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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골 Apr 01. 2023

자두꽃

슬기로운 농촌생활

전국 곳곳이 벚꽃 앓이 중이다. 강변공원을 따라 끝 간데없이 핀 벚꽃은 자석처럼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민선 자치 시대가 개막하면서 도농통합 시로 합쳐진 k 시에서는 오늘 밤에 벚꽃을 배경으로 두 개의 행사가 있다. 노래자랑이 열리고 식목일 기념으로 천냥금화분과 식물 비료를 나누어줄 것이라고 했다.      

 봉자는 코로나가 생기기 전에 사과대추나무와 미니사과나무를 나눔 받은 적이 있었다. 벌써 두 해째 열매를 맛본 터라  비록 유실수는 아니어도 이런 공짜를 놓칠 리가 없다.

 편하게 주차를 하고 남보다 일찍 줄을 서려면 포도밭 하우스 문부터 닫아야 했다. 30cm 정도 자란 포도 순이 밤에 냉해를 받지 않도록 꼼꼼하게 문을 닫아야 했다. 봉자는 남편 도식과 조부모가 물려준 다래이다래이 천수답에 포도나무를 심었었다. 손바닥만 한 포도밭은 손바닥만 한 포도 하우스로 만들어졌고  하우스 문을 닫으려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 포도밭 너머에는 또 하나의 손바닥만 한 자두밭이 있다. 자두 꽃이 한창 피는 요즘은 산골짝이 상큼한 꿀 냄새로 뒤덮인다. 산그늘에 가리운 묵을 대로 묵은 자두나무는 주인의 손이 닿지 않아 가지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가지 끝까지 만개한 자두꽃은 하얀 구름밭이 하강한 형상을 하고 있다.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새하얀 자두밭은 향기를 마구 뿜어냈다. 자두밭에 한 번씩 오가던 주인 할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아마 아흔다섯은 되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는 집안 형편이 넉넉했다. 작은 산골 마을에서 귀한 소금을 두 포대씩이나 쟁여 두고 살았다. 할아버지는 공무원으로 뒷돈이 생기는 일이 많았다. 마음은 하염없이 고왔지만 베풀 줄을 몰랐던 할머니는 사람들의 부러움과 미움을 샀다.

 아들이 둘인 할머니는 별난 이웃과 사돈을 맺었다. 큰아들 내외는 도시로 떠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작은아들이 결혼을 하고 도시에서 장사를 했다. 돈도 안 되는 산골의 전답을 팔아서 나갔다. 할머니의 형편은 더 나빠졌다.


여기까지가 봉자가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봉자가 조부모에게 물려받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할머니와  함께 일을 하기도 했고 할머니의 하소연을 간간히 들을 때도 있었다.


 천성이 게으른 작은 아들은 장사와 맞지 않았다. 손버릇도 나빠 아내와 이혼을 했다. 작은아들은 빈털터리가 되어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마음에 병세를 보이기 시작한 작은 아들은 술 없이는 생활이 어려웠다. 어린 손자 둘은 할머니의 업보가 되었다.     

 쓸만한 땅은 다 팔아먹고 길도 없는 골짝 땅 한 뙤기가 전부였다. 머슴 들이고 살던 할머니가 농사 지을 엄두도 못 낼 땅이었다. 할머니는 꿈에도 해 보지 않았을 남의 들일을 다녔다. 건강한 몸으로 농사일을 곧잘 하여 불러주는 데가 많았다. 손아래 동서의 논을 소작하기도 했는데 동서 할머니는 셈이 많아 지나간 서운했던 일을 할머니에게 앙갚음했다. 가난은 죄가 되어 돌아왔다. 남의 집 일 하는 할머니를 찾아가서 논에 물이 적으니 많으니 따지기가 일쑤였다. 빨리 가서 논물을 보라는 둥, 우리 아들이 오징어를 사 왔는데 집에 와서 가져가라는 둥 일삼아 할머니에게 자랑질을 하고 바쁜 걸음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 할머니는 칠십 중반이었고 빠른 걸음은 치명적인 노동이었다. 주인들은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모른 척했다.

 동서 할머니의 얄궂은 심보는 농사철만 되면 번번이 할머니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할머니는 입을 떼는 법이 없었다.


 할머니는 새참으로 나오는 빵을 먹지 않고 매번 주머니에 넣어 갔다. 술만 마시던 아들이 정신을 차렸는지 손바닥만 한 골짝밭에 자두나무를 심었다. 평범해 보이지 않는 여자도 들였다. 그의 안중에는 할머니와 사춘기 아들은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오래지 않아 또 술을 입에 대었고 여자와 할머니한테까지 폭력을 썼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무논에서 비료를 뿌리는데 마음에 들지 않게 한다는 이유로 발길질을 해댔다. 할머니는 힘에 부친 비료 바구니를 않고 무논에 꼬꾸라졌고 며칠을 앓아누웠다. 손자들은 마음에 멍이 들대로  들었고 작은아들의 병은 더 깊어졌다.


 할머니에게 폭력 횟수가 잦아지자 나 몰라라 했던 큰아들이 할머니를 모셔 갔다. 같이 일 다니던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큰아들이 얻어 준 작은방에서 할머니는 손수 밥을 해 드시며 혼자 산다고 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작은아들은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여자도 더 견디지 못하고 떠났다.  혼자 남은 작은아들의 기이한 행동은 마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작은아들은 할머니를 닮아서인지 좋은 점 한 가지는 있었다. 먹을 것도 없고 돈이 없어 전기가 끊겨도 남의 물건을 탐내진 않았다. 할머니가 안 계신 세월을 손자 둘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의 가호가 있었을까? 손자 둘은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군대도 무사히 다녀왔다.


 할머니의 두 손자가 제대를 했다는 말은 들려왔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은아들도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을 잠깐 보았다는 사람은 있었다. 손자가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직장을 다녔고 첫 월급을 받아서 곧바로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고 했다. 그리고 건장한 의사 두 명이 작은아들을 차에 태워 곧바로 떠났고 했다. 그렇게 떠났다는 할머니의 작은아들과 손자들은 십 년이 훌쩍 넘도록 고향을 찾지 않았다. 골짝의 자두나무는 이제나저제나 올 주인을 기다리며 올해도 모가지를 길게 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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