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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Apr 08. 2024

봄,사랑,벚꽃말고 다육이

시간은 신이다



동생집에서 같이 구경하기로 한 아파트 바자회 소식을 듣고, 우리는 부랴부랴 경기광주에서 수원 고색동의 동생집으로 떠났다.

그리고 비가 오는 바람에 취소된 바자회 대신,

황구지천에 가기로 했다.

나는 한번도 키우지 못하고 죽이기만 하는 식물들을
시부모님 시누를 비롯해서 큰엄마와 그녀의 딸인 내동생은 척척 너무나 잘 키운다.
식물살리는 금손들과 식물킬러 나. 나는 그래서 내 동생이 많이 부럽다.

동생이 키우는 여러 식물들. 식물킬러에게는 그림의떡.

"이씨, 4년 살면서 야시장 한번도 못 갔다고!!오늘은 언니도 보여주고 나도 보고 싶었는데...."

"야야 뭐 다음에 보면 되지. 이따 황구지천 산책이나 가."

 동생은 울먹이다가 갑자기 이내 좋은 생각이 들었는지 웃으며 다육이랑 벚꽃을 보러 가잔다.


그러네. 이제 벚꽃이 만개했겠구나.

2년 전 덕구가 살아있을 때 어렴풋이 강아지산책길에 본 벚꽃들. 

사람이란 동물은 참 간사하기도 하지.

덕구가 죽고 벚꽃놀이는 더이상 갈 필요가 있나 싶었다가도

덕구 못해준만큼 복구한테는 더 잘해주란 동생말에 이때다 싶어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날이 참 연하늘빛으로 따스했다.

황구지천 산책중인 복구,복구이모,복구아범

고색동은 수원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동네로, 이제 지하철역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동생은 이 동네가 많이 낡고 시골스러워 싫다지만 시골촌년인 나에게는 가장 살고 싶은 동네.


벚꽃과 개나리가 사이좋게 피어난 황구지천을 걷노라면,

신선놀음이 부럽지 않다.

개구쟁이 덕구를 떠올리는 색이 블랙 아니면 노랑이어서인지 나는 자꾸만 벚꽃을 보러 와서도 개나리를 찾는 이상한 여자가 되어있었다.


멀리 지천으로 피어난 벚꽃과 개나리들.

그 와중에도 당연히 메인은 저 연분홍빛 벚꽃,

4월은 이렇게 따스한 봄볕이 함께 우리를 맞아주는 것만 같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의 세월들을 보상해주는 것처럼,

벚꽃이 살랑이는 바람이 제법 간지럽다.

다육이축제를 알리는 황구지천의 플래카드

축제가 올해 시작한 건지 어수선하고 준비가 덜 된 느낌의 다육이축제는 어느 작은 농장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동생이 키우고 싶어하던 천대전송 다육이 화분을 하나 사주었다.


종류도 모양도 색깔도 다양했던 다육이들
열심히 설명해주는 농장사장님

"언니 나는 이미 다 꽃핀 애들 말고, 내가 처음부터 물주고 정성들여 키울 수 있는 다육이 사줘."

사장님이 여러가지 꽃핀 다육이를 보여줘도 내 동생은 처음부터 자기 손으로 피운 꽃을 보고 싶은 모양이다.

꽃피우기 힘들다는 천대전송을 사줘본다

대리만족을 할 심산으로 동생이 마음에 들어하던 다육이화분을 기분좋게 사주고 남은 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점점 무거워지는 이모집 강아지

"복구 사진 많이 찍어주자."

강아지가 벚꽃놀이의 기쁨을 알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적어도 집 안의 공기보다는 바깥공기에 코를 대고 행복해하는 복구를 위해, 세 사람은 그렇게 100분이 넘게 고색동 황구지천을 거닐고 또 거닐었다.

벚꽃이 만개한 황구지천

별다른 걸 하지 않아도 걷기만 해도 눈 앞에 축복같은 벚꽃잎이 날라다니는  이 길들.

봄은 봄이구나, 하고 인파들 속에 같이 거닐며 곳곳의 풍경을 담아본다.

죽은 덕구를 빼닮았던 동네 어귀 댕댕이

덕구가 생각나는  봄산책길. 때마침 덕구를 닮은 강아지 한마리가 우리가 지나가니 엄청나게 짖어댄다.

"쟤 귀접은 덕구같지 않아?"

"으이그 이 언니 또 덕구생각했지?하여간 못말려."

녀석은 이미 천국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또래강아지들과 벚꽃파티를 열고 있을 것만 같다.

**강아지는 벚꽃을 먹으면 위험하다고 해서 내내 복구가 입을 벌리지않을지 걱정했다.

늘 복구는 이모집 베란다였던 공간에 눕는다.

덕구에게서 내가 받은 6년이라는 시간동안 행복의 가장 달콤한 순간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덕구를 데리고 오게 된 배경에 항상 더 먼저 닿아있는 첫째, 복구에게서 받고있는 지금의 위로들은 두 녀석이 함께 있는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따스하고 사랑스럽다.


그런 복구를 어쩌면 나보다 더 사랑하고 있는 나의 동생에게,

그녀가 복구만큼이나 정성들여 가끔씩 보살펴 자신의 애정과 관심을 쏟을 대상을 위한 시간을 선물했다.


덕구와의 추억에 미련맞게 멈춰 있던 내가

죄책감과 원망의 굴레에 갇혀 나를 탓하기 바쁘던 내가

하루라도 빨리 세상이 끝나고 덕구를 만나러 가고싶었던 내가,


여전히 살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런 나를 만들어준 것은 바로 시간.

시간은  절대적인 신이다.

하루가 24시간으로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자연적 순리대로라면 우리 모두는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모두 죽는다.(질병이든 사고든 기간이 어떻든)

어쩌면 시간은

우리가 믿는 어떤 신보다 공평하고 대단한 존재가 아닐까.


시간이라는 신 앞에 다시금 경외를 표한다.


덕구가 주고 간 시간들보다 더 큰 시간들을

덕구에게 받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덕구가 그랬던 처럼 씩씩하게 살자.

그리고 오늘은 그 사랑을 사랑스러운 복구와 내동생, 나의 남편에게 바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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