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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골 Apr 12. 2023

사월을 그리다

별을 따는 농부

오리온자리 서쪽으로 물러나면

북두칠성 늙은 소나무 위를 슬그머니 넘어온다


젖살 오른 살구 배꼽 빠지고

하얀 부케 안고 있는 자두나무 눈 부시다


은방울꽃 바람에 풍경 울리고

라일락꽃 빨랫줄에 향기 말린다


알 품는 둥지 앞 수탉 홰치는 소리

청둥오리 놀라 달아나고

 

경운기 밭 가는 소리 땅속 애벌레 깨어나

미나리 머위 고만고만한 밭두렁 넘본다


먼 산 소쩍새 덜 트인 목을 푸는 초저녁

사월은 도무지 그림자 하나 그려 넣을 때 없다



시 습작 노트

 겨우내 마당의 대문 위를 지키던 오리온자리가 서쪽으로 물러나면 보이지 않던 북두칠성이 북동쪽에 있는 키 큰 소나무 위에 국자 손잡이를 걸쳐 놓습니다.

 사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살구가 쌀알 크기만큼 커지고 소복한 부케다발같이 자두꽃이 핍니다.

 돌사이에 핀 은방울꽃이 흔들리는 모습은 흡사 작은 암자의 풍경이지 싶습니다. 노스님 혼자 있는 작은 암자에 은은한 풍경소리 말이죠.

 라일락이 피면 빨래를 일삼아 마당에 널어놓습니다. 천연 향수가 베여 들기를 바라면서요.

알 품는 암탉을 꼬여 내는 수탉의 구애에 작은 웅덩이에 놀러 온 오리가 더 놀래지요.

이파리가 둥근 머위가 밭두렁을 차지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도토리 키재기 같습니다.

 경운기가 밭을 갈면 흙 속의 생물들을 깨웁니다. 다시 흙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도망가기도 하고요.

사월에 우는 서쪽새는 울음소리는 마치 우리 아들의 변성기 같습니다. 답답하다가 고음을 지르다가 말하기 싫다고 한참을 조용하기도 하고요.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사월, 농부의 그림 속에는 그림자 한 조각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사월엔 날씨가 심통을 심하게 부릴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날 중 하루였습니다. 세찬 바람이 부는 날, 봄맞이꽃이 세차게 흔들리는데도 예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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