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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PD Aug 30. 2023

콘크리트 디스토피아를 향해

포스트 아포칼립스

나의 첫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는 ‘28일후’였다.   

2002년 작인 이 영화의 첫 설정이 너무나 강렬했다.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28일을 병원에 누워있던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아 깨어났을 때 도시에 사람은 안 보이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인류가 멸망한 후 홀로 남은 도시를 걷는 기분이 어떨까…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과 ‘워킹데드’의 릭 역시 지구에서 갑자기 홀로 된 느낌을 접하게 된다.


내가 좀비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예로 든 영화가 다 좀비 영화 인 것 같다.  

‘돈룩업’ 같이 혜성과의 충돌로 지구가 멸망한다는 설정도 있고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를 다룬 ’매드맥스‘ 같은 영화도 있다.


우리나라 작품으로는 ‘반도’, ‘택배기사‘, ’지금우리학교는‘ 정도가 생각난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설정의 작품이 많이 없는 이유는 실제로 전쟁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쟁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멸망한 세상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은 영상으로나마 그런 이미지를 보는 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전쟁 이후 두세대가 넘게 지나면서 전쟁의 기억도 점점 희석되고 있다.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둔 보수 정치인들의 표팔이 수단으로 전쟁이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한 건 그들이 전쟁을 가장 원하는 집단이라는 점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각 변동으로 인해 뒤집어진 세상 후를 그리고 있다.   

무정부상태의 한국사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기보다는 재난 영화의 느낌도 있다.    

아마 이렇게 1년 정도 지나면 그야말로 멸망한 지구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 같지만 영화의 설정은 재난 직후이기 때문에 아직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다.


이 영화는 워킹데드류의 세계관을 지향하는 것 같다.   

인간성이 사라진 시기에 누굴 믿고 의지해야 할지 불분명한 상황.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내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고 내가 살기 위해 조직이 필요하고 어딘가에 속해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무리’에서는 항상 리더가 생겨난다. 극한 상황에서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는 무정부상태에서의 인간들이 어떻게 달라져 가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또 이병헌 캐릭터를 통해 멸망 전과 멸망 후가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도 해준다. 지금의 현실과 멸망 후의 사회를 비교했을 때, 지금이 더 낫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병헌 캐릭터의 입장에서는 망해버린 세상을 더 달갑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감독은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주변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각과 행동이 바뀌는 캐릭터는 박서준 캐릭터다. 이 캐릭터가 인간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정의로운 사회에선 정의롭게, 비정한 사회에선 비정하게, 생존을 위한 사회에선 생존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사람.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이 캐릭터에 몰입이 제일 잘 되고 이해도 된다.


박보영 캐릭터는 전체 인간 중 20%도 되지 않을 것 같다. 망해버린 세상에서도 인간성과 정의를 고민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 현실에선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다. 이런 캐릭터는 사실 본인도 힘들고 주변인도 힘들어진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 의해 한발 나아간다.


이 영화는 완성도가 높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야기를 나눌만한 거리도 많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이고 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드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 토론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설정으로 시리즈물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문명이 재건되지 않아 황폐해진 지구에서 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줬으면 좋겠다.   

누구는 생존만을 위해, 누군가는 그 속에서도 인간성을 찾아가는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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