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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 Dec 07. 2024

당신의 색채는 무엇인가요

고유한 나의 색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란 소설에서 주인공인 다자키는 절친인 친구 네 명의 이름에 모두 색채가 들어가 있는 것과 달리 자신의 이름에는 아무런 색채가 없어서 개성도 없고 텅 빈 그릇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무슨 색일까?

나는 아마도 블랙과 화이트를 섞어놓은 회색의 느낌이 아닐까 생각한다.

선명한 색채를 가지지 못해서 개성이 강하지 않지만 블랙과 화이트의 농도에 따라 차갑고 무거운 분위기를 낼 때도 있지만 때로는 한없이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의 중립에 서기를 좋아한다.

내가 박쥐라서가 아니라 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모두 이해될 때가 많다.

다자키가 부러워했던 확실한 한 가지 색채를 가진  사람을 나는 선호하지 않는다.

선명한 색채를 가진 사람 곁에서는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나의 고유함을 보여줄 수 있는 색의 연출이 불가능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한 빛은 내가 가진 빛을 여지없이 흡수해 버리고 결국엔 대칭적인 문양의 혼란스러운 데칼코마니로 창조되어 내가 가진 고유성은 온데간데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과 는 최대한 멀리 떨어져 나의 색이 섞이지 않기를 의도한다.

조금이라도 나를 지켜내기 위한 방어기제가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을 알아본다.


가을이 한창 익어가고 있는, 그래서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 있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낙엽의 색.

사람들 모두 그런 낙엽 같은 다양함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물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하고 선명함은 눈이 부시고 농도가 진하지만 때로는 연약하고 부드러운 주변의 색들을 어둡게 덮어버리는 단점도 있다.

농도를 자연스럽게 흐트러뜨리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다자키가 진정으로 인정받고 색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자신의 내면이 아니었을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예스와 노 가 확실한 요즘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항상 뒤따르는 수식어는 뒤끝이 없어 좋다 이다.

그렇다면 색채가 없는 다자키 같은 사람들은 정말로 매력이 없고 매사가 흐리멍덩한 사람들일까?

색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빛에 의해 다양한 깃털의 색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팔색조 같은 매력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무채색으로 보이지만 다양한 색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팔색조처럼 강렬하고 선명한 하지만 날카로움과 뾰족함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실한 한 가지 색을 가진 사람보다 어떤 색을 만나는지에 따라 나의 고유함을 여러 가지 색으로 물들일 줄 알고 스며들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잔잔히 드러나는 부드러움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그러데이션 될 수 있는 색의 농도를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어떤 강렬한 색채를 가진 표면적인 사람들보다 더 강하고 빛나는 내면의 색채를 발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다자키는 순례라는 과정을 통해 과거와 대면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색이 없음을 부족함과 평범함으로 치부하며 끊임없이 나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다자키가 보냈던 한때가  과거의 어느 시절에 겪었던 나의 한 때 이기도 한 듯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정신적인 불안감, 초조함, 두려움을 느끼며 '왜?'라는 의문을 가진다.

그런 감정은 과거에 겪었을 다양한 경험과 고통 들이 치유되지 못한 채 나의 내면에 자리 잡아서이기도 하다.

세상을 굴절되게 바라보았던 나의 의식을 바로잡으려 노력할 때 비로소 나는 찬란하게 강렬한 색채와 마주해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나의 색을 과감히 드러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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