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인해피 Jan 20. 2024

우울증이 어느새...

행복도 잠시 무슨 일이 

정말 두 아이들 키우느라 나의 삶은 없었다 가끔씩 친구들이 만나자는 전화를

했지만 그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귀한 아이들에게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남편은 아이들 잠시 맡겨놓고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으며 수다 떨고

오라고 했다. 나는 아이들을 놔두고 갈 수가 없었다. 어린이집에

보낼 때 이외에는 아이들 돌보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과였다

그런데 남편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나를 위한 시간이 전혀 없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에너지 소비도 컸다.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했지만 아이들은 '문제아'가 되어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 알아야 했다. 모래놀이상담 끝나고 부모코칭을

받았다. 상담사는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하였다 


"욕심을 내려놓으세요"
"아이들 눈높이에서 대해 주세요"
"책보다는 뛰어놀게 하세요" 등등

엄마가 원하는 육아방식과는 정 반대였다. 모든 게 내 탓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평가는 '엄마가 다 잘못이라니'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내가 나쁜 엄마인가?

나는 아무리 코칭을 받아도 그때뿐이었다. 내 행동패턴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코칭을 받은 후 며칠간은 아이들에게 잘하는 듯싶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니 다시 제 자리 걸음이었다. 나도 나를 바꾸고 싶었다

쉽게 바뀌지 않는 나 자신이 싫고 힘들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았다.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거울 속에 있었다

출산 후 체중이 줄지 않았다. 결혼 전 60킬로였는데, 출산 후 71킬로. 변함이

없었다 출산 전에 입던 예쁜 옷들도 더 이상 입을 수 없었다. 불어난 몸에

맞는 바지도 없었다. 편하게 입는 고무줄 바지, 임신했을 때 입었던 임산부

옷이 편했다. 

남편도 나에게 '사랑한다'라는 그 흔한 말도 하지 않았다. 

흔하디 흔한 스킨십도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부부관계도 1년 동안 하지 않았다.

그때는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결혼도 만난 지 6개월 만에

했기 때문에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뚱뚱하고 못생겨진 나를 좋아해 줄 리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더 이상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못된 엄마이자

매력 없이 소리만 치는 아내였다.

 

그 순간 '나는 여기 왜 있는 걸까? 결혼은 왜 한 거지? 그토록 원했던 결혼,

그토록 바랬던 아이들인데, 난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걸까?' 

억울했다. 나는 할 만큼 했다. 아니 정말 열심히 살았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난 억척스러운 엄마이자 아내였다. 


특히 나는 '절약왕'이었다. 돈 한 푼에 벌벌

떠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장에 가면 500원 1000원 깎는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바로 나였다. 돈을 쓰면 돈 가치를 반드시 해야 했다. 

즉 돈을 썼는데 제 가치를 못하면

몹시 화가 났다. 학원에 아이들을 보낼 때면 절대로 결석은 있을 수 없었다.

물건을 사건, 음식을 사건 간에 제 값을 못하는 건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는 것 그때는 몰랐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가난에 대한 상처가 깊은 것 같았다. 나중에 자기 계발을 한 후 알았지만

작은 돈에 연연해 있었던 내 행동과 의식이 결국 가난을 끌어당긴 것이었다.


아이들과 수시로 짜증을 내며, 내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을 썼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맞을까 두려움에 떨었다. 성악가에 대한 꿈이 있었던 

나였기에 목소리도 상당히 컸다. 소리를 치면 정말 아이들도 남편도 모두

쥐 죽은 듯 조용히 행동해야 했다. 어느새 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좋은 엄마도, 좋은 아내도 더이상 아니었기 때문에

이제는 돈을 벌어 가정 경제에 보태고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심리학적으로 나는 Codependent(상호의존성)을

가진 사람이라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때 존재가치를 느끼는 사람이었다

내가 엄마로서, 아내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생각하니

돈이라도 벌어서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경력단절 여성이 되어 있었다


결혼하고 몇 개월간 초등학교 방과 후  영어강사로 일했었다. 다시 나가서 

일을 하려니 젊은 사람들과 경쟁이 어려울 것 같았다. 영어도 많이 잊어버린

상태였다. 무엇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답은 없었다.

무능한 나 자신이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우울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작가의 이전글 두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