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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Aug 25. 2023

#5. 누군가 그토록 원하던 전쟁이 일어났다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와 흐름을 같이 한다. 굳이 인류 전체의 역사까지 갈 필요도 없다.   

국사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고조선부터 삼국시대, 고려, 조선을 거쳐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전쟁이 없던 적이 거의 없었다.


미국의 역사학자 윌 듀란트에 따르면 최근 인류 역사 3,500년 중에 전쟁이 없던 시기는 270년뿐이라고 한다. 인간이 도구를 쓰고 직립보행을 하고 ‘슬기로워’ 지면서 생존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되면서 욕심과 욕망, 탐욕이 커졌다.


내 차를 긁은 여자의 얼굴을 보기까지 약 2분의 시간이 더 지나갔다.  

지하주차장 출입구에서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걸어오고 있다. 그녀의 엄마가 손짓을 하며 이쪽으로 오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엄청난 굉음과 땅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지진인가? 지진이라면 지하는 위험하다. 빨리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계단보다는 차량 입구로 나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엄마는 딸을 향해 달려갔고 나는 주차장 입구를 향해 달렸다. 지하주차장안에도 대여섯 명의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차를 버리고 입구로 달려 나오는 사람이 눈에 보였다.  

지상에 나와서 360도로 밖을 살폈다. 곳곳에서 연기가 나고 섬광이 번쩍이기도 했다. 특정 방향이 없고 무작위적으로 연기가 나는 걸로 봐서 지진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이런 폭발은 전쟁을 의미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의 핸드폰에는 일제히 재난문자가 빗발쳤다.


위급재난문자  

[서울특별시] 오늘 오후 4시 30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급재난문자  

[국방부] 오늘 오후 4시 북한 도발 감지, 수도권 경계경보 발령  

민간인은 가까운 지하 대피소로 이동하시고 휴가 중 군인은 즉시 복귀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전쟁이라니 젠장… 하필 내가 사는 시대에 전쟁이라니… 짜증을 낼 시간도 없이 내가 서있는 곳에서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포탄 하나가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자’


민방위 훈련을 할 때나 영화를 보면 전쟁이 나면 보통 지하 방공호로 숨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럼 방금 있었던 지하주차장이 오히려 안전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하주차장으로 가기로 했다. 나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데, 아까 봤던 딸과 엄마가 나오고 있었다.   

딸은 왼쪽 팔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엄마도 다리 여기저기가 긁혀 있는 것 같다.   

엄마가 다급하게 전쟁이 난 거냐고 물었다.


“네, 그런 거 같아요. 재난문자도 오고 밖에 폭탄이 계속 떨어져요. 지하가 더 안전할 거 같아요”  

“아이고 지하에서 겨우 나왔는데 다시 가라고?”  

“밖에 있으면 건물에 깔릴 수도 있고 폭탄에 맞을 수도 있어요”  

“희영아, 니 아빠한테 전화해 봐”  

“전화는 되는데 안 받아”  

“일단 우리 아파트는 폭탄 안 맞은 거 같으니까 저는 지하로 가 있을게요, 어떻게 하실래요? “


엄마가 잠깐 고민하더니 손사래를 치고는 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는 다시 지하로 뛰어갔다. 지하주차장 벽과 기둥 몇 곳에 금이 가 있었고 아파트 복도로 통하는 출입구 쪽 유리는 깨져있었다. 아까 딸의 팔에 피는 이 깨진 유리 때문인가 보다.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하고 있었다.    

잠깐 집에 가서 생존에 필요한 짐이라도 싸서 나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잠깐이라도 추이를 지켜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에 있는 차 중에 그래도 가장 튼튼해 보이는 차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핸드폰을 켜고 네이버를 열었는데 접속이 되지 않았다. 구글은 접속이 됐다. 구글에 ‘전쟁’이라고 쳐보자 다양한 내용이 검색됐다. 주요 뉴스 부분에 우크라이나 전쟁 기사가 보인다. 아직 기사가 올라오진 않은 건가…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감이 더 커진다.


자 합리적이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 보자.  

북한에서 공격을 해온 거라면 휴전선 근처의 장사정포를 쏜 것일 것이다. 군대가 이렇게 빨리 밀고 내려올 수는 없었을 거다. 그렇다면 포탄 공격이 당분간 계속될 테고… 무작위로 떨어지는 포탄을 우선적으로 피해야 한다. 이후에 국군의 전투기나 해군이 반격에 나설 테고 미군도 개입할 것이다. 시간을 끌수록 북한은 불리해지고 궁지에 몰리게 될 것이다. 전쟁까지 일으킬 미친놈들이니 전세가 불리해지면 결국 핵무기를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김정은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히든카드를 사용할 것이고, 쓴다면 서울 중에서도 용산에 쏠 것 같다. 보통 핵폭탄의 살상반경이 15 킬로톤 기준으로 5km까지 즉사, 낙진으로 인해 일산 분당까지 피해가 미친 다고 한다. 최소 하남이나 양평 정도는 가야 안전하다는건데… 우리나라는 보통 북서풍이 부니까 동남쪽으로 낙진이나 방사능이 더 넓게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주나 이천까지는 가야 안심할 수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서울 변두리에 살고 있었다는 거다. 지하철 6호선의 끝자락, 봉화산역 바로 앞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금 차를 끌고 나가면 도로에서 꼼짝 못 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때 순간 얼마 전에 당근마켓에서 산 전기자전거가 생각났다. PAS모드 2,3단으로 200km는 족히 갈 수 있는 모델이다. 바퀴가 두꺼운 펫바이크라 이런 상황에도 잘 맞겠다 싶었다. 다행히도 4층이라 엘베를 이용하지 않아도 갖고 내려올 수 있었다. 20층이었어도 어쩔 수 없이 가져왔겠지만…


이래나 저래나 죽는 거라면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향해 뛰었다.


계단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뛰어내려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피를 흘리며 올라가는 사람도 있었다.   

번호키를 입력하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10분 전보다 포탄 소리가 줄어들긴 했다.   

자전거 배터리를 챙겨 장착했다. 내가 갖고 있는 백팩 중 가장 큰 가방을 챙기고 먹을 거와 물, 손전등, 보조배터리와 애플워치 충전기도 챙겼다. 추울 수 있으니 두꺼운 옷도 한벌 챙기고, 등산화로 갈아 신었다. 그리고 그 긴박한 순간에도 직업적 사명감이 떠올랐을까… 유튜브 하려고 사놓은 카메라와 지난 성과급 받은 걸로 산 값비싼 DSLR도 챙겼다. 카메라에 손이 가자, 드론에도 손이 갔다. 잠시 망설였지만, 챙겼다.


전기 자전거를 들쳐 매고 아파트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도시곳곳에서 연기가 나고 비명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처럼 큰 가방을 들쳐 맨 사람들이 건물에서 빠져나오기도 했다. 예상대로 도로는 멈춰 선 차들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돌렸다. 배터리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 일단 동쪽으로 빠져나가야겠다.   

빨리 이동하려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일단 구리 방면으로 이동해서 외곽고속도로로 빠져나가야겠다. 일단 망우리고개를 넘어가자는 생각으로 서울의료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00미터 정도 이동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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