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 리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고전 명화들을 어려워한다. 어린 시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재밌게 읽었지만 그 많은 등장인물이 다양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거기에 역사가 얽히며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을 일일이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실 명화를 설명해 주는 책에는 손이 잘 가질 않았다.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서양 미술의 명화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 만나는 7일의 미술 수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펴면서 생각했다. '길고 복잡한 역사 속 이름들이 나오고, 이 그림에 숨은 뜻과 의도는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설명하겠지.' 그런데 중간쯤 읽다 보니 이 책이 가진 의외의 관전 포인트는 작가가 현대 사회의 시각으로 비슷한 작품들을 비교하며 그 차이를 알아채게끔 유도한다는 것이다.
가령 책에서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딧'의 서로 다른 세 가지 버전이 소개된다. 카라바조의 1599년 작품 속 유딧은 여리여리하고 소녀처럼 가녀리며, 생선 손질도 안해봤을 듯한 고운 얼굴을 찌푸리면서 적장의 목을 베고 있다. 한편 여자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1620년 그린 유딧은 왠만한 남자는 때려잡을 듯한 팔뚝과 결연한 표정으로 홀로페르네스의 숨통을 끊어낸다. 힘차게 뿜어나오는 피는 그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비슷한 예로 '수산나와 장로들'이라는 작품도 책에서 소개된다. 루벤스와 알레산드로 알로리가 각각 그린 작품에서는 장로들에 의해 희롱당하는 수산나의 몸짓이 마치 그들을 환영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한편, 앞서 유딧을 강인하게 그렸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 속 수산나는 장로들의 손길을 어떻게든 피하려 하며 온몸으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종교화, 왕실가의 초상화 등을 비롯한 고전 그림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야 하기 때문에 누가 그리든 그 결과물이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 옛날에도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천차만별의 그림들이 탄생했다.
여성의 누드를 대하는 화가들의 서로 다른 태도 또한 흥미로웠고,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책에서 소개한 조르조네의 1508년작 '잠자는 아프로디테'에서 벌거벗은 여성은 눈을 내리깔고 있어, 작품의 주문자이자 주 관람자인 남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그려졌다고 한다.
그런데 조르조네의 동료 화가였던 티치아노는 '우르비노의 아프로디테' 속 여성이 관람자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도록 그렸다. 그녀의 시선은 다분히 의도적이어서, 옆으로 살짝 기울어진 고개와 은근히 흘겨보는 눈매가 유혹적으로 느껴진다. 화가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그림이 나온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티치아노는 수동적인 여자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당돌한 여성에게 매력을 느꼈던 게 아닐까?
이렇듯 작가의 설명을 따라 하나하나의 작품을 따라가다보니 그림 자체보다 작가에게 더 많은 관심이 가고 자연스럽게 명화들이 훨씬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화가들은 그저 나보다 조금 더 옛날 사람이고, 살면서 조금 더 유명했을 뿐,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각자의 고유한 성격이 그림 속에 모두 드러난다. 각 작품들이 소장된 미술관의 정보를 확인하며, 다음에 유럽 여행을 갈 때는 꼭 이 작품들을 보고 오리라 다짐한다.
해당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