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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어 Dec 10. 2024

아둔한 독재자의 시간

심심풀이 계엄령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시간’이다.

시간은 세상의 모든 것이다. 시간은 영원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다. 인간이 아무리 발전해도 시간을 뛰어넘을 수 없으며, 몇백 년을 살 수도 없다. 기껏해야 100년 남짓한 시간이 주어질 뿐이다.


이렇게 무한한 ‘시간’은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각자 다르게 쓰이고 느껴진다. 어떤 이들에게 시간은 모자라고 부족하다. 그렇다면 권력을 잡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어떻게 느껴질까?

그들이 권력을 잡은 이유와 동기에 따라 시간에 대한 감각도 달라질 것이다.


민주화 이후 첫 ‘문민정부’가 출범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정치 프로세스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미성숙한 나라에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도입 같은 개혁 정책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으며, 김영삼이라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결과적으로 김대중 대통령보다 김영삼이 먼저 대통령이 된 것은 국민의 수준 높은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시스템을 만들면서 경제까지 안정시키기엔 5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결국 IMF 위기는 그렇게 찾아왔다.


이후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IMF 위기를 극복하며 경제, 외교, 복지, 군사 시스템의 토대를 다졌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하루는 너무 짧았을 것이다.


뒤이어 들어선 ‘참여정부’는 대한민국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이 시기부터 ‘국민’ 대신 ‘시민’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늘어났다. 이전까지는 국가 주도의 사업이 주를 이뤘다면, 이제는 민관 합동 사업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시민들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교육 등 모든 분야의 주체로 등장했다.

대한민국은 이 시기에 과분한 지도자를 맞이하며 나라를 몇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급격한 변화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참여정부 말기에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며 불만이 커졌고,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기형적인 정부가 탄생하며 김영삼부터 노무현까지 15년간 이어진 국가 재건의 노력은 이 시점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뒤이은 정권은 권력의 사유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국가 시스템은 대통령 개인의 이익을 위해 돌아갔고, 4대강 사업 같은 논란의 정책들이 강행됐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괴롭혔으며, 국가는 혼란에 빠졌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은 한국 근현대사에 ‘복수’라는 키워드를 각인시켰다.


이후 권력욕이 없던 문재인은 노무현의 죽음으로 정치에 입문했고, 복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이 됐다. 그러나 권력욕이 없다는 점이 그의 정치적 한계로 작용했다.

결국 국민은 또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했다. 독재자의 딸을 앞세운 보수는 박정희의 향수를 자극하며 정권을 되찾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녀는 무능하고 우둔했으며, 점차 독선적으로 변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사건으로 큰 위기를 맞았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물속에 가라앉으며 국가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은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그녀는 탄핵되며 구속됐다.


탄핵 이후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을 수사해 구속시켰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칼날이던 윤석열과 검찰 조직은 문재인을 배신하고 보수의 편에 섰다.

보수는 윤석열을 자신들의 리더로 추대했고, 정권 탈환을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윤석열과 그의 아내 김건희는 기존의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그들은 자신을 왕과 신으로 여겼으며,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개인의 명령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작동해야 하는 국가 시스템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 카드로 계엄령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계엄은 국민과 군의 저항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들의 무모한 시도는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들의 준비는 나름 체계적이고 치밀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대응하는 군인들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30분 또는 1시간 차이로 계엄의 성패가 나뉘었다.

군대가 먼저 국회에 들어가 본회의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는 상태에서 로비등에 모여있는 국회의원들을 군인들이 하나둘씩 끌고 갔다면, 상상하기 싫지만 성공했을 수도 있다.

계엄은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 윤석렬과 김건희, 국민의힘 당에게 유익한 선택이 아니다.  

정권을 잡은 그년 놈들에게 시간은 너무 느렸고 하루는 길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릴없이 노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5년은 무료하다 못해 지루했을 것이다.   

그래서 계엄을 선포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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