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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은채 Mar 08. 2024

<환승연애3> 의리로 보는 사람 여기 붙어라

<환승연애3>은 어쩌다 <환승연애2>의 후광에 묻혀 버렸나

슬금슬금 유행어로 쓰이기 시작하던 ‘도파민’이라는 단어의 활용에 부스트를 달아주고는, 전국민을 ‘과몰입러’로 만든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익숙한 배경음악과 넘쳐나는 명대사 때문에, 방송을 챙겨보지 않은 사람마저도 내용을 꿰고 있는 연애 프로그램 <환승연애>. 처음 런칭됐을 땐 “이게 될까?” 였던 여론이 방영과 동시에 “이게 되네!”로 바뀌었고, 첫 시즌의 성공에 힘입어 런칭된 <환승연애2>는 티빙 가입자수와 동시 접속자 수, 최다 조회수 등의 기록을 단번에 갈아엎으며 ‘국민 예능’으로 떠올랐다. 이후의 시리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기반이 탄탄하게 다져졌다고 생각됐을 때 들려온 PD 교체 소식과 각종 논란, 그리고 이어지는 실망스러운 반응들. <환승연애3>은 왜 지난 시즌만큼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까.




빈약한 서사와 애매해진 포지셔닝


<하트시그널> 시리즈의 성공으로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런칭됐지만, 그중에서도 <환승연애> 시리즈를 독특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지점은 ‘재회’에 있다. 프로그램 제목에 ‘환승’이라는 키워드를 삽입해 마치 새로운 사랑을 권장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건 타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질리게 봐오지 않았는가.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그러나 누구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 하는 사랑이 끝난 뒤의 감정, 예컨대 후회나 미련, 애증 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점이 <환승연애>가 진정성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따라서 <환승연애>가 타 연애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헤어진 연인과 함께하는’ 연애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프로그램이 특별한 이유는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 X의 존재가 개입하며, 때때로 X에 대한 미련이 더 큰 출연자들은 재회를 선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새로운 사랑이 주는 설렘만을 기대하는 시청자는 <하트시그널>, <솔로지옥> 등 성공한 연애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에 굳이 <환승연애>를 챙겨 볼 필요가 없다. 따라서 <환승연애> 시리즈를 대표하는 정서는 ‘설렘’이 아닌 ‘미련’이다.


그러나 <환승연애3>에는 재회를 희망하는 커플이 거의 없다. 재회는커녕, 이별의 기억이 너무 좋지 않은 나머지 X와 말도 섞기 싫어하거나, X에게 미련을 가질 만큼 충분히 오래 연애하지 않은 커플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시청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포인트가 부족한 것은 물론, 서로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부족해 상대방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히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입주자는 X와 재회하기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싶어하고, 그 지점에서 1차적으로 <환승연애>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서사가 깊지 않아 생기는 또 다른 문제는 소통의 오류다. 연애 기간이 짧다고 해서 마음의 깊이가 얕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보지 못한 게 많아서 오래 연애한 커플보다도 더 큰 미련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승연애3>의 단기 연애 커플의 서사가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서로를 오래 봐오며 우여곡절을 함께해 온 탓에 서로 거리를 두는 와중에도 습관처럼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신경쓰는 애틋한 그림이 <환승연애3>에서는 좀처럼 연출되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휘현X혜원의 ‘사탕 사건’만 보더라도, ‘그런 것에 상처받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정짓는 모습에서 X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사실 혜원이 그럴 성격이 아니라 판단했다 하더라도 전 애인에게 이별 택배로 받은 선물은 공유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이 또한 깊지 않은 서사에서 비롯된 배려의 부재 때문이라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비단 휘현X혜원 커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결여된 채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한 이들의 일방적 투정에 시청자는 도통 공감하지 못하고, 자연스레 프로그램의 몰입도도 떨어지고 만다.


PD 교체로 우려의 목소리가 크던 시즌3 방영 전, 김인하PD는 인터뷰를 통해 3만명에게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을 만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진정성 있는 출연자를 섭외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 지난 시즌을 뛰어넘을 만큼의 서사를 가진 출연자 조합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13년의 최장기 연애 끝에 이별한 동진X다혜 커플 정도? 시즌2의 희두X나연의 싸움들이 큰 화제를 모았는데, 그건 ‘싸움’이라는 행위 그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서로 상처주는 말을 주고받아도 애정이 기저에 깔려있어 묘하게 재회를 응원하게 되던 지난 시즌의 싸움들과는 달리, <환승연애3>의 싸움들은 그저 소모적이고 신경질적으로 다가온다.



출연자 간 관계성 부족


<환승연애2>의 일등공신으로는 이진주PD를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감정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줘 소위 말하는 ‘도파민 폭발’을 촉발한 출연자들의 공도 크지만, 이들을 한 곳에 모은 것은 제작진의 몫이 아니었던가. X 커플과 New 커플, 심지어는 동성 입주자들 간의 우정까지, 아무나 붙여놔도 잘 살던 케미 또한 <환승연애2>의 관전 포인트였다.


시즌2의 경우, 화면 너머의 티키타카만 봐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매력적인 출연자들의 섭외 비하인드마저 화제가 되었다. 인품이 훌륭한 남성 입주자를 찾아내기 위해 #모자여행 등의 해시태그를 사용했다는 전언부터, 케미스트리가 좋을 것 같은 조합을 완성하기 위해 제작진이 출연자를 오랜 기간 지켜보며 라포 형성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소식까지. 최종선택 직전 출연자 남희두가 제작진을 붙들고 울먹이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진정성을 이끌어내려는 제작진의 노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시즌3는 어떨까? <환승연애3>가 지난 시즌에 비해 가장 힘을 못 쓰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X 커플 사이의 서사나 애틋함이 부족한 것은 차치하고, 동성 입주자들 사이의 우정이 눈에 띄지도 않으며 시즌2의 해은-희두, 나연-원빈 사이에 보였던 남매 케미(서로에 대한 이성적 호감이 배제된 상호 응원 관계)가 발견되지도 않는다.


<환승연애2>에서는 해은-나연-나언의 우정이 비중있게 다뤄진 탓에 ‘해나나’라는 조합명까지 탄생했었다. 해은과 나연, 그리고 나언과 해은은 각각 규민과 현규를 사이에 둔 전여친/현썸녀 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하는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랬던 시즌2와 달리, 이번 시즌에서는 서로 얽혀있는 관계에 있는 출연자들이 서로를 피하거나 견제하는 모습을 보여 입주자 사이의 관계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관계성을 소개하고 싶다. 이별한 지 10년이 넘은 상태에서 출연한 시즌1의 코코X민재 커플은 친구로서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응원하는 훈훈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결국 누구와도 매칭되지 않았지만 10년 전에 비해 성장한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홀로 드라이브를 즐기던 이코코의 최종 선택 장면은 ‘코코엔딩’이라는 고유명사를 탄생시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들의 관계가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굳이 재회 의지가 없는 이들의 관계도 이런 식으로 흥미롭게 그려질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시즌2의 현규X나언 커플도 비슷한 관계 양상을 보였다. X 커플의 관계가 단순히 재회 or 이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결말로 향해 가는 과정도 <환승연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데, 시즌3에서는 X 커플들의 관계 양상이 뻔하고 단조로운 것이 아쉽다. 이런 스토리는 오직 <환승연애>에서만 볼 수 있으니까.


<환승연애>는 어쨌든 예능이다. 따라서 시청률과 화제성을 잡으려면 무엇보다도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한다. 출연자들은 전문 예능인이 아니기 때문에 출연자 섭외부터 시작해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얽혀있는 관계에서 나오는 재미를 극대화하는 건 연출을 맡은 제작진의 몫이다. 메인 PD가 교체된 탓일까? 지난 시즌들에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던 입주자 간 관계성이나 입주자 개개인의 매력이 시즌3에서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출연자 몇 명이 소위 말하는 ‘빌런’으로 비춰지기도 하고, 그 영향으로 각종 커뮤니티에는 특정 출연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콘텐츠만 넘쳐나게 되었다.



주요 장면의 아쉬운 연출


제작진의 연출적 한계는 그 밖의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환승연애> 시리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메기(추가 입주자) 투입, X 커플 공개와 같은 주요 장면의 연출 또한 너무 뻔해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즌2의 경우 남희두의 첫 등장을 전날 투입된 성해은과의 데이트 상대로 연출함으로써 입주자에게 혼란을 줌과 동시에 시청자에게도 큰 임팩트를 남겼다. 그들의 데이트가 무려 롯데월드 통대관이라는 스케일로 진행된 덕분이었다.


그러나 시즌3에서는 메기 투입 타이밍이 너무 늦었던 데다가, 첫 여성 메기였던 공상정이 본격적인 입주 전에 이주원과 데이트의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탓에 그들의 데이트가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작용되지 못했다. 결국 상정은 X인 민형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렇다 할 러브라인 없이 혼자 외로움을 견디는 모습만 보여줄 뿐이었다. ‘판을 흔든다’라는 목적으로 투입된 메기가 빈약한 연출 때문에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꼴이 된 것이다.


X 커플 공개는 더욱 김빠지게 진행되는데, 첫 시즌의 경우 X 공개의 타이밍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을 것임은 인정한다. 시즌1 당시, 출연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다가 주인공이 시간을 되돌리기 직전의 장면에서 깜짝 X 공개 타임을 맞이했다. 이때의 X 커플 공개는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아직까지도 훌륭한 연출로 회자될 만큼 큰 임팩트를 남겼다.


그렇다면 제주도에서 X가 공개된다는 사실을 알고 제주도에 도착한 시즌2의 경우는 어땠을까. 제주도에 도착한 날 저녁에 X 커플이 공개된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것을 고려해, 제작진은 ‘커플템’이라는 소재를 활용하여 X 공개 대신 그날 데이트를 했던 커플들의 커플템을 맞히는 VCR을 트는 척 함정을 놓는다. 당연히 X가 공개될 줄 알았던 입주자들이 ‘어? 아니었네?’하며 한 시름 놓는 동안, 시즌1과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X 커플을 공개해 반전 있는 연출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성의를 보였다. 그러나 시즌3의 경우, 출연자나 시청자 중 어느 한쪽이라도 속이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막 제주도에 도착한 출연자들의 눈앞에는 모두가 둘러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소파와 빔을 쏠 수 있는 스크린이 있다. 자연스럽게 소파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출연자들이 한마디씩을 거든다. “X 커플 공개하려나 봐.”, “올 게 왔구나.” 그 뻔한 세팅과 대사 모두가 너무나 대놓고 X 공개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오히려 그게 반전의 밑밥인가 싶었다. 진짜 여기서 공개할 거라면 이렇게 대놓고 X 공개를 예측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보여줄 리가 없어. 에이 이건 너무 뻔하지, 하고.


그런데 아니었다. 입주자 모두가 예상한 것 그대로 X 커플의 사전 만남 영상 시작. 긴장감? 없었다. 반전? 없었다. 심지어는 시즌2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타이밍에 두 명의 메기가 연달아 입장. 그들이 각각 상정과 광태의 X라는 사실이 공개되고 즉석에서 데이트 상대를 지목하는 과정에서조차 아무런 와우 포인트가 없었다.



환승연애 12화와 13화가 동시 공개된 지난 금요일, JTBC로 거처를 옮긴 이진주PD의 새 예능 <연애남매> 1화가 공개되었다. 의리로 보는 <환승연애3>에 매화 실망하고 있던 입장에서, 그리운 이진주PD의 연출이 <연애남매>에 그대로 담겨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첫화를 시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장면 없이 빠른 호흡으로 편집된 여덟 남매들의 첫 만남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으며, ‘역시 이진주’라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마 기존 환승연애의 연출을 좋아했던 시청자라면 어딘가 익숙한 <연애남매>에 충분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첫 만남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출연자 각각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특유의 연출과 군더더기 없는 편집,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과하지 않게 삽입되는 bgm까지. 내가 사랑했던 <환승연애>의 특징들이 전부 여기 있었다. 그러면서도 남매가 함께 출연한다는 특징을 살려 부모님의 분량까지도 적절히 녹여내는 신선함에는 무릎을 탁! 쳤다. 이게 이진주PD구나. 메인 피디의 역량은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퀄리티를 좌지우지하는구나.


<환승연애3>은 앞으로 6개 회차를 남겨두고 있다. 물론 <환승연애> 시리즈는 출연자들이 제주도로 떠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들 하지만, 솔직히 이렇다 할 임팩트 없이 루즈하게 펼쳐지던 그동안의 흐름이 제주도를 기점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할 것이라는 기대는 갖기 힘들어 보인다. <환승연애3>가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교훈.


첫째, 성공한 시리즈일수록 뚜렷하던 포지셔닝이 흔들리면 본래의 매력을 잃기 쉽다.

둘째, 연애 프로그램 성공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건 성별과 무관한 출연자 간의 관계성이다.

셋째, 프로그램 메인 PD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기는 어렵지만, 여태 봐온 분량이 아까워서라도 나는 기어코 <환승연애3>를 마지막까지 지켜볼 것이다. 입주자들이 드디어 제주도로 떠난 만큼, 여러 이유를 들어 비판하는 글을 써내려간 시간이 아까워질 정도로 흥미진진한 전개가 전국의 ‘환친자’들을 기다리고 있기를. 부디 <환승연애3>가 결말에 다다라서는 ‘환승연애’라는 성공한 시리즈의 명성을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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