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 Aug 17. 2023

슬기로운 도서관 사용법

사서는 백조일까!

-어머, 도서관 사서세요? 너무 부럽다, 그럼 책 많이 읽겠어요. 내 직업을 말하면 가장 흔한 반응이다. 우아하게 앉아 책을 읽고, 대출반납이나 해주며 한가롭게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책표지는 많이 보지요. 사서가 젤 무식해요. 이런 자조 어린 답을 한다. 백조가 물에 떠 있기 위해 물 아래서 발차기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사서라는 직업은 겉보기와 달리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대부분 혼자 다 처리한다.  



공공도서관이나 직원이 많은 경우를 제외하면  말 그대로 학교도서관 사서는 잡부다. 교실 두 칸 크기든 세 칸 크기든 학생이 백 명이든 이천 명이든 그 공간을 오롯이 혼자 관리해야 하니 잡부일 수밖에 없다. 



우선 누구나 아는 대출 반납, 서가 정리, 도서관 수업 관리, 청소, 책 수서, 등록, 장비 작업, 방과 후 아이들의 수업 시작을 알려주는 역할까지 업무는 한정이 없다. 물론 다른 직업에 비해 우아하게 앉아 책을 볼 시간이 좀 더 확보되는 것은 확실하다. 



장서 전체를 다 읽지 못하지만 대략적인 내용이나 주제를 파악하는 일 정도는 해야 하기에 책표지와 목차는 다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간혹 필요해서 학부모가 봉사시간에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민원이 접수된 적도 있다. 학부모에게 일 시켜놓고 사서는 책 읽으면서 놀았다는 내용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몹시 당황했다. 나에게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학교 전화로 윗분에게 직접 통화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말이 좋아 사서지 봉사 오는 학부모 눈치까지 봐야 하니 이 자리가 어찌 우아하다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사서는 정말 좋은 직업이잖아요. 너무 부러워요. 학부모가 도서관 봉사를 오면 열에 세넷은 꼭 이런 말을 한다. 그리고 2시간 후 도서관 문을 나서면서 나를 아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총총 사라진다. 



짧은 시간 수없이 열렸다 닫히는 문, 비슷한 질문을 하는 아이들, 아무렇게 던져진 책을 정리하고 나 한숨 돌리면 다시 바구니에 쌓인다. 열람대 위의 책을 치우고 의자를 밀어 넣고 돌아서면 시작종이 울리고 우르르 아이들이 몰려온다.



책의 무게는 한 권일 때 미미하지만 수십 권을 들고 나르다 보면 절로 어깨나 손가락 관절에 통증이 생긴다. 학생에게 뽑은 자리에 도로 가져다 놓게 교육하는 게 일 아니냐 반문하기도 한다.



책자리 표를 사용해 읽을 책을 뽑고 그 자리에 끼워두게 여러 번 교육을 하지만 늘 실패한다. 학급에서 사용하는 번호를 그대로 책자리 표 번호와 일치 시켜보기도 하지만 잠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교육을 받았으니 제자리에 책을 가져다 놓아야 하지만 책자리 표 따로 책 따로 꽂히는 일이 다반사다. 나중에 책자리 표 정리까지 해야 하는 일은 덤이다. 아무 데나 꽂은 책을 찾으려면 온 도서관을 뒤지는 일로 하루가 다 가기도 한다.



늘 책과 함께하니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아도 제자리에 꽂아두고 다음 손님을 기다린다. 찢긴 책을 보수하고 너덜거리는 책표지를 최대한 원상태로 복구하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



고심하여 수서 한 신간도서가 날개 돋친 듯 대출되어 나갈 때 더없이 행복하고 보람차다. 사서가 우아한 직업이라 느낄 때는 간혹 찾아오는 빈 시간에 수만 권의 책과 오롯이 대면하는 순간이다.



한 권 한 권 내 손을 거치지 않는 책이 없으니 간혹 자식 같기도 하다. 사랑받으면 뿌듯하고 외면하면 안쓰러워 자꾸 앞쪽으로 밀어주고 싶은 심정이 된다. 내 마음이 담기지 않아 사랑받지 못한 게 아닐까 반성을 한다.



늘 책과 가까이하니 행복하시겠어요? 이런 질문도 자주 받는다. 그렇다. 나는 사서라는 직업을 사랑한다. 도서관에 앉아 책 향을 맡으며 아이들이 던져두고 간 책을 정리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3층 구석진 자리에 있던  도서관에 처음으로 들어선 날, 초록색 표지에 금색으로  제목이 새겨진 문학전집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수천 권의 책을 위로 아래로 옮기며 생긴 통증은 내 훈장같은 직업병이다.





하루에 한 번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사심이 가득 담아 수서 한 소설집을 한 권 꺼내 읽는다. 남들이 우아한 직업이라 불러주는데 굳이 잡부라고 말하는 나, 쭈그려 앉아 책에 쌓인 먼지를 닦아 열을 맞춰 바로 세워준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도서관 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