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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먼지 Dec 12. 2024

파업 끝 계엄 끝 일상 시작?

미묘하게 달라지고 달라질 대한민국



불안에 떨며 오지 않는 지하철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파업이 있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 남편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출근하는 데 불편함이 없기에 파업이 그렇게 난리인 지, 파업기간의 그 분노를 머리로는 입력해도 가슴으로는 느낄 수가 없다.

다만 출근길 뚜벅이의 짜증과 화를 예상해서 젠틀맨 버전을 잠시 장착하고 가슴으로는 이해가지 않는 와이프의 화를 토닥거려주는 기특함을 보일 뿐.


그와 같은 맥락에서 어떤 파업이든,계엄이든, 범죄든

자기와 [상관없는] 일일 때 철저하게 이방인이 된다.

힘들게 일하러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계엄과 파업이 더블로 피로감을 주는 지금이 적기다(안걸리겠다) 싶었는지

한적한 농촌에서 마약파티를 벌인 베트남국적의 6명처럼.


12월 3일 10시 23분 에 어느 예비독재자의 입에서 나온 계엄도

12월 4일 00시 40분 3시간도 안되어 끝나고

(김옥균의 삼일천하도 아니고 3시간 천하가 끝난, 그러나 그 속에는 연봉 올리는 때만큼 발빠른 국회의 집결, 깨어있는 군인들의 항명, 그리고 잠들지 않았던 국민들의 의지가 있었다.)


11월 19일 태업으로 시작해

12월 6일 총파업으로 들어간 지하철 일부노선과 철도노조도 12월 12일 파업을 끝냈다.

여기에는 노사간의 임금타협안의 끈질긴 접촉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그래도 눈치는 있는 선에서 파업까지 유지시켰다가는 발을 묶인 시민들한테 흠씬 혼이 나기가 싫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거 왜 오빠가 학교 제끼고 오락실 가서 엄마한테 뒤지게 혼날 때, 괜히 더 일찍 일어나서 엄마 신경 안 거슬리게 학교에 착실히 등교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건가.


이유야 어찌 됐든

평온까지는 아니지만(계엄,파업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래도 내가 건너야 할 횡단보도를 이제 다시 제 시간에 걸어서 건너도, 나는 구로행 지하철을 몸을 구겨넣지 않고도 탈 수 있다.

환승하고 나서도 강추위를 30-40분 가까이(밀려든 인파에 지하철 몇 대를 그냥 보내거나) 오랫동안 맞지 않아도 된다.


1개월에서 조금 늘어난 5주 교육동안 12시간의 스파르타 교육을 받게 된 남편도

턱밑까지 찰랑대는 간당간당한 피로와 불쑥 대출금의 늪에서 휘적거리는 이 일상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감사하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지하벙커에 갇히지는 않았으니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무겁게,

우리나라는 그 후폭풍을 감당해내야 한다.


애국심없는 외국인들에게 마약파티를 한 죗값은 물을  있지만

이런 시국에 라는 말로 애국심을 강조할 순 없는 일


전두환이 차지철이고 싶었던 자들에 대하여.

그 위법성과 계엄시도가 어떤 의미인지 말로 법으로 구속할 수는 있지만

그들에게 진심어린 국민에 대한 반성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

그날밤 조용하게 방관하던

고위공무원들은 입을 꾹 다문다.


대통령이 오전에 다시 내놓은 대국민담화에

국민은 없었다.


오직 사탕을 뺏기기 싫어하는 아이의 떼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심지어 그 사탕,

다른 이가 먹는 거 절대 못 보겠어서

그것도 우리 유치원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친구가 먹는 게 보기 싫어서

사탕을 이리저리 굴리고 으깨버리고 만


한 마리의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 울부짖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런 나라일 것을 알았다면

독립운동가 조상님들이 애써서 구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열심히 목숨을 바쳐 구한 나라가

점점 퇴보하다가 사라져버릴 거라는 걸 알게 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이미 외교는 와장창 아사리판이 나고,

해외 사는 친구들은 이제 북한보다 남한이 더 위험하다 여긴다.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원수씩이나 되시는 분이

그토록 분노조절과 상황판단이 안되시면

얼른 자리를 내려놓아야 맞는 것 아닐까.


후대에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펼져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조금 더 자주

눈과 손과 발을 무디지 않게 해야겠다.

흐리지않고, 무뎌지지 않는 관심이 필요해보인다.


차가운 감은 일상 그림자 뒤 한켠에.

따뜻한 맘은 대부분의 생활에.


온전한 정상화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걸어서 나간다.

저마다의 촛불을 가슴에 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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