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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레논 Jul 10. 2024

그레이트풀 데드와 혁신적 뮤직 비즈니스 2

(1부에 이어서)


4. The Deadheads


앞서 거론했듯이 그레이트풀 데드와 그들의 팬 데드헤즈의 관계는 단순히 스타와 팬의 관계를 뛰어넘은 것이었고, 이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그레이트풀 데드의 마케팅이 특별해질 수 있었다. 데드가 샌프란시스코의 그레이트풀 데드 하우스에 기거할 때부터 그 인연을 이어나간 데드헤즈들은 자체적인 공동체를 이루어 밴드의 투어 여정을 함께 했다. 때로는 밴드와 함께 사이키델릭 하게 채색된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있었고, 따로 행동할 때도 있었지만 그 목적지는 항상 밴드의 공연장이었다.

데드헤즈들의 사이키델릭 투어버스

데드헤즈의 특별한 점은 자체적인 자급자족이 가능한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공동체 인원 중 의학지식이나 실제로 의사나 간호사의 경력이 있는 인원들을 모아 공동체의 전문 의료진을 구성한다던지, 요식업에 종사했던 인원들을 모아 공동체와 밴드의 식사를 책임진 다던지, 의상이나 디자인에 일가견이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밴드의 굿즈를 자체제작하여 판매하는 등 데드와 함께 미국 전역과 세계를 넘나들며 투어를 하는 동안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만들어 냈다.


밴드와 데드헤즈가 투어지에 도착하면 공연장에는 밴드가 등장하기 전 데드헤즈의 마켓인 일명 “Shakedown Street"가 들어선다. 보통 매표소 앞이나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마켓인 Shakedown Street는 아메리칸 스트리트 패션의 원조로 여겨지는 곳 중 하나가 된다. 데드헤즈들과 팬들에게 기증받은 구제옷에 밴드의 마크와 디자인을 박아 넣은 옷들을 제작하고 판매하여 수익을 올리기도 하고 공연티켓을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암표시장도 이곳에서 오피셜 하게 이루어졌다.

데드 굿즈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데드헤즈
Shakedown Street의 전경

이곳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패션 아이콘이 하나 탄생했는데, 인디패션이나 스트리트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디자인은 바로 Grateful Dead Dancing Bear이다.

이 디자인은 밴드의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60년대 히피문화와 사이키델릭 컬처의 중요한 인물인 Owsley "Bear" Stanley가 디자인했다. 그는 밴드의 사운드 엔지니어이자 히피들에게서 매우 널리 알려진 LSD 제조자였다. 많은 히피들이 기골이 장대한 오슬리 스탠리를 베어라고 불렀고 이는 그대로 그의 별칭이 되었다. 데드헤즈는 구제옷에 이 디자인을 꾸며 넣은 옷들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훗날 이 디자인과 구제옷들은 아메리칸 클래식 스트리트 패션의 원조격이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5. 그레이트풀 데드와 데드헤즈, 그들의 마케팅이 대단한 점


그레이트풀 데드의 마케팅이 대단한 이유는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고 현대적인 마케팅을 전개했음에도 현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철저한 이윤과 영리의 논리로 이루어지는 것에 반해 데드의 마케팅은 철저히 자유와 비영리의 논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데드의 자연스러운 마케팅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되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는데 단순히 음악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관계와 교류의 자유를 추구하던 히피적 자세가 팬들과의 자연스럽고 긴밀한 교감을 만들어 내었고 이들이 데드헤즈가 되어 훗날 밴드가 활동을 멈출 때까지 함께 하며 자급자족 공동체를 통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잼 연주와 음악에 대한 열정과 탐구심이 남달랐던 데드의 멤버들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장르에 걸쳐 매공연마다 다른 잼 연주를 선보였고 팬들은 그들의 공연에 자연스럽게 호기심과 기대감을 가지게 되었고 모든 공연에 참석하고 싶게끔 만들었다. 처음에는 공연에 가지 못한 데드헤즈 지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부틀렉 테이프는 밴드의 전폭적인 독려에 힘입어 적극적으로 녹음되었고 배포되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관중 동원력 증가로 이어졌다. 보시다시피 이들의 마케팅은 자연스러운 행동과 그로 인한 필연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데드는 히피로서 자유의 기치를 중요시하고 모든 사람들과 자유롭게 관계를 맺기 위해 거처를 개방했을 뿐이다. 교류와 교감을 통해 충직한 팬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다. 데드는 음악이 좋고 연주가 좋았다. 끊임없는 창의력과 연주력을 요하는 잼 연주를 좋아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팬들에게 다음 연주는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도적 행위가 아니었다. 그레이트풀 데드는 데드헤즈들에게 체계적인 공동체를 만들라고 지시한 적도 없고 공연장마다 마켓을 열어서 굿즈를 만들어 팔라는 지시 역시 한 적이 없다. 오로지 데드헤즈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발전한 문화였다. 데드는 그저 미국과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연주여행을 함께 할 친구들로서 데드헤즈를 받아들였다. 그저 자신들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을 관철하였을 뿐이었는데 이 것이 궁극적으로 혁신적인 마케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것이 현재의 고도화된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마케팅 산업에서도 그레이트풀 데드와 데드헤즈의 관계성과 마케팅법은 많은 연구점과 시사점을 제시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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