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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벗 Sep 10. 2023

체온으로 기억하는 사람

잦은 이사로 점철된 내 학창 시절은 적응의 연속이었다. 국경과 도시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과 짧게 만나고 헤어지면서, 나에게 장소와 사람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어느 한 곳을 떠나게 되면, 그곳에서의 인연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어리긴 했지만 한 때 사랑한다고 믿었던 옛 연인들조차 지나온 장소에 묻혔다.


어디선가 떠나왔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잘 지냈다. 당시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했고, 연락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될 정도로 자주 만났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내 전부인양 살았던 것 같다. 좋지 않은 기억력이 한몫했을 것이다. 전에 있던 장소에 관한 기억은 금방 퇴화하고, 두고 온 친구들과 연락은 끊기고, 나에게 적응은 전부였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나는, 하나에 집중하면 그것을 끝마칠 때까지 다른 일은 잘하지 않는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잘 지내기도 바쁜데 과거의 인연들까지 챙기는 것은 어린 나에게 무리였다.


그럼에도 친한 친구와 속 깊은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은 걸로 기억한다. 속이 그렇게 깊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곳을 떠나면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 정도로 남게 된 사람들이 많다. 나와 비슷한 유년을 보낸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그는 삶의 안정감에 대해 말한다. 안정감은 익숙한 곳에서 아는 사람들과 오래 살아감을 통해 나온다는 통념과는 다르게, 그에게 안정감은 낯선 곳에서 환영받고 받아들여지는 것을 통해 찾아온다. 새로운 환경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과 받아들여졌을 때의 안도감, 이 경험들이 반복적으로 내 안에 계속 쌓여 장소와 사람의 경계를 허물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리 좋은 환경과도 사람과도 언젠가는 이별할 것이고, 새로운 곳에서 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쩌면 내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었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필사적이지 않았고, 마음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의식 속 존재했던,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한 최선과, 무의식적으로 언젠가는 떠날 걸 알아 망설여졌던 마음이 두 가지 색 점토가 섞여 있는 상태로서 존재하고 있었구나를 최근 들어 느낀다.


지나온 곳들을 생각 속에서 되돌아 걷다가, 그곳의 기온보다 그 사람의 체온으로 기억하는 만남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심을 많이 나눈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진심을 나누는 것, 물리적으로 멀어지더라도 그 사람의 체온을 기억하고 안부를 묻는 것, 다시 만나게 되면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온도 차이를 느끼고 기쁘게 수용하는 것. 내가 체온으로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기억하게 될 모든 사람들께 진심을 진심으로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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