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은채 Mar 07. 2023

우리 모두를 닮아있을 정대만

‘정대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무엇인가? 중학 MVP로서 약팀을 우승으로 이끌던 모습? 모종의 이유로 앞니가 사라진 채 머릿결을 찰랑대며 패거리를 몰고 다니던 모습? 안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농구가 하고 싶다’라는 진심을 고백하던 모습? 혹은 ‘내 이름을 말해봐’를 연신 되뇌며 비틀대는 와중에도 3점 슛을 성공해 내던 모습? 정대만은 엄밀히 말해 슬램덩크의 주인공이 아니다. (물론 북산고 선수들 모두를 주인공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슬램덩크는 강백호라는 명백한 주인공이 존재하는 만화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급조된 캐릭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이야기의 주축을 담당하는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대만의 서사에는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다양한 인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혹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인격적으로도, 실력적으로도 성장해가는 와중 유일하게 바닥까지 추락했다 재기에 성공하는 캐릭터가 바로 정대만이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모자란 부분이 많은 것 같다가도 결전의 순간 팀에 필요한 한 방을 제공하며 불꽃남자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광고학을 배우며 접했던 ‘양면효과’라는 것이 있다. 제품의 긍정적인 특징만 나열했을 때보다 부정적인 면을 함께 노출했을 때 더 큰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이론이다. 정대만에게도 이 ‘양면효과’가 통했던 것일까? 우리 모두의 어떤 면을 조금씩 닮아있을 정대만. 그는 매력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슬램덩크 세계관에서 줄곧 인기투표 1위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정대만에게 포기란?



정대만과 ‘포기’라는 단어 사이에는 강력한 연결고리가 있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그를 포기가 빠른 남자라고도, 혹은 그 스스로의 말처럼 포기를 모르는 남자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나는 정대만을 포기한 적 없는 남자라고 칭하고 싶다. 정대만은 농구를 포기한 적이 없다. 무릎 부상을 입은 뒤 농구부를 떠나 방황의 시기를 보내던 동안에도 그는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단지 자존심을 굽힐 줄 몰라 포기하는 ‘척’을 했을 뿐. 그가 정말로 농구를 포기했다면,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농구부를 박살내겠다며 북산고 체육관에 쳐들어가는 대신, 언제 어디서 농구와 관련된 소식이 들려와도 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 했던가. 기를 쓰고 농구를 짓밟으려는 방황기 정대만의 모습은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는 “내가 찬 거야!” 하고 전 애인 욕을 하며 뒤에서 눈물짓는 사춘기 소년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실제로 그는 사춘기를 지나는 소년이었고, 처음 겪는 실패와 좌절 앞에 대응할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구체적인 상황은 다르지만 계속해서 농구를 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닥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농구공을 퉁기는 송태섭이 정대만의 눈에 특히나 눈엣가시로 비춰진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농구로 향하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데, 저 자식은 어떻게 저렇게 꼿꼿할 수 있지?’ 사춘기 소년 정대만에게는 자존심을 굽히고 송태섭에게 그 방법을 묻는 것보다 그의 의지를 꺾어놓는 편이 더 쉬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송태섭의 의지가 꺾였을 때 비로소, ‘그래, 내가 농구를 포기한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당연한 거야.’ 하는 정당성이 부여될 것이므로. 그러나 송태섭은 가정이 흔들려도, 전학 온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농구할 곳을 잃어도, 정대만 패거리에게 얻어맞아도 농구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럴수록 정대만은 농구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더 깊은 곳에 숨기게 된다. 그걸 드러내는 순간, 자신이 겁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스스로도 속아버릴 만큼 농구에 대한 사랑을 꽁꽁 숨겨왔던 정대만은 결국 안 선생님 앞에서 무장 해제되고 만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



이 장면이 그렇게나 명장면으로 꼽히는 것은, 농구에 대한 진심이 그의 드높은 자존심을 넘어 버린 순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안 선생님이 등장하기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네 진심이 농구를 향해 있다면 농구부로 돌아가는 것을 응원하겠다’라던 영걸이의 말에 그럴 일 없다며 한껏 성을 낸 정대만이었다. 그런 그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농구가 하고 싶다’라는 말을 입 밖에 내게 한 건 안 선생님이었다. 정대만과 그의 반항심을 무력화시키는 유일한 인물인 안한수 감독과의 첫 대면 장면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강조하는 대사가 등장한다. 이는 이후 정대만이 안 감독에게 맹목적인 존경심을 갖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 돼.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 거야.



정대만은 농구를 포기한 적 없다. 그렇기에 그의 농구 생활도 끝나지 않는 것이다.     




          

‘정대만’이라는 이름     



정대만이 남긴 수많은 명장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래 나는 정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참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는 상대편 수비수에게 자신의 이름이 뭐냐며 중얼대다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는군. 워낙 자잘한 개그씬이 자주 등장하는 만화이니까, 이것도 하나의 개그 포인트로 삽입된 장면인가? (물론 지금도 웃기려는 의도가 아예 배제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북산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정대만은 그의 이름으로 불린 횟수보다 중학 MVP라고 불린 횟수가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보통 남들이 갖지 못한 수식어를 손에 쥐게 되면 그것이 그 사람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름이 되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곤 하니까,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정대만에게 ‘무석중 출신 중학 MVP’라는 수식어가 이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정대만이라면 MVP라는 수식어에 부담을 느끼기보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마음의 일종으로 스스로를 MVP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선수라 증명해 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랬던 그이기에 부상으로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상에 고개 숙인 전직 MVP. 그 수식어가 갖는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한계를 속단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서 혼자 드리블 연습을 하는 송태섭에게 환한 얼굴로 다가가 원온원 상대가 되어주기를 자청하는 정대만의 모습이 그의 성격을 가장 완벽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인생에서 장발의 방황기를 빼면, 그는 한결같이 밝고 구김살 없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전형을 하고 있다. 눈물의 고백 이후 자신의 어리석었던 지난날을 인정하고 다시 팀원들과 어울려 제 몫 이상을 해내는 모습을 보면, 인간 정대만은 단지 전직 MVP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며 인격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 느껴진다. 오히려 MVP라는 칭호가 그의 정체성을 한정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보는 사람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정대만 자신은 MVP라는 이름에 갇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답답함을 느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대만은 단순히 농구를 잘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위기 앞에서 도망은 쳤을지언정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며, 좋아하는 무언가 때문에 인생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을 만큼 열정적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설령 그 방식이 잘못되었다 해도, 인생을 바쳐 사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그를 한층 더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밖에도 그는 한때 사이가 나빴던 동료와도 과거를 들추지 않은 채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나갈 줄 아는 사람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후배가 있다면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어주는 여유까지 갖추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농구에 대한 애정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그의 정신력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되뇌고, “포기를 모르는 남자”로 그 결론을 냈다는 점은 매우 유의미하다. ‘농구를 잘하는 것’이 목표의 전부였던 그가 MVP라는 수식어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짜 이름 ‘정대만’을 되찾으며 3점 슛을 넣는 족족 성공시키는 장면은 그렇게 웃음 포인트를 넘어 눈물 버튼이 되었다.     



다들 조용히 해! 이 소리가 날 되살아나게 한다. 몇 번이라도 다시...



정대만을 살아나게 하는 것은 자신을 ‘MVP’로 인정해주는 주변의 시선이나 열띤 응원이 아니다. 포기를 모르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정대만’이라는 주체가 코트 위에서 쏘아 올린 공이 림을 깔끔히 통과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몇 번이고 되살아날 정대만은 영원히 농구를 포기할 수 없다.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것 때문에 역설적으로 고통받고 무너졌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다시 일으키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내가 사랑하는 그 대상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사람이라면, 정대만이라는 인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대만은 그렇게 우리 모두를 닮은 모습을 한 채로, 다시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할지라도 몇 번이고 우리 안에서 되살아나고 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