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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 Aug 17. 2023

슬기로운 도서관 사용법

사서는 백조일까!

-어머, 도서관 사서세요? 너무 부럽다, 그럼 책 많이 읽겠어요. 내 직업을 말하면 가장 흔한 반응이다. 우아하게 앉아 책을 읽고, 대출반납이나 해주며 한가롭게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책표지는 많이 보지요. 사서가 젤 무식해요. 이런 자조 어린 답을 한다. 백조가 물에 떠 있기 위해 물 아래서 발차기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사서라는 직업은 겉보기와 달리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부분 혼자 다 처리한다.  



공공도서관이나 직원이 많은 경우를 제외하면  말 그대로 학교도서관 사서는 잡부다. 교실 두 칸 크기든 세 칸 크기든 학생이 백 명이든 이천 명이든 그 공간을 오롯이 혼자 관리해야 하니 잡부일 수밖에 없다. 



우선 누구나 아는 대출 반납, 서가 정리, 도서관 수업 관리, 청소, 책 수서, 등록, 장비 작업, 방과 후 아이들의 수업 시작을 알려주는 역할까지 업무는 한정이 없다. 물론 다른 직업에 비해 우아하게 앉아 책을 볼 시간이 좀 더 확보되는 것은 확실하다. 



장서 전체를 다 읽지 못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이나 주제를 파악하는 일 정도는 해야 하기에 책표지와 목차는 다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간혹 필요해서 학부모가 봉사시간에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민원이 접수된 적도 있다. 학부모에게 일 시켜놓고 사서는 책 읽으면서 놀았다는 내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몹시 당황했다. 나에게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학교 전화로 윗분에게 직접 통화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말이 좋아 사서지 봉사 오는 학부모 눈치까지 봐야 하니 이 자리가 어찌 우아하다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사서는 정말 좋은 직업이잖아요. 너무 부러워요. 학부모가 도서관 봉사를 오면 열에 세넷은 꼭 이런 말을 한다. 그리고 2시간 후 도서관 문을 나서면서 나를 아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총총 사라진다. 



짧은 시간 수없이 열렸다 닫히는 문, 비슷한 질문을 하는 아이들, 아무렇게 던져진 책을 정리하고 나 한숨 돌리면 다시 바구니에 쌓인다. 열람대 위의 책을 치우고 의자를 밀어 넣고 돌아서면 시작종이 울리고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온다.



책의 무게는 한 권일 때 미미하지만 수십 권을 들고 나르다 보면 절로 어깨나 손가락 관절에 통증이 생긴다. 학생에게 뽑은 자리에 도로 가져다 놓게 교육하는 게 일 아니냐 반문하기도 한다.



책자리 표를 사용해 읽을 책을 뽑고 그 자리에 끼워두게 여러 번 교육을 하지만 늘 실패한다. 학급에서 사용하는 번호를 그대로 책자리 표 번호와 일치 시켜보기도 하지만 잠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교육을 받았으니 제자리에 책을 가져다 놓아야 하지만 책자리 표 따로 책 따로 꽂히는 일이 다반사다. 나중에 책자리 표 정리까지 해야 하는 일은 덤이다. 아무 데나 꽂은 책을 찾으려면 온 도서관을 뒤지는 일로 하루가 다 가기도 한다.



늘 책과 함께하니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도 제자리에 꽂아두고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찢긴 책을 보수하고 너덜거리는 책표지를 최대한 원상태로 복구하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



고심하여 수서 한 신간도서가 날개 돋친 듯 대출되어 나갈 때 더없이 행복하고 보람차다. 사서가 우아한 직업이라 느낄 때는 간혹 찾아오는 빈 시간에 수만 권의 책과 오롯이 대면하는 순간이다.



한 권 한 권 내 손을 거치지 않는 책이 없으니 간혹 자식 같기도 하다. 사랑받으면 뿌듯하고 외면하면 안쓰러워 자꾸 앞쪽으로 밀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내 마음이 담기지 않아 사랑받지 못한 게 아닐까 반성을 한다.



늘 책과 가까이하니 행복하시겠어요? 이런 질문도 자주 받는다. 그렇다. 나는 사서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도서관에 앉아 책 향을 맡으며 아이들이 던져두고 간 책을 정리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3층 구석진 자리에 있던  도서관에 처음으로 들어선 날, 초록색 표지에 금색으로  제목이 새겨진 문학전집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수천 권의 책을 위로 아래로 옮기며 생긴 통증은 내 훈장같은 직업병이다.





하루에 한 번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사심이 가득 담아 수서 한 소설집을 한 권 꺼내 읽는다. 남들이 우아한 직업이라 불러주는데 굳이 잡부라고 말하는 나, 쭈그려 앉아 책에 쌓인 먼지를 닦아 열을 맞춰 바로 세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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