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의 해외 직접구매(직구) 대책 헛발질로 전국이 들썩였다. 정부가 국가통합인증마크(KC) 미인증 제품의 해외직구 금지를 밀어붙이다 역풍을 맞고 사흘 만에 철회한 것이었다. 정부의 대책을 놓고 ‘탁상행정’이란 지적이 많은 곳에서 제기됐다.
이후 정부 내 각 부처에선 직구 품목 안전·위해성에 대한 검사를 분담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방안을 내놨지만, 이 또한 결국 국민과 정부 부처 내 혼선만 더욱 부추기고 있는 상태다. 이전부터 직구 활동은 이어져 왔는데, 정부는 왜 하필 지금 무리수를 써가면서까지 KC 미인증 제품 직구 금지를 들먹이는 것인가.
그 이유는 사실 Aliexpress·Temu 등 중국 전자상거래(C커머스) 플랫폼의 공격적인 국내 확장세에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조치가 과연 타당했는지에 대해 WTO 협정 규범에 입각해 심층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WTO 규범 중 하나는 바로 무역에 관한 기술장벽(TBT)이다.
TBT는 무역상대국 상호 간에 인증절차, 상이한 표준, 검사제도, 기술규정 등을 채택 또는 적용해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어렵게 함으로써 무역의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KC 미인증 제품 직구 금지를 내세운 것도 TBT 사례에 해당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 온라인 쇼핑거래액 규모는 약 60조 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해외직구 규모는 약 1조 6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동기간 해외직구 금액은 9.4% 증가했지만,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 증가율 10.4%에 비해 다소 낮은 수준이다. 1분기에서 대부분 국가의 직구는 감소했지만, 반대로 중국의 직구는 53.9% 증가했다. 이로써 중국만이 압도적인 최대 직구 대상국(56%)으로 부상하게 됐다.
해외직구는 생활 품목에 집중되고 있다. 동시에 C커머스의 국내 이용자들도 급증하고 있다. 중국의 직구가 늘어나면서 안전과 품질에 대한 소비자 불만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무료배송을 앞세운 C커머스발 저품질 상품이 국내로 유입돼 별다른 검수 없이 유통되지만, 별다른 제재 수단도 없다 보니 덤핑을 넘어 악성 재고 떠넘기기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정부는 소비자들의 불만과 국내 기업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고자 일거양득의 정책으로 ‘직구 금지’라는 카드를 꺼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적절한가를 판단하기 위해선 먼저 WTO의 전신인 GATT 체제의 ‘도쿄라운드’에서 체결된 내용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도쿄라운드에선 TBT가 복수국간협정으로 체결돼 각국의 상이한 표준화 제도가 국제 무역 활동을 방해하지 않도록 가입국들의 의무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는 사실상 C커머스를 타깃으로 직구 금지 조치를 내렸다. 최악의 경우, 한중 FTA의 TBT 협의 위반사항으로 중국 측으로부터 WTO 제소까지 당하는 상황까지 직면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현재 최악으로 치달은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기존 C커머스 상품의 유해성 문제에 불만을 품은 몇몇 소비자들을 위해 만든 정책이 전체 해외직구 이용자들의 반발을 초래할 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부는 정말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직구 품목의 안전·위해성 검사 강화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TBT 협정의 정보 및 기술 지원 부문을 근거로 개도국 회원에게 제품 안정성 강화 기술을 원조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만약 정부가 TBT가 아닌 덤핑 문제(반덤핑 관세)를 염두하고 있다면, 중국판 슈퍼 301조의 보복관세로 막대한 손해를 입을 각오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국내 기업들도 가성비 높은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보답하고, 불필요한 유통마진 축소를 위해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