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사랑이다.
마음먹은 걸 행동으로 옮기는데 대체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간과 돈 그리고 효용성을 따지느라 그러기보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탓이다.
세상에 나를 아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싶지만 늘 그랬다. 사람들이 이런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가족에게 적당히 공부하는 일이라고 핑계를 대야겠지? 이런저런 고민으로 포기하고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 수없이 많았다.
뭘 하고 싶은데?
나는 예체능에 재능이 없는 편이다. 없는 게 아니라 없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재능이 없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야 하는데 주로 하고 싶은 일이 그쪽이다.
노래, 춤, 악기 등등. 그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춤이다. 재능과 상관없이 본능에 충실한 삶이었다면 나는 춤을 추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한국인 중 춤, 노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러나 춤은 대체로 부정적인 시선이 강했다.
처음 춤을 배우고 싶어 동호인 모임에 간 것은 사십 대 초반이었다. 내 주변 모든 것이 나를 힘들게 하던 시절이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내 삶을 지탱한 무엇이 필요했던 시기, 하필 춤이 배우고 싶었다.
스무 살 무렵, 통기타를 배우는 게 유행이었다. 돈을 모아 기타를 샀다. 머리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으니 악기만 있으면 멋지게 아침이슬을 연주하며 눈 감고 노래를 부를 줄 알았다.
학원에 등록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강습을 받으러 다녔으나 손끝에 물집만 생기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반년을 배우다가 포기했다. 기타 줄이 녹슬고 먼지가 쌓여갔다.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동안 기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악기는 내 영역이 아니었다.
살사를 배우게 된 것은 기타를 배운 지 이십여 년이 흐르고 나서다. 동호회 모임에 시간이 맞는 게 살사 밖에 없었다. 구석기시대쯤으로 역행한 이야기지만 그때 중년들은 무엇이 배우지 못해 안달이었다. 수많은 동호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취미 카페에 가입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발견한 것이 살사였다.
돌파구가 필요했다고 변명을 해보지만, 마흔 살이 되면 뭔가 이루어져 괜찮은 삶을 살 줄 알았다. 그러나 내 뜻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삶, 춤은 내가 할 수 있는 안간힘이었고 반항이었다. 내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 삶에 춤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이다.
내 최초의 춤의 기억은 6학년 운동회 때 처음 배운 포크댄스였다. 막 이성에 눈을 뜬 시기였을까! 남자아이의 손을 잡지 않으려고 일부러 멀리 떨어져 동작을 익혔다. 반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파트너를 바꾸며 추는 춤이었다. 어색한 동작이 몸에 익자 음악과 한 몸이 되었다.
한 달 넘게 연습하면서 나는 춤이 너무 좋아졌다. 티브이에서 방영되던 외국 드라마의 파티 장소에 내가 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주인공들의 상기된 표정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그런 나를 눈여겨보았는지 반대표로 원안에서 춤을 추게 해 주셨다. 그 황홀함이라니.
그 후였을까. 춤은 어떤 종류든 다 배우고 싶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흰옷을 입고 췄던 포그 댄스가 내 영혼을 두드렸을지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드러내는 일에 늘 제재가 있었고 서툴렀다. 춤은 내 안에 숨은 끼 혹은 욕망을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 되어주었다.
살사는 포크댄스 후 처음으로 배운 춤이다. 내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줄 알았는데 역시 재능이 없었다. 혼자 추는 춤이 아니니, 설사 내가 재능이 있어도 파트너와 호흡이 중요했다. 강사처럼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뻣뻣한 내 몸은 여기저기서 삐걱댔다.
요즘 뭐 해? 춤추러 다녀, 뭐, 춤? 상대는 내 대답에 벌써 실망한 기색을 내비친다. 남편이 허락했어? 내 취미생활을 왜 남편에게 허락받아야 해? 남편들이 싫어하잖아. 상대는 세상에 가장 도덕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적당하게 떨어져 앉는다.
춤은 가장 친한 사람에게 내 취미라고 말하는 것도 망설이게 하는 영역이다. 모든 나쁜 것의 온상이라는 편견 탓이기도 하고 그 편견을 만든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춤을 사랑한다. 살사 역시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살사는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의 강습으로 가능한 춤이 아니었다. 뭐든 오롯이 집중하고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시도했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이후부터 내 취미는 춤이라는 카테고리를 형성할 만큼 방대해졌다.
많은 춤을 배우고 춰보려 노력했지만 일관되게 초보 수준에 머물렀다. 하고 싶으면 일단 시도해 보고 나와 맞지 않으면 그만둔다. 경험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도 하고 또 다른 것을 찾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나에 집중해서 일가를 이루는 삶도 좋고 경험이 풍부한 삶 역시 좋다. 소설을 읽다가 훌라가 배우고 싶어졌다. 이 춤을 배워 하와이 여행을 가 현지인들과 호흡을 맞추고 싶다는 장대한 꿈을 꾸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는 배울만한 장소가 없어 조금 먼 지역에서 강습을 받았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가족들 저녁식사를 챙기고 지하철을 타고 가 강습을 받았다. 훌라는 노랫말을 몸동작으로 표현하는 춤이다. 그동안 배운 춤에 비해 어렵지 않았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두 달만 배우고 다음을 기약했다.
열정만으로 해결되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 아는 나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먹은 걸 실천하는 삶을 지향하며 살고 싶다. 나이만큼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일궈가고픈 열망이 더 커졌다.
그리고 어떤 시도 앞에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포기라는 수순을 밟는다. 그래도 해보자. 해보고 나랑 맞지 않으면 그만두면 되니까. 이런 마음으로 취미를 모으는 중이다.
뭐든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고 강박을 버리면 생이 풍요로워진다.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기 위해 나와 맞지 않는 일을 시작했으니 끝까지 완성해야 하는 부담감을 버리면 말이다.
자격증을 따거나 전문적인 일이 아닌 이상 그럴 일은 많지 않다. 오래 한다 해도 끝맺음이라는 정확한 지점이 없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니 이제 무엇이든 궁금하면 일단 도전해 보자, 마음먹은 것 자체가 기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