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구가 냄새맡으러 가지 못하게 줄을 짧게 잡고 쭈그려앉아 그 작은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몸길이 15cm남짓한 그 작은 체구로 몇 달이나 이 생을 살았을까.
피는 흘린 흔적도,
누군가에게 공격당한 털빠짐도 없이
눈을 반쯤 뜨고 입을 벌리고 죽어있던 아기고양이.
아마도 무언갈 잘못 먹은 게 아니었을까.
한참을 서 있다가, 031 120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여기 아기고양이가 죽었어요....."
"네 그러시면 위치 확인 좀 할게요."
감정없이 매뉴얼대로 위치신고를 받아적었을 상담원이 야속했지만,
그녀가 고양이나 강아지를 좋아해야 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이 아이를 빠르게 자연으로 보내주는 일이 사회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걸지도.
그러나 나는 질척거리는 인간,
모든 것에 의미부여를 쓸데없이 하는 걸 좋아하는 모자란 인간인지라,
이 아이를 그냥 보내는 게 너무 휑하고 속이 아팠다.
정확하게는 우리 덕구를 보내던 2023년 6월 처럼
속이 뻥 뚫린 것 같고, 심장이 옥죄어 오고 그런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왜 내 고양이도 아니고,
심지어 오늘 처음 본 고양이인데?
눈물까지 흐르는 나를 달래봐도 이건 진짜 왜 이러지 싶었다.
그리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죽음이라는 걸 떠올리는 게 두렵고, 아프고, 미안한거구나.
덕구를 보낼 때 그 죄책감과 자괴감과 절망감만큼은 아니지만,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갔을 이 아기고양이가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덕구와 같아서
더 감정이입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 자리를 아기고양이가 떠날 때까지 지키고 싶었는데 복구가 또 산책을 못하니 버꾸 보채느라 울고 짖어서 지나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7분 후에 다시 돌아왔다.
눈에 밟히던 이 아가를 위해 뭐 하나라도 주고 싶었다.
장례식 빈소에 가면 국화 한송이를 헌화하듯이
이 아이가 떠난 자리에도 작은 명복을 빌 거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아기고양이를 위한 작은 조화
게다가 바람이 불어 날아갈까 걱정이 되니 단단해보이는 솔방울도 하나 엮고
그걸로도 시청에서 못 찾을 수도 있겠다 싶어 복구 산책가방에 묶여있던 미니스카프까지 묶었다.
너의 다음 생은 훨씬 행복하기를
길가에 알록달록 어린이들 솜씨
동네 개와 신경전
지구에 덜 미안한 배변봉투는 생분해용으로
아마 청소부들이 와서 일반쓰레기에 넣어 태울 게 뻔하겠지만, 그거 못찾게 숨겨서 썩게 두는 것도 속상하고, 어디 데려가서 묻어줄 땅도 상황도 아니고(개 산책중)
그래서 그냥 다음 생애는 조금 더 오래, 이왕이면 아프지말고 단단하게 원하는 삶 살다 가라.. 이런 마음으로 그냥 길가에 있는 작은 꽃,낙엽으로 무언가 옆에 놓아주고 싶어 마음가는대로 했다.
내 마음 편하고자 한 짓이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 외롭지 않길.
집으로 돌아오니 내가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덕구는 왠지 고양이처돌이니까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덕구야 엄마 잘했냐?
저녁을 먹고 오랜만에 내가 가입한 카페에서 한창 날선 비방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람들의 댓글을 하나씩 훑어봤다.
그리고 조용히 아까 본 아기고양이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적었다.
철없이 남긴 댓글로 시작해서 여기 언니들 따끔한 조언도 있었고, 신혼초 속터지는 글에 같이 화내주던 언니들도 있었고, 이제는 마흔 바라보는 나이다보니 저보다 어린 친구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멋진 공간을 만들지 사라지는 폐급 카페로 만들지는 우리 손에 달린 것 같아요.
오늘 우리는 살아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다 죽을거구요. 나이 말고, 성별말고, 그냥 한낱 인간. 다 똑같은 인간. 우주먼지같은 하찮은 존재들인데 아기고양이처럼 죽으면 이제 더이상 만져지지 않을 가슴아픈 존재들인데 너무 서로 할퀴고 물어뜯지 않고 걱정해주는 마음 적당하게 응원해주는 마음 넘치게 공감해주는 마음 넉넉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