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목적으로 산이나 해안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면, 성(城)은 그곳을 다스리던 왕 등의 지배계급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다. 그리고 그런 지위에 걸맞게 외관이나 내부장식 등에 있어서 그 일대의 건물 중 가장 멋있는 건물이며, 때문에 그 지역 관광에서 가장 먼저 둘러보아야 할 볼거리로 손꼽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쾨텐을 방문하기 전에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보아도, 이상하게 "쾨텐 성(Schloss Köthen)"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다. 심지어 쾨텐 성 앞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도 그야말로 적막강산. 사람(관광객)도 안보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쾨텐 성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조차도 없다.
그렇지만 어찌어찌해서 쾨텐 성을 둘러보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었는데, 이런 쾨텐 성에 대하여는 독일 현지에서도 그 흔한 팜플렛 하나 수집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이유로 독일 사이트를 뒤져 최소한의 정보를 얻어 내어 이글을 쓰고 있는데, 내가 주로 참조한 사이트는 다음의 두 곳이다.
쾨텐성은 1244년 부터 1847년까지 이곳을 다스리던 Fürst(황제와 왕 다음 서열쯤의 지배계급/특히 백작과 대공사이의 후작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음)의 거처 였던 곳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확장과 보수가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인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 사이에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들은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고, 1821년부터 1833년까지의 바로크 식의 건물 또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쾨텐성이 갖고 있던 Fürst의 거처라는 의미는 1997년 이후에 이 성이 '작센-안할트 문화재단(Kulturstiftung Sachsen-Anhalt)'의 소유가 되면서 사실상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 쾨텐 성을 이루고 있던 건물들은 오늘날에는 주로 바하 기념관, 역사박물관 그리고 나우만 박물관(Naumann Museum) 등과 같은 문화적 의미를 갖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작센-안할트 문화재단은 이곳에서 선사시대 수집품을 전시하고, 독일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Information을 통해 방문객들과 관광객들에게 모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식 컨벤션 센터는 다양한 종류의 대규모 회의를 가능케 하며,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 음악학교에는 500명 이상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쾨텐 성은 그 실체에 있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사이트를 통해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알게 되자 비로소 쾨텐 성 입구에 쾨텐 성이란 글씨는 안보이고, '나우만 박물관(Naumann Museum)'과 '거울의 방(Spiegelsaal)'을 가리키는 화살표만 있었던 이유가 비로소 이해가 됐다. 그래, 쾨텐 성은 이제는 그저 박물관이고, 거울의 방일 뿐인 것이다. 아, 나우만(Naumann)은 쾨텐 출신의 유명한 소목장(小木匠)으로, 쾨텐 시청사의 의회홀 내부의 각종 조각 등은 모두 그의 작품들이다.
위사진 속의 화살표를 지나치자 자그마한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다리 중앙에 서서 양 옆을 바라보니 이런 물길이 보인다.
쾨텐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렇게 다리를 건너야 하는 이유는 쾨텐 성이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해자로 둘러 싸여 마치 물위에 떠있는 것 같은 성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쾨텐 성의 옛 모습을 그린 그림들을 보면 예외없이 물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다리를 건너 쾨텐 성으로 들어서는 경우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건물의 외벽에 바하의 모습을 담은 부조가 붙어있는데, 그 밑에 "바하가 이곳에서 1717년부터 1723년까지 불멸의 작품을 창조해내었다"라고 쓰여 있다.
바하가 이곳 쾨텐에서 작곡한 곡들 중 유명한 것들만 뽑아 목록을 만들어도 이렇게나 많은데, 심지어 나처럼 음악에 철저히 문외한인 사람도 곡의 제목 정도는 들어본 것이 있을 정도이다. 예컨대, 바하가 남긴 협주곡들 가운데서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die sechs Brandenburgischen Konzerte),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집(1. Teil des Wohltemperierten Klaviers) 등등.
바하의 옆모습이 새겨진 부조가 붙어있는 벽을 지나치면 주차가 가능한 넓은 공간(성의 정원?)이 나오는데,
아마도 내가 주차를 시키고 걸어 들어온 곳과는 반대방향에 있는 아래 사진 속의 문을 통해 들어오면 위 사진속의 공간에 주차를 할 수 있을 것같다. 다만 누구나 아무런 제약없이 저 문을 통과하여 위 사진 속의 공간에 주차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던데, 이 문앞에도 역시 이렇게 다리가 놓여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주차가능한 넓은 공간 사진 속에 오른쪽에 주차해 놓은 자동차들이 보일텐데, 그 앞쪽에 있는 건물에 Information과 박물관이 있다.
이해의 편의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곳들을 쾨텐 성을 하늘에서 바라본 사진에 표시해 보면 이렇게 된다.
A 내가 주차한 곳
B 성의 입구
C 바하의 부조가 붙어있는 벽
D 주차가능한 넓은 공간
E 성의 또다른 입구
F Information, 박물관입구
G 나우만 박물관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이런 공간과 만나게 되는데,
성의 예배당(Schlosskapelle)
바로 성안에 있던 예배당(Schlosskapelle)이다. "합창대석이 있는 바로크양식의 교회를 증축한 것"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정확히 그 위치가 기억이 안나는데, 이곳 예배당으로 들어 오는 입구 중 어느 한 곳에 "바하계단(Bach-Treppe)"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래의 설명을 읽어 보니, 바하가 그의 어린 아들 레오폴드의 세례가 있던 날인 1718년 11월 17일에 첫번쩨 부인인 마리아 바르바라 바하와 함께 이 계단을 통해 성예배당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예배당의 앞쪽으로 나아가서 윗쪽의 오르간을 바라보며 한장,
그리고 피아노만 또 따로 한 장의 사진을 남기고 성예배당을 나왔다.
Information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면 이곳에서 가장 멋있고 화려한 공간인 "거울의 방(Spiegelsaal)"과 마주치게 되는데, 방 전체의 모습은 이러하다.
거울의 방(Spiegelsaal)
거울의 방의 모습에 매료되어 몇장의 사진을 더 남겼다. 거울의 방 중앙에 있는 샹들리에에 촛점을 맞추어 한 장,
이번엔 앞으로 나아가 뒷면을 바라보며 또 한장.
위의 사진 뒷쪽에 보이는 의자들만 클로즈업해 본 사진인데, 이곳에서 연주회 등이 있을 때 관객들이 앉을 수 있도록 마련된 이 의자들은 200 여년전에 만들어진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적 사진인지는 몰라도 과거에 거울의 방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진.
실제로 오늘날에도 이 공간은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연주회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데, 아래 사진은 아벨 탄생 300주년을 맞아 2023년 6월에 열렸던 아벨 축제(ABEL FEST) 때의 모습이다. 아, 아벨(Carl Friedrich Abel, 1723~1787)은 쾨텐 출신의 작곡가이자 감베(Gambe, Viola da gamba) 연주자로 유명한데, 감베는 발로 받치고 연주하는 비올라를 말한다. 감베는 당연히 우리가 요즘 보는 비올라보다 훨씬 큰데, 그렇다해도 첼로보다는 조금 작다는.
아벨은 바하가 쾨텐을 떠나는 해인 1723년에 태어났는데, 아벨 그리고 그의 가족과 바하의 인연등에 관하여 자세한 것은 아래 사이트를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