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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레논 Jun 10. 2024

Real Beach Boy 데니스 윌슨

비치 보이스는 누가 뭐래도 윌슨 패밀리가 중심이 되는 밴드였다. 비치 보이스 내에서는 물론이고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천재인 큰형 브라이언 윌슨이 항상 비치 보이스 전설의 대명사이며 항상 스포트라이트는 브라이언을 향했다. 뛰어난 보컬리스트이며 타고난 리더기질을 지닌 막내 칼 윌슨은 리더 브라이언이 비틀즈와의 라이벌리에서 비롯한 부담감, 환각제와 각종 마약에 의해 정신이 오염되어 갈 때 밴드를 그야말로 멱살잡고 캐리해나갔다. 70년대의 비치 보이스는 누가 뭐래도 칼 윌슨의 감독하에 움직였다. 하지만 우리는 윌슨 삼 형제의 중간에 위치한 둘째, 데니스 윌슨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첫째 형은 비치 보이스를 창립한 인물이자 비치 보이스의 음악 그 자체인 사람이고 동생은 큰형의 빈자리를 메우며 진취적으로 밴드를 이끌어나갈 카리스마를 지닌 타고난 리더였다. 그럼 둘째인 데니스는 밴드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제목에도 적었듯, 데니스는 언제나 훌륭한 드럼을 연주하는 드러머이자 밴드에서 유일한 The Real Beach Boy였다.

왼쪽부터 천재이지만 심약한 첫째 브라이언, 전형적인 리더상 칼, 한량(?) 데니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비치 보이스는 서프뮤직의 대명사이고 비치 컬처의 상징이지만 밴드에서 바다를 즐기고 서핑을 할 줄 알았던 인물은 데니스 윌슨 한 명뿐이었다. 할 줄 아는 걸 넘어서 그는 바다와 서핑을 사랑했다. 또한 당대 젊은이들의 클래식 카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문화, 낙천적이고 향락적인 파티문화를 몸소 실천하며 데니스는 밴드의 정신성을 대표했다. 브라이언이 집에 틀어박혀 곡을 쓰기에 여념이 없고 칼은 밴드의 리더로서 바쁜 투어와 앨범작업에 대한 계획에 여념이 없을 때 둘째 데니스는 그야말로 Sex, Drugs & Rock & Roll 그 자체의 삶을 살며 비치 보이스라는 밴드의 트러블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그의 재능과 음악에 대한 열정 역시 두 형제 못지않았고 60년대 후반부터 조금씩 범상치 않은 자작곡들을 앨범이 수록하기 시작하더니 1970년작 Sunflower에 실린 명곡 Forever를 선보이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여러모로 비틀즈에서의 조지 해리슨을 떠올리게 한다.) 이 후로도 결코 많지는 않았지만 인상 깊은 명곡들을 써내려 가던 데니스는 비치 보이스 멤버들 중 처음으로 솔로앨범을 기획하게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비치 보이스의 앨범에 수록되지 못한 곡들이 쌓여 있었고, 이를 풀어낼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역시도 조지 해리슨의 All Things Must Pass 앨범의 탄생배경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Dennis Wilson - Pacific Ocean Blue (1977)

1970년대 초반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그의 솔로 프로젝트는 1977년이 되어서야 발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의 솔로작 Pacific Ocean Blue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발표된 비치 보이스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 마스터피스로서 대접받게 된다. 밝고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닮은 비치 보이스의 음악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띄는 데니스의 솔로데뷔작은 마치 광란의 파티가 끝난 후에 젖는 허무감과 같은 묘한 우울감이 감돌고 있다. 커버아트에서의 데니스 윌슨 역시 어딘가 우울하며 지쳐 보이는 듯한 감상을 자아낸다. 섬세한 아름다움과 복잡한 화음과 선율을 자랑하는 형 브라이언의 사이키델릭 바로크 팝에 비하자면 데니스의 곡들은 훨씬 더 단순 명쾌하고 스트레이트 하다. 브라이언의 곡이 섬세한 여성성을 띈 다면, 데니스의 곡들은 록트랙은 물론이고 발라드 트랙에서 조차 그야말로 남성적인 터프함으로 무장했다. 타이틀 곡인 Pacific Ocean Blue를 들어보라. 천재 작곡가이지만 브라이언은 결코 쓰지 않을 데니스 만의 독자적인 그루브를 느껴볼 수 있는 블루스 록 트랙이다. 그의 텁텁하고 블루지한 보컬은 발라드 트랙들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침울한 Moonshine과 보사노바 리듬에 영향을 받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적인 You And I 같은 곡에서 느껴 볼 수 있다. 앨범은 비치 보이스의 명랑한 캘리포니아의 햇살과 같은 선샤인 팝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가스펠과 블루스, 보사노바가 어우러진 음울한 걸작이다.


Pacific Ocean Blue는 평단에서 호평을 이끌어내며 높은 평가를 받아 냈다. 하지만 세일즈는 다른 문제였다. 대중들은 캘리포니아 서프 보이의 음울한 자화상은 보고 싶지 않았다. 반면 같은 해에 발표된 비치 보이스의 대표적인 70년대 마스터피스로 꼽히는 앨범 Love You는 오랫동안 정신적인 문제와 고질적인 마약중독에 괴로워하던 브라이언이 의욕적으로 제작한 작품이었고, 평단에서는 음악에 대한 집중력을 되찾았다고 평가하며 천재의 귀환을 반겼고, 세일즈 역시 순조로웠다. 역시 비치 보이스의 정체성은 브라이언 윌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하지만 데니스의 야심 찬 솔로프로젝트는 평단의 마음을 훔쳐냈지만, 대중들에게는 외면받고 말았다. 이는 데니스의 자존감을 앗아갔고, 이후 Bambu라고 명명될 데니스의 솔로 차기작의 작업속도가 지지부진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1983년 데니스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인해 결국 그의 생전에 완성하지 못한 유작앨범으로 남았다.

2017년 레코드 스토어 데이 한정으로 발매된 Bambu (The Caribou Sessions)

그가 남긴 차기작에 담길 여러 곡들은 결코 Pacific Ocean Blue에 뒤처지지 않는 퀄리티를 자랑한다. 이 앨범이 결국엔 완성본이 아니라 데모녹음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미완성이 더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후속작 Bambu는 데모트랙들로 미루어 보아 첫 앨범의 음울함에서 벗어나 좀 더 낙천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곡들로 채워질 예정이었다. 마치 존 레논이 1980년 그의 삶을 마감하며 발표한 곡 (Just Like) Starting Over에서 다가올 1980년대를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던 것처럼.


1983년 12월, 데니스는 자신의 요트의 아래에 무언가 있다며 12월의 찬바다에 잠수를 하였고,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차가운 바다,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친 음주와 마약사용으로 인해 심혈관 질환이 심각했던 그는 심장마비로 불혹을 1년 앞두고 39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Real Beach Boy 데니스 윌슨은 그렇게 바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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