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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Mar 31. 2024

애 좀 하나만 낳아보라니까

말로 살인을 하고도 남을 사람들을 위하여



"거 하나만 낳아봐."

"애를 낳아야지 안 낳아 그럼!!?"

"그래 얼마나 좋아 애 키우면서 사는 재미가!??"


아들에게 준다며 건물을 허문다는 지역유지부부.

자신들도 그 부모에게서  대대로 받은 건물을 신축으로 올려 물려줄 생각인 건지, 영업중인 매장에 연초가 시작된 저녁 와서 이 건물이 낡아 증축이 안되고 재건축을 할 생각이니 이전을 알아보라는 얘기였다.

지금 얘기해야 좋다고 절에 다녀왔다는 말과 함께.


이미 동네에서 꽤 비싼 월세로 상가 사장님들 빈축을 사던 인심을 하도 옆에서 들어서, 나는 이 사람들하고 엄청난 정이나 인연을 만들어갈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그저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의 의무와 책임을 서로 다하고 말끔히 관계를 종료하고자,무던히 애썼다.

아니.

애를 쓰다 못해 그 평온함을 위해 나를 썰었던 것 같다.


남편의 가게를 정리하면서, 7년의 시간의 종지부를 찍고자 건물주 부부를 만나 인사를 드리고 헤어지는 데서 툭 내뱉은 잔소리의 주인공은 남자사장S였다.

영양제와 나름 준비한 선물을 주섬주섬 차에서 챙겨 나와 건네고 아직 받지 못한 세금계산서를 다음달 초에 받으러 오겠다며 헤어진 내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남자사장S.

일전에 같은 상가에 전세로 있던 인테리어가게사장님 J는 우리보다 빨리 1월에 영업종료가 되어 나가는 시점에 안주인 사모와는 하지 않아도 된다던 막이벽 공사를 S가 되려 전화해서 왜 안하고 나가냐 전화가 왔었더라며 퍽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실세가 사모라 그런가 했는데 오늘 보니 알겠다.


그냥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아유 개냄새가 많이 나네."

"아니 이거 뽕나무가 많이 상했구나."

"이거 폴딩 비싸게 해가지고 참."

"저기 위에 저건 왜 안 치웠대?"


누가 봐도 전문업체를 불러 깔끔하게 치워놓은 자기 건물의 두 칸이다. 재활용센터가 20년쓰고 나간 유리까지 깨진 도어를 430만원을 들인 폴딩도어로 꾸미고 에폭시까지 정성스레 깔았던 공간. 심지어 옆가게 사장형은 우리에게 미친 거 아니냐고까지 할 정도로 재건축으로 철거할 건물을 굳이 간판까지 내렸냐며 혀를 내둘렀다.

"말 나오는 거 싫어서 최대한 깨끗하게 했어요."

나는 이 사람S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알기도 했지만, J의 팁 덕분에 가게를 철거하기 전 미리 안주인인 여자건물주 사모에게 언질을 줬다.


"사모님, 여기  철거업체 불러서 싹 치우긴 할건데,

조금 덜 되는 부분이 미흡할 수도 있어요. 혹시 작은 옆간판 한개나 수도쓴 싱크대는 건물 철거하면서 같이 철거 좀 부탁드릴게요."

"응 그래요~일단 하는 데까지 해봐~."


그 하는 데까지 한 결과에 사모는 잡지 않는 꼬투리를 S가 잡고 늘어지고 있었다.

유도리있고 강단있는 여자사모와는 달리, 그의 남편인 S는 어딘가 괴팍하면서 좀스럽다.




이런게 갑질이면 갑질일까.

일전에는 자기 친구들 여럿을 자꾸 우리 가게로 굳이 불러내서 새댁 커피좀 줘봐 하며 오전 내내 건물주 티를 내느라 바빴다.

오전에 손님 상담하고 가게점심을 만들어 먹이고 치우고 물건을 포장하다가도, 건물주 패밀리가 나오면 인사를 꽤 싹싹하게 했다. 그 S의 친구 하나가 내가 구워주는 와플을 먹다가 '남편 잘 만나 아무것도 안하는게 믹스커피만 잘 타면 되지 뭐 할 게 있냐'며 심기를 잘 건드려주기 전까지는.

 덕분에 내 본성을 보여주고 그 뒤로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러 가게를 들어오지는 않게 되었다.

영업과는 거리가 먼 남편의 성향 덕분에 카다로그도 내 손으로 만들고 거래처에 전화하는 일부터 수금까지 모든 게 내 일이 되던 '남편의 장사'를 하면서 겪은 여러 "거지같은 일"들 중 하나였다.


내가 어떤 커리어를 쌓고 경험을 했고 어떤 성향을 지닌 사람인지를 보려하기보다,

그저 내 남편의 기준으로만 나를 본다. 마치 원플러스원 상품을 대하듯이. 아마 내 이름도 모르겠지.

같이 일을 하기 때문에 자동으로

할거없는 여자, 능력없는 여자, 커피만 잘 타면 되는 여자로, 가끔은 남편 바가지를 긁어 낚시를 다니게 하는 마누라, 가끔은 남편이 바람날 까 노심초사해서 영업사원 회식을 따라다니는 독한 와이프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영어를 쓰는 무역일을 했다거나 유럽출장을 다녔다거나 두루두루 도움받은 지인들이 조금 있어 얘기를 하거나 자기들 기준에 내가 생각보다 의외인 모습들을 보이면 "니가?"하는 얼굴로 당황해하는 얼굴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글을 쓰다보니 반은 남편의 취미가 그저 낚시인 점, 남편이 영업성격이 아니니 자꾸만 나를 끌고 가야 하는 점 등 내 남편이 만들어낸 오해이기도 하다)


"새댁!이거 좀 해봐봐."

"새댁!이거 일로 좀 와봐."

"새댁!거기 있어?"

본인 건물 옥상에 물이 얼었다 녹으며 타고 내려와 우리 상가 벽에 물이 찰박거려도 관심이 없고, 옆 식당 형이 화장실 전기공사 다시 해야 할것같다 위험을 알려줘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던 구두쇠. 왠일로 자기 건물에 위험이 될듯 싶으니 나에게 남편가게의 열풍기로 얼어버린 파이프를 좀 녹여달라는 요청.


우리가 개를 키우는 게 거슬려 가게에서 개냄새가 난다며 냄새 얘기를 하더니(손님들은 시바를 키워서인지 집으로 애기를 데려가서인지 매장에 개냄새가 왜 안나냐고 물어보던 7년이었다)정작 본인은 닭과 오리를 키우는 정성.


뜬금없이 일요일 아침 7시에 전화해 나 건물주입네 하면서 주차장에 잘 대있는 차좀 빼라는 몰상식한 전화나 받아본 게 그의 가족들 덕분이었다. (전화를 건 아들은 앞뒤없이 주차장에 떡하니 놓고 쓰던 자기 컨테이너를 지금 당장 써야하니 빨리 와서 차를 빼라는 얘기)

.....

남편은 시골결혼식에 와 이리저리 치이다 겨우 잠이 든 그 아침을 깨운 몹시도 싸가지없던 건물주 아들 말투에 뚜껑이 열려 그 엄마인 사모에게 전화를 걸어버렸다.

"주차장에 주차하라고 놔진 데다 손님 차 넣어놓는 거 알면서 왜 미리 말은 안 해요?아니 그리고 사장님이 건물주지 사장님 아들이 건물주에요?건물주면 뭐 맘대로 아침 일찍부터 전화해서 주말에도 차빼라 하면 차 빼줘야 하는거에요?"

"아니 그게~아들이 급하게 짐을 빼쓸 게 있어서~"

"그럼 말을 그렇게 나 건물주야 차 빼라 할 일이에요?최소한 하루전에 얘기나 못했으면 좀 급하니 이만저만해서 차 좀 빼주면 좋겠다 말을 해야 할거 아니에요.우리 지금 시골 결혼식 와있는데 뭐 어쩌라고 지금 아침 댓바람부터 진짜."

결국 아버지인 남자사장이 아들이 뭘 잘 몰라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며 넘어갔다.

우리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어도 세입자니 꼬우면 나가야지, 하며 넘겨왔던 큰일아닌 큰일들이었다.




"그리고 애도 좀 하나 낳아봐!아 이제 하나 낳아야지!"

최근 나와 동갑인 딸이 둘째를 낳아 손주보는 재미가 좋아서일까.

왜 너희는 그 즐거움을 자꾸 모르고 살려는 건지, 그것이 안타까워서인지

자신만 고생을 한다는 생각에 우리도 빨리 같은 육아의 세계에 동참을 하지 않는 것에 부아가 치미는 건지

아이없이 사는 우리의 삶을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S의 걱정하는 척 질책하는 말투는 확연하게 귀에 꽂혔다.

"헤헤. 그러게요. 참 생기면 좋은데.."

이쯤 얘기하면 그냥 아이고, 내가 별 말실수를 했구나, 하고 어서 들어가봐 하면 될일을

끝까지 국위선양하는 사령관처럼 뒷짐을 지고 내가 꽤나 대단한 할아버지다, 하는 얼굴로 턱을 들고 인사하는 S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차에 탔다.

"아. 그냥 애 키울 돈 좀 빌려달라고 해볼걸 그랬나.?"

"으이그. 냅둬. 생각없이 뱉은 말에 다 응수하려고 하지마. 기분좋게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자."

그나마 고마웠다는 사모의 문자에 예의있게 감사했다는 답장을 남기고, 우리의 대화는 기분 상하지 않을 주제로 바뀌어갔다.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있다.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광신도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가 아닌
상부의 명령에 순응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었음을 말하는 개념으로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어쩌면 이 건물주와 그 자녀들물려받은 부유함이 저런 무능을 낳게 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건 그냥 의식의 차이이자, 돈으로 살 수 없는 배움의 부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학업 가방끈이 짧다 하는 배움이 아닌 인간성의 결여나 도덕성 결여같은 배움의 짧음을 뜻함)

돈이 있어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을 배려할 필요가 없는 환경에 노출된 가방끈 긴 건물주의 자녀들.

고양이 모래를 봉투없이 버리고, 트로피처럼 아버지를 졸라 개를 샀다가 산책하기가 귀찮아 아버지 친구에게 줘버리는, 그런 자신의 딸이 이대를 나왔다며 기쁘게 자랑하던 지역유지 할아버지S.


  이대 씩이나 나와서 자기 아버지 가게의 경리를 했어야 했는지까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대를 나오지 못한 나는,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나는,

강아지를 쿨하게 남에게 줄 배짱이 없는 나는,


그저 오늘을 끝으로 가게를 접는다는 사실에

수많은 응원을 내주기 바쁜 나의 가족과 지인들의 따뜻한 말과 진심어린 조언들을 귀에 담아 새긴다.


점점 물욕,돈욕심이 없어지는 게

저런 부유함을 지녔어도 없느니만 못한 사람의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더 심해지는 것 같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가치에 보답하는 삶을 살기 위해 움직일 뿐이다.

혼자서 살 수 없음,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래도 가치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죽을 때 웃으며 죽고 싶은

멀지 않은 나의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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