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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Mar 09. 2024

시니어들의 워커홀릭

열심히 일하자!

며칠 동안의 비바람에 꽃샘추위가 벌써 왔나 하는 생각이 들더니 오늘 아침 햇살은 눈부시게 빛난다.

6시 반 알람이 울리고 눈을 뜨는 순간 특별한 이유 없는 무기력감이 밀려든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거실로 나오면서 큰 숨을 한번 내쉬고는 감정을 추슬려보지만 이러기를 벌써 여러 달째  '나 우울증인가?' 

하지만 그런 기분이 잠깐 유지되다 사라지는 걸 보면 우울증이라고 갖다 붙이기도 영 어설프다.

곰곰이 생각을 거듭해 본 끝에 '회사 가기 싫다'는 내면의 외침이 무기력감과 의욕상실로 표출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바쁜 농사철에 엉덩이를 양옆으로 흔들어대며 느린 걸음걸이로 일하러 가기 싫은 마음을 표현하는 황소처럼 요즘의 내가 딱 그 모양새다.

직장에서의 일상이 즐겁기까지는 아니어도 얼마간의 보람과 고됨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내고 퇴근길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은 대단한 업무를 맡고 있는 직장인이 아니어도 다 같은 마음일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부서가 한두 개로 통합되고 그에 따른 직원들의 이동까지 크고 작은 여러 변화가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나 환경 등, 적응하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데 그 변화된 상황 속에 사람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까지 얽혀있다면 정말 나로서는 최악의 조건 속에 버티는 내공을 쌓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설사 그 화제의 중심에 내가 없다 해도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불편함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니 '나는 단체생활이 맞지 않는 것 같아. 혼자서 사부작 사부작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어' 그런 생각을 몇 달째 끊어내지 못한 상태다.




오늘도 그런 비슷한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오전을 보내고 있는데 동료가 아빠와 통화를 한다.

"아빠, 바리스타로 취직하려면 자격증 따고 서류준비하고 다 해야지, 그거 귀찮으면 취직 못해."

70을 훌쩍 넘긴 친정아빠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면 시니어 복지센터 등 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동하셨던 모양이다.

지정된 기관에서 몇 개월의 수업을 받아야 하고 공부해야 할 것이 나름 까다롭다는 것을 알게 된 아빠가 어찌어찌하다가 접수 기간을 놓치고 다른 방법이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일하는 어르신들의 현실로 이어졌다.

주변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70을 넘긴 나이에도 다들 일을 하고 계셨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신 내 부모님의 일이란 그저 논 밭으로 다니시는 농사일이 전부였기에 그 일에 한 번도 직업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시골에서 살면 모두가 하는 일들이라 당연히 생각했었고 매월 소득이 일정금액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기에 더욱 직업으로 연결 짓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정부에서 실행하고 있는 노인일자리는 매우 다양했다.

농업, 임업, 어업은 물론 사회서비스업부터 보건업까지 많은 종목들이 시니어들의 소득을 창출시키기 위해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에 는 요양보호사 란 직업도 있었고 실제로 그 자격을 소유하고 계신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아픈 환자를 돌보는 자격을 주는 그 제도가 실제로 나이 드신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인지는 애매하다고 하였다.

젊은이들의 취업 커뮤니티로만 여겼던 워크넷의 신규 구직건수를  20대 청년들 다음으로 60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차지하였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우리 가족만 봐도 시니어의 대열에 들어선 큰 언니가 몇 년 전부터 청소년 아동 복지센터를 시작으로 현재는 초등학교 내의 도서관에서 책의 대출과 반납을 맡고 봉사활동하는 젊은 엄마들과 책정리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컴퓨터도 익숙지 않은 언니가 출근을 앞두고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연습을 며칠동안 했다고 한다.

그나마 언니가 하는 일은 편한 일에 속했고 대부분은 어느 기관의 미화나 거리의 쓰레기 줍기, 도로변 화단 가꾸기 등 누구도 마뜩잖아하는 일들이었다.

언젠가 무더운 여름 아침 모자에 장갑과 긴 옷으로 무장을 하고 쉴 새 없이 차가 다니는 큰 길가 대로변 옆 화단에서 햇빛을 등에 지고 위태롭게 일하시는 어르신들을 출근길에 목격하기도 했다.

실제로 생활고로 일을 하려는 분부터 친구 따라, 집에 있는 것이 무료해서, 자식에게 손 내미는 것이 불편해서, 약간의 용돈이라도 벌어보려고, 이유도 다양했다.

경쟁도 치열해서 서로 일하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웃픈 일도 있단다.




오래전 사회복지과에서 일할 때였다.

주민센터 사회복지과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을 주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새해가 되면 주민센터는 저마다 신청서를 접수하기 위해 달려온 어르신들 덕분에 꽤나 소란스럽다.

조금이라도 앞줄을 차지하기 위해 은근히 몸싸움을 하다가 결국은 억척스럽고 강한 성격을 가진 어르신의 위세에 몰려 마음 약한 어르신은 뒤로 빠지며 앞자리를 양보한다.

그렇게 신청서류를 넣는다 해도 모두가 다 일을 할 수는 없다.

일할 사람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빈자리가 나거든 연락 주라면 신신 당부 하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그때 젊었던 나는 나에게는 절대 오지 않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빠른 정년에 길어진 수명, 아파트 근처의 공원에서 바둑을 두며 옹기종기 앉아있는 어르신들을 본다.

저들도 한때는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이었을 터 저무는 하루의 해를 멍하니 바라보듯 시간의 흐름 속에 삶의 나이테는 오늘도 저렇게 단순하게 쌓여가고 있다.

하루의 일상이 단순하다고 삶의 무게마저 간단치는 않을 세상이치를 다 터득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의식의 나른함을 저항할 수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이렇게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다가는 정년이 되기도 전에 그만둘 수도 있고 잠깐동안의 편안함 뒤에는 분명 안일함과 게으름이 한꺼번에 득달같이 달려들 거고 수입은 없고 소비만 있는 삶의 패턴은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여행이며 취미생활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직장생활의 만족, 보람, 행복, 현실에서는 존재감 없을 이상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나를 찾고 싶다'를 마냥 외칠 수는 없겠다.

잠깐동안의 현타로 정상적인 의식의 세계로 돌아온 나는 내면에서 충동질하며 따라붙는 사탕발림의 소리를 털어내기 위해 높은 하늘 뜬구름이라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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