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퍼레논 Jun 25. 2024

Born In The U.S.A. 이 나라에서 태어나

음악 역사상 가장 잘못 인식된 명곡에 관하여

미국의 거대한 깃발아래 기타를 들고 점프를 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명곡 Born In The U.S.A. 의 싱글커버아트는 매우 유명한 이미지이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만 같은 청명하고 명징한 키보드 리프와 함께 우렁차게 뿜어져 나오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보컬 또한 뭔가 가슴 벅찬 나라사랑을 목놓아 외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영어권 나라인 대한민국의 국민인 나 역시도 그렇게 알았던 시간이 꽤나 길었다. 민중가요 특유의 고양감을 고취시키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 모른다. 하지만 가사를 해석해서 보고 난 이후, 나에게 이 곡은 섬뜩한 통찰을 가져다주는 곡이 되었다. 그것은 그 옛날부터 지금 현재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태연히 자행되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 곡은 미국이라는 세계의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강대국에 대한 자긍심이나 우리 미국민들이 만들고 지켜온 자랑스러운 나라 미국을 자화자찬하는 곡이 아니다. 이 곡은 요약하자면 “지옥에서 태어난 남자가 또 다른 지옥으로 보내졌다가 다시 원래의 지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곡 안으로 들어가 가사를 살펴보자.


*곡 해석 및 분석


Born In The U.S.A.


Born down in a dead man's town

The first kick I took was when I hit the ground

You end up like a dog

that's been beat too much

Till you spend half your life just covering up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죽은 사람이나 살기에 적합한 마을에 태어나서

태어나자마자 나는 걷어차였어

너의 인생의 절반은 두들겨 맞는 개 같은 인생으로 결정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 상처를 치료하는데 소비해야 해

미국에서 태어나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지

미국에서 태어나


보다시피 첫 소절부터 꿈과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지독한 자기혐오와 자국의 현실에 대한 자조가 드러난다. 곡의 도입부부터 울려 퍼지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키보드 리프는 매우 밝고 희망차게 들리지만, 화자의 현실은 “죽은 자의 마을”이라고 표현할 만한 미국 시골의 깡촌에서 태어나 개처럼 일하지만 아무 소득 없이 일만 하다 죽을 노동자의 삶을 태어나 면서부터 강제로 결정지어졌다고 말한다. “태어나자마자 걷어차였다”라는 표현은 태어나자마자 고난과 어려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이 남자의 삶은 매 맞는 개같이 두들겨 맞는 일에 절반을 써야 하고 나머지 절반의 삶은 살기 위해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할애되어야 한다. 이는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일하고, 피로와 노동으로 얻은 질병들을 치료하다가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상황에도 TV와 정치인들은 애국심을 고취하고 나라의 위상과 패권을 쥐고 있는 아메리카의 위대함을 떠들어 댄다. 이 남자는 자신의 삶을 알면서도 나는 그래도 미국의 시민이라고 거대한 사회의 당당한 1인이라고 자위한다. 공허하게 Born In The U.S.A. 를 되뇐다.


Got in a little hometown jam

so they put a rifle in my hand

Sent me off to a foreign land

to go and kill the yellow man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별 것도 아닌 동네에서 범죄에 엮였어

그들은 나의 손에 라이플을 쥐어 주고는

외국에 나가서 노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죽이래

미국에서 태어나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


지옥에서 태어난 남자는 뻔한 삶에 지쳐 잠깐 손댄 가벼운 범죄에 엮이게 되고 재판에 회부되었다. 판사는 말한다. “감옥 갈래, 아니면 전쟁터로 가서 조국을 위해 싸울래” 갖은 미사여구를 덧붙여 달콤하게 유혹한다. TV와 정치인들처럼 판사 역시 또 다른 세뇌를 건다. 대의를 위한 싸움이라는, 조국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싸움이라는 명분을 들어 남자를 세뇌한다. “저기 외국에 나가서 피부 노란 애들(베트콩) 좀 죽이고 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미국에서는 범죄에 연루된 젊은이들이 재판에 회부되면 경범죄나 가벼운 범죄일 경우 일부러 규정보다 큰 징역형을 선고하고 전쟁터에 나가면 석방을 시켜주겠다는 파렴치한 교섭을 대놓고 행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에 좌절한 이 남자는 TV미디어와 정치인들의 세뇌이지만 그래도 강대국인 조국을 믿고 자긍심을 가졌지만, 그런 자신을 전쟁터로 내모는 것이 믿었던 국가였다는 사실에 또다시 허탈하게 Born In The U.S.A. 를 외친다. 지옥에서 또 다른 지옥으로 가게 된 것이다.


Come back home to the refinery

Hiring man says "son if it was up to me"

Went down to see my V.A. man

He said "son don't you understand now"


제대한 이후 집에 돌아와 석유정제소에 취직하러 갔어

인사담당이 말하더군 “나에게 인사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그래서 향군회담당관을 만나러 갔지 그 사람이 말했어. “아직도 이해가 안 됩니까?”


전쟁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남자는 또다시 살기 위한 노동을 해야 했고 가는 곳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라는 이유로 취업이 거부된다. 인사담당은 채용을 담당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애써 지으며 나에게 인사권이 있었다면 고용했을 텐데 라는 거짓말로 남자를 돌려보낸다. 남자는 향군회에 왜 취직이 안되는지 문의하러 가보지만 향군회담당관은 싸늘하게 비웃는다. "너 아직도 모르겠어? 나라는 필요해서 전쟁에 널 이용해 먹었어. 물론 이후에 네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안 했지. 네가 돌아온 후에 어떻게 살지는 네가 알아서 하는 거야. 왜 나라에 책임을 물으려 하지?" 이는 당대의 시대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베트남 참전용사들은 전쟁에 참여하여 싸울 젊은이들이 없어서 이것이 애국이라는 허울에 속아 전쟁터로 내몰렸지만 돌아온 현실은 애국자로서, 전쟁영웅으로서의 대접은커녕 대중들에게 까지 비인간적인 전쟁에 참여하여 살인을 저지른 전범들로 취급받으며 차별받았다.


Had a brother at Khe Sahn

fighting off the Viet Cong

They're still there he's all gone

He had a woman he loved in Saigon

I got a picture of him in her arms now


케산이라는 곳에서 베트콩과 싸우던 전우를 기억해

그들은 아직 거기에 있고 그 친구는 전사했지

그 친구는 사이공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어

나는 지금 그녀의 팔에 안겨있는 그 친구의 사진을 가지고 있지


나라에 이용만 당하고 아무런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던 이 남자는 침울한 마음으로 전쟁터에서 전사한 옛 전우의 사진을 품에서 꺼내어 본다. 이 부분은 단순히 전쟁터와 전우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는 장면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사망한 전우나 전투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며 공황에 빠지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고, 전쟁터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전투의 기억이 되살아나며 공황발작에 빠지는 것은 전쟁 PTSD의 대표적인 트리거이다.


Down in the shadow of penitentiary

Out by the gas fires of the refinery

I'm ten years burning down the road

Nowhere to run ain't got nowhere to go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I'm a long gone daddy in the U.S.A.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I'm a cool rocking daddy in the U.S.A.


참회의 그늘 아래에서 석유정제소의 가스화재로 인해

나는 10년간 도로를 불태우고 있어

도망갈 곳도, 갈 곳도 없이

미국에서 태어나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

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났어

쿨하고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


곡의 마지막 부분은 가장 상징적인 메타포가 강한 구간이다. “참회의 그늘 아래에서 석유정제소의 가스화재로 인해 나는 10년간 도로를 불태우고 있어”라는 부분은 해석이 분분하지만 나는 참회의 그늘이란 남자가 교도소에 수감된 것, 아니면 참회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도주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며, 정제소의 가스화재는 자포자기한 그가 방화를 저질렀거나, 방화의 누명을 썼을 것으로 보인다. 10년간 도로를 불태우고 있다는 것은 도주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을 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마음속으로 또다시 자조적으로 나는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나 역시도 멋지게 살고 싶었지만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사회시스템에 희생당했다며 자조하면서 곡은 마무리된다.


* 결론

곡은 비영어권 국가에서만 오해를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가사를 해석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 이야기는  애국심이나 무조건적인 나라에 대한 충성과 사랑의 노래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나라의 무책임한 희생의 강요로 인해 황폐해지는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잔한 진혼곡이며,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저항곡이다. 하지만 이 곡의 밝은 분위기와 에너제틱한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보컬을 등에 업고 Born In The U.S.A.라는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를 통해 당대 미국의 보수적 애국주의를 상징하는 곡으로 정치인들이 이용하기 시작했다. 보수적 애국주의를 강조했던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행정부는 이 곡과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인기를 이용하여 마침 재선을 노리던 해당 행정부에서 이 곡을 선거유세용 음악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당연히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반응은 절대불가. 오히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이미지와 음악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성명을 백악관에 보내기에 이른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라는 아티스트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아티스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가 당대의 애국 보수주의와 당시 행정부와 날을 세우고 대립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사랑했다. 그가 비판한 것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거시적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다. 미시적으로 그는 미국의 드넓은 자연경관을 사랑했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뉴저지의 고즈넉한 여유를 사랑했다. 소시민들의 삶과 사랑, 미국인의 삶을 솔직하게 노래했다. 그것이 그가 노동계급과 사회취약계층에게 “The Boss"라 불리며 수십 년간 존경받았던 이유이다.


Born In The U.S.A. 는 나라와 사회에 이용만 당하는 한 남자의 비극을 통해 미국사회의 구조적 문제, 시스템의 문제점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울려 퍼지는 반복적인 고양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술적인 키보드 리프는 그 자체로 국가와 미디어의 세뇌행위를 상징하는 메타포이다. 애국심을 자극하고,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무책임한 희생을 강요하고 그 후에 벌어질 사태에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비단 1970년대 미국사회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날에도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In The U.S.A. 를 되새겨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작가의 이전글 Musi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