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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Aug 04. 2024

신경 끄고 살기

혼자서 잘 사는 삶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 하나 있다.

신경 쓸 일을 최대한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생각이 많고 신중한 편인 내가 고안해 낸 나름대로 편하기 살기 방법이다.

특히나 잠들기 몇 시간 전에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더구나 그 화젯거리가 깊이 생각하고 신경 써야 할 에피소드라면 더욱 피하고 싶어 진다.

그래서 가능하면 퇴근 후 저녁시간은 운동과 티브이 시청 등 생각 따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일만 한다.

내 문제도 아닌 남의 일로 신경 쓰여 잠설치고 오지랖떨기 싫어서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우연히 시청하다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몸과 마음을 숨기듯 사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대부분은 가족을 떠나 혼자 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60-70대 남자들이 많았는데 약 10여 년 전부터 들어가 살기 시작한 때를 가늠해 보면 적어도 50대 때이거나 그보다 더 젊은 시절에 속세를 떠난 경우들이었다.

처음에는 삶에 대한 도피이거나 회피라고 생각하다가 나도 나이가 들면서 사람 만나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보니 그런 삶을 택한 사람들이 십분 이해되고도 남았다.

'나를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어떤 드라마인지 영화에선가 나온 대사인데 사람은 끊임없는 압박을 당하거나 도에 지나친 관심을 받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고 그런 상태에서 감정의 기복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나 아닌 타인과의 공유된 삶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타인과 함께할 때 보여주는 내가 아닌 혼자일 때 비로소 진정한 나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그곳이 외딴섬일지라도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주변의 독고다이 같은 사람들을 보면 대인관계가 부족하다거나 성격이 소심하다는 말로 일축해버리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 나는 오히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는 어느 작가의 책 제목처럼 혼자서도 나름 잘 보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삶이 절대로 지루하고 무료하고 염세적인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 거라고.

외부로부터 오는 물리적인 것들로 인해 오히려 내 시간을 지켜내고 안락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평온한 삶.

그 안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의미를 붙여가고 완성해 가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나를 찾아간다.

그래서 요즘 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내버려 둬, 우리가 크게 불편한 게 아니라면 신경 쓰지 말자"이다.




남편이 아파트 헬스장에 운동기구 몇 개가 더 필요하다며 몇몇 사람들에게 관리실에 건의할 것을 요청하고 카페에 글을 올리고 하는 것을 보고 이미 나는 알았다.

'우리가 이 일로 인해 얼마간은 맘 불편하고 신경 쓰겠구나'라고.

어찌어찌해서 몇 사람이 남편의 의견에 공조한 덕에 필요한 기구가 들어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기구가 놓인 자리가 문제였다.

남편은 그것을 보고 '운동에' '운' 자도 모르는 사람이 눈에만 보기 좋게 기구를 배치했다'라고 구시렁대었다.

나는 크게 불편한 게 없었으므로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는데 당분간은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게 된 남편은 또 마음이 급하다.

결국은 적극적으로 호응해주지 않는 대학생부터 나이 드신 분까지 몇 명을 선발해서 기어이 배치된 기구를 남편이 원하는 쪽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사람들은 얼마나 남편의 행동이 이상했겠는가.

본인은 힘도 못쓰면서 손도안대고 코를 풀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남편도 뻘쭘했는지 왜 힘을 못 쓰는지 옷을 올려붙이고 아픈 배를 보이니 그것을 저만치서 바라보는 나는 웃음도 나고 '자기 몸이나 좀 괜찮아지면 할 것이지 뭐가 급하다고 쯧쯧'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왔는데 대놓고 못 도와주겠다고 말한 어린 남학생이 생각나서 좀 성질이 났는지 남편은 "내일 가보면 자기들도 옮겨놓기 잘했다고 할 것이다" 라면서 볼멘소리를 한다.

아마 우리는 오늘 밤에 둘 다 기분이 별로여서 잠이 쉬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 뚱한 표정으로 기구를 들어 올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라서 말이다.

이러니 내가 웬만하면 눈감고 입 막고 가만히 있자고 하는 거다.

본인의 일이 아니면 절대 나서려고 하지 않는 남편이 동대표에 출마해서 헬스장을 관리하겠다고 섣부른 운을 떼길래  절대, naver, naver,,, 를 몇 번이나 외쳐댔다.

깊은 산중에 들어가 이 꼴 저 꼴 안 보고 살기를 학수고대할 것 같은 사람이 뭔 대표를 하겠다고?

다음날 운동을 하러 내려가서 어제 옮겨놓은 기구들을 보더니 남편은 혼자 뿌듯한 표정이다.

딱히 불편함이 없었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상황이 좀 머쓱한 남편에게 나는 조금 큰소리로 말했다.

"이쪽 구역이 탁 트여서 운동하기 편하고 공간이 넓어지니 시원하네"라고.

어제 운동기구를 옮기면서 본인 몸 푸는 공간이 좁아졌다고 마뜩잖아하던 아저씨가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암튼 나는 최대한 좁혀놓은 듯한 내 구역에서 특별하달 것 없는 내 일상을 채워가는 요즘이 좋다.

타인의 삶을 의도적으로 통제시키니 나의 삶이 조금 더 단순하고 평화로워졌다는 답안 하나를 얻어낸 기분이다.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가끔 뭔가를 끄적이며 대단하게 내세울 것 없는 잔잔바리 내 재주이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 부여되는 조금은 부풀려진 감성을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끌어주는 소중한 주체들이기에 온전히 내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그것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최대한 간단명료한 나의 삶.

부가가치를 더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본래의 나 인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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