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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레논 Jun 27. 2024

St. Anger를 위한 변명 2

St. Anger의 슬럼프를 딛고 현재까지 건재한 메탈리카

St. Anger를 위한 변명


이제야 본론이다. 나는 왜 그들의 저평가받는 앨범 St. Anger를 변호하기 위해 펜을 들었나. 사실 나의 옛날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나의 어린 시절, 처음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즈음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앨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1988년 생 용띠다. 한국식 나이로 올해 37세인 청년이다. 메탈리카의 St. Anger가 발표된 2003년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로부터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에 막 진학할 즈음, 밀레니엄에 막 들어선 2000년 대한민국의 가요계는 조성모의 아시나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었고, HOT와 GOD, SES 같은 90년대를 휩쓴 아이돌들 역시 아직 건재하며 큰 인기 몰이를 하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직 저렴한 카세트테이프가 많이 사용되던 시기였고 조성모와 HOT 같은 가수들의 카세트테이프 한두 개 없는 아이들이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가요에 열광할 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음악은 따로 있었다. 그 앨범이란 서태지의 6집 앨범 울트라맨이야였다. 이 앨범 역시 2000년에 발표되었다. 어린 나는 강력한 하드코어 메탈 사운드와 강렬한 빨간 레게머리를 하고 헤드뱅을 하는 서태지의 모습에 홀연히 마음을 빼앗겼다.

서태지의 6집
서태지

물론 나 역시도 서태지를 알고 있었다. 비록 서태지와 아이들의 세대도 아니고, 그들의 전성기 때는 아주 어릴 때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나 “환상 속에 그대” , “컴백홈” , “필승” 같은 곡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곡들이었고 나 역시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에서 노래하는 서태지를 본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울트라맨이야” , “대경성” , “오렌지” 같은 곡들은 아마 내 인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Heavyness였다. 그 이후 헤비메탈에 빠져 들...... 었다면 좋았겠지만 당시에는 지금만큼 정보를 얻기도, 공유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였다. 당연히 스마트폰이나 나무위키 같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이트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컴퓨터는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이면 컴퓨터가 있는 집들도 드문드문 있긴 했을 때이지만,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PC방도 있었지만 당시 나의 PC방의 이미지는 어른들이나 노는 형들이 상주하는 무서운 곳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보를 얻을 곳이 없다 보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헤비메탈 사운드가 서태지 고유의 음악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 그런 강하고 묵직하고 빠른 음악을 하는 가수는 없고, 서태지가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무지는 무섭다. 여하튼 시간은 흘러 2003년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헤비메탈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헤비메탈 = 서태지 수준의 지식만 가지고 있던 나는 우연히 케이블 방송 M.NET에서 신곡이라고 흘러나오는 또 다른 Heavyness를 듣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메탈리카의 St. Anger였다.


그들의 강렬한 영상미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며 밑에 자막이 흘러갔다. “80년대부터 활동해온.... 헤비메탈의 제왕.... 전설의 귀환...” 뭐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야말로 음악에 뻑 가버렸다. 세상에 이런 무자비한 음악이 있다니. 16살, 사춘기의 한복판에서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함에 이유 없이 반항도 해보고 일탈도 꿈꾸던 그때, St. Anger는 막힌 속을 뻥 뚫어 줬다. 그다음 수순은 당연히 음반점으로 달려가 그들의 신보를 집어드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그 후로 고등학교 2학년 때 비틀즈를 제대로 알게 되고 폭넓은 음악감상을 하게 되기 전까지 나는 그야말로 “메탈소년”이었다. St. Anger를 시작으로 그들의 80년대 걸작부터 섭렵하기 시작했고, 메가데스, 슬레이어 같은 80년대 헤비메탈부터 주다스 프리스트, 아이언메이든 같은 클래식 헤비메탈까지 헤비메탈의 세계는 넓고도 깊었다. 이것이 내가 메탈리카와, 헤비메탈과 만나게 된 이야기이다.


대중음악은 세상에 나오고 난 이후로는 대중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나름의 논리적 의견을 가지고 평가를 하는 것 역시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St. Anger 앨범을 이성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무언가가 있다. 어떤 이에겐 누군가와 함께 먹고 마신 음식이나 술이 될 수도 있고, 어릴 때 보았던 영화나 만화 일 수도 있다. 나에게 St. Anger가 그렇다. 들으면 20여 년 전 나의 청소년기가 거기에 있고, 그때의 감정이 거기에 있다. 지금은 다양한 음악들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헤비메탈이나 메탈리카를 매일 듣지는 않는다. 나는 20년이 넘게 흘러 이제는 40대를 준비해야 하는 30대 후반의 아저씨가 되었지만, 가끔 St. Anger를 들으면 소년의 기분과 마음으로 돌아가는 나 자신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에 대해 이성적으로 평가나 평론을 쓸 수 없다. 아쉬운 점을 쓰려면 한도 끝도 없이 쓸 수 있는 문제작이지만, 내 어린 시절을 상처 내는 것 같아서 그러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내가 이 앨범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애써 좋게 꾸민 평론이나 평가가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변명 정도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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