


2차시는 가사를 나누어주고 문장들의 구조를 파악하면서 시작했다. 학생들은 주격에 사용될 수 있는 조사인 ‘은/는’, ‘이/가’와 목적격 조사인 ‘을/를’을 배운 상태였기에 단어들을 몰라도 주어, 목적어, 서술어를 구분해 내는, 한국어 문장 구조를 이해하는 활동을 했다. 다음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문장들을 불어/한국어를 통해 같이 보고,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파이팅해야지’라는 표현을 그 속에서 이해해 보았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동사들을 사용하여 ‘-아야지’, ‘-어야지’, ‘-해야지’의 3가지 형태의 동사 변화를 연습했다.


3차시의 시작. 이렇게 손발이 잘 맞았나 싶을 정도로 착착 교실을 정리하는 아이들. 연습복까지 준비해 와 갈아입고는 비장한 얼굴로 내 뒤에 선다. «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자, 이번엔 오른쪽 팔! » 동작을 바꿀 때마다 이쪽이 왼쪽이니, 저쪽이 오른쪽이니 하며 너도 나도 한마디씩 한다. ‘팔’과 ‘발’을 헷갈려 하던 학생들도 준비 운동 20분에 두 어휘를 점점 정확히 구분하고 있다. 워밍업이 끝나고 실제 안무를 수업할 땐 학생들이 지금까지 수업 중에 가장 큰 집중력과 빠른 습득 속도를 보여줬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50분 수업에 모두가 땀범벅이 되고 교실은 이산화 탄소로 가득찼지만, 학생들은 그 어느때보다 즐거워보였다. 케이팝 수업으로 둔갑시켜 신체 관련 어휘, 숫자 세기, ‘-아/어야지’ 문형을 습득시키는 목표도 달성하여 학생들을 속인 느낌이 들만큼(?) 보람도 가득찼다. 


이번 수업의 의미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책상 뒤에서 조용하기만 했던 몇 학생들이 세상 힙하게 교실을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다. 교실 앞에 서있는 교사와 책상 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라는 제도화된 교육 형태 이외에도 다양한 교육의 모습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어쩌면 어떤 학습자들에게는 더 필요한 형태이지 않을까 한다. 또, 항상 이러한 형태의 수업만을 하다보니 교사로서도 다른 구조의 수업을 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껴왔다. 안전한 길이 있는데 굳이 다른 시도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학생들에게도 교사에게도 더 ‘좋은’ 수업을 할 수 있다면, 더 많이 도전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용기를 얻게 된 수업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들 자랑 타임~ : https://www.instagram.com/reel/CtNTNfSO3rX/?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id=MzRlODBiNWFlZA==

작가의 이전글 퀘벡 불어와 (대)한(민)국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