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하루

by 소정

세상이 멈춘 후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부끄러움과 상실감 속에 갇혀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 못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차례로 찾아와
학교로 나오라고 간곡히 말했지만,
나는 고개만 저었을 뿐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가 없는 내게는 그 어떤 말도,
어떤 위로도 무너진 세상을 채워줄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학교 가는 길도, 건물도, 친구들도,
아침 해와 밤하늘의 달과 별도
모두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달라진 건 단 하나,
내 곁에 더 이상 엄마가 없다는 사실과
다시는 예전처럼 웃을 수 없는 내가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학교, 소외와 비교의 공간

학교에서는 수업에 집중할 수조차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친구들과 장난도, 말대답도 하지 않았다.


웃고 떠드는 친구들을 볼 때면,

그들에게는 따뜻하게 맞아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홀로 고립되었다.

학교는 소외와 비교의 공간일 뿐, 내게 희망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발견했다.
그곳은 곧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엄마를 생각하고, 엄마를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멀리 동쪽 산비탈의 엄마 무덤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직 잔디가 뿌리내리지 못한 황톳빛 봉우리는
내 마음처럼 허허롭고 메말라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무덤을 바라보며
점심도 잊은 채 눈물에 젖었다.


그러다 결국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들켜
옥상 문은 굳게 잠기고, ‘출입 금지’ 구역이 되어버렸다.


집, 차가운 공간 속 책임

학교가 내 마음을 머물게 하지 못했듯, 집 또한 차갑고 냉랭했다.
엄마의 부재는 집안 공기마저 따스함을 잃게 했고, 사랑의 온기마저 빼앗아 갔다.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서면
밀린 집안일과 동생들의 말썽이 나를 기다렸다.
숙제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집안 곳곳에는 엄마의 향기 대신 쓸쓸함만 감돌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친구들과 장난치며 교복치마가 펄럭이도록 뛰어다니던 장난꾸러기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쥐 죽은 듯 말없이 자리만 지키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왜 그렇게 일찍 철들어야 했는지,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훗날 남편을 잃고, 또다시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시간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사람에게는
숙명처럼 따라붙는 죄책감이 있다는 것을.


열여섯 소녀의 마음에는 이미
어른의 고통이 들어앉아 있었다.


엄마의 빈자리

새벽마다 아침밥을 짓고, 동생들의 도시락을 싸서 학교로 보낸 뒤
나도 무거운 걸음을 떼어 학교로 향했다.


밤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던 동생들의 울음은
내 안의 설움과 겹쳐, 마음속에 무거운 돌처럼 나를 짓눌렀다.

엄마 생각이 깊어질수록
객지 생활로 늘 집을 비웠던 아빠에 대한 원망도 깊어졌다.


‘엄마는 외로움이 병이 되었던 거야.’
뒤늦게라도 책임을 묻고 싶었다.


엄마가 떠난 뒤, 후회하듯 술에 기대어 산소를 지키던 아빠의 모습은
내 원망을 더 키울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을 꾸려갔다.
어설픈 손끝으로 차린 밥상 앞에서
동생들의 울음이 멎을 때면
‘엄마 없는 집, 내가 지켜야 한다’는 다짐이 굳어졌다.


나는 세상의 전부를 잃었지만
그 빈자리는 내가 채워야 할 책임과 삶의 무게로
하나하나 채워져야 했다.

철부지 소녀에서 엄마로


엄마 없는 집,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나는 매일을 버티며 조금씩 엄마의 모습으로 자라났다.


엄마의 빈자리, 그 커다란 상실은
나를 송두리째 무너뜨렸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내 작은 두 손과 마음으로
엄마가 남긴 사랑과 책임을 이어받는 것,
것이 바로 나의 길임을.


나는 그렇게 철부지 소녀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는,
엄마이자 딸로 성장해 갔다.
부서진 세상 속에서도,
나는 살아내며, 사랑하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작가의 이전글그날, 세상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