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많던 적던, 깊던 얕던 어느 정도의 무언가를 숨기며 살아간다. 이면에는 누구나 어떤 고통을 숨기고 살아간다. 모든 것이 완전한 삶이란 없다. 그렇기에 저 고대의 석가의 통찰은 옳았다. 삶 그 자체가 고통이기에 우리는 연대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 옛날부터 부족과 더 나아가 나라를 이루며 살아왔는 지도 모른다.
현대사회에서는 인터넷과 SNS로 사람들은 연결되어 살아간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독서와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걸 느낀 후로 인터넷과 SNS에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 또한 소소하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라는 것이다. 인터넷은 필요한 정도로만, SNS는 아예 어플을 지워버렸다. 처음에는 삶에 구멍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그만큼 인터넷과 SNS가 내 인생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리라. 일상을 살아가며 빈 시간, 공백인 시간은 전부 인터넷과 SNS로 메운 후폭풍이었다. 멀리 떠나오고 나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SNS를 바라보니 생각 없이 보던 쇼츠와 피드들에 숨겨진 내막들이, 처음에는 애써 모른 척했지만 점점 중독되어 가며 무뎌지고 망각하게 되었던 민낯을 알 것 만 같았다. 인터넷과 SNS 세상에는 자존감과 자기애가 넘쳐나는 사람들만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이 들어가며 뜻대로 되는 일보다 뜻처럼 안 되는 일들 투성이의 세상에서 살아가다 보니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만 같은 사람들의 게시물들은 나의 집중력도 앗아갔지만 나의 개성도 앗아갔고, 나의 현실감각도 가져간 것 같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만 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나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하지만 처음에 썼듯 완전한 삶이란 진실로 없다. 좋은 일과 행복만이 가득한 곳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이다. 형이상학적 개념일 뿐이다. 육신을 가진 인간에게 완전한 삶이란 없다. 인간이란 원래 존재자체로 모순덩어리 이기 때문이다. 인류와 인간은 이러한 모순 속에서 많은 변명과 자기합리화를 행하며 이어져 왔다. 대안이라는 이름의 변명을 지속하며 현대인들은 누구나 내가 만든 페르소나 속에 숨어 산다.
이것 역시 일종의 변명일지 모르지만 이런 현상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변화이고 변화에 따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런 기술지상주의의 표어 아래 자기합리화와 변명, 이에 동조하는 군중심리로 익명의 사이버세상은 이루어져 있다. 극소수의 트렌드세터와 대부분의 그 모방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시니컬하고 염세적일 수 있는 글이지만 느낀 것을 느낀 대로 솔직히 적는 것은 언제나 가치가 있다. 이 또한 나의 감정이고 나의 삶의 일부분이기에 자랑스럽게 남겨 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