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영(가명): 여. 사건 당시 40세. 미혼. 소기업 근무. 정신지체 1급 장애를 가진 30대 중반의 여동생과 노환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부모님 부양.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지방의 조그마한 회사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는 부모님도일을 하고 했었기에, 시설의 도움도 받고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동생을 케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사라졌다.동생을 보호하는데 틈이 생긴 것이다. 동생은 자신의 이름도 모를 정도의 장애를 가졌기에 찾기가 힘들었다. 그때 그 회사의 사장님이 나서서 직원들과 함께 동생을 찾는데 도움을 주었다. 그 후로도 동생이 사라진 적이 몇 번 더 있었는데, 사장님은 그때마다 자신의 일인 양 발 벗고 나서 주었다.
그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그녀의 다음 직장을 주선해 준 것도 그 사장님이었다. 작은 회사는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후로도 그녀는 여러 번 직장을 옮겨야 했고, 매번 그 사장님이 회사를 소개해 주었다. 비록 회사는 작았고 급여도 낮았지만, 그 사장님 덕분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그녀를 동생처럼 조카처럼 대해 주었고,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은 그 사장님을 은인으로 생각했고,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녀가 30대 중반을 넘긴 20XX년,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자신이 회사를 인수하게 되었는데 이전 회사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본인의 통장으로 거래를 할 수 없는 형편이 되었으니 통장 거래를 좀 도와달라고 했다. 그녀의 통장으로 돈이 들어갈 텐데, 그 돈을 자신이 불러주는 계좌로 송금해 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새로 인수하는 회사의 주주로 잠깐 올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은혜를 갚을 기회라고 생각하여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3년 후, 20X3년 OO지방국세청 조사국으로부터 세무조사 통지서가 날아왔고, 3개월 후 14억 원의 증여세를 고지하겠다는 과세예고통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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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증여세가 부과된 이유
그녀에게 14억 원의 증여세 과세예고통지가 날아온 이유는 주식 명의신탁에 따른 증여의제라는 것 때문이다.
사장님이 인수한다는 회사에 주주명부에 그녀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그 회사 주주도 아니고, 그 회사의 주식을 본 적도 없고, 주식을 증여받은 적도 없다. 주주로서의 이름만 잠깐 빌려주었을 뿐이고, 계좌이체를 도와주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고마운 사람의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세법(2018년 이전 상증법)은 이름만 빌려주었을 따름인 그녀에게 증여세를 부과하게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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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의 경우는 과세당국이 그녀의 통장거래내역, 그녀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주식 양수도 계약서, 주주명부 등의 증거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더 암담했던 것은, 세무조사 초기 단계에서 그녀가 하소연을 하고 싶은 마음에 조사관들을 찾아가서 사장님과의 과거사를 일일이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그가 그녀의 가족에게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고, 그가 부탁한 것이 무엇이었고, 자신은 고마운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뿐이라는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상당히 조리 있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결정적인 진술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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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신탁은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판례는 적극적인 합의뿐만 아니라 명의신탁의 사실을 인지한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도 만으로도 암묵적 합의로 본다. 그녀의 진술은 암묵적 합의를 넘어 적극적인 조력까지 시인하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2018년 보다 한참 전의 사건이다. 당시 법에 의하면 그녀가 증여세 14억 원의 주된 납세의무자가 되고, 실제소유자는 보완적 위치인 연대납세의무자가 된다. 따라서, 실제소유자가 세금을 책임지면 그녀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참고) 명의신탁 사건에서는 실제소유자가 세금을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사장님은 실제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는 일종의 M&A 중개인이었다. 회사를 팔고 싶어 하는 쪽과 사고 싶어 하는 쪽을 연결해 주고, 거래가 성사되면 수수료를 받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가 된 회사는 그가 중개하던 회사였는데, 매수인 측에서 실명을 원하지 않고 차명 주주를 주선해 줄 것을 거레조건으로 제시하였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그가 김순영씨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회사의 실제주주는 그 사장님도 아닌 또 다른 제3자였다. 그런데, 그 제3자는 모종의 일로 인해 해외로 도피 중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과세당국이나 경찰에서도 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 사장님은 자신이라도 여력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싶은데, 당장에 가진 돈이 14억에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로는 그 사장님이 세금을 대신 납부해 주려면 14억이 아닌 20억 이상의 돈이 필요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