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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Dec 27. 2023

더 이상 『나 홀로 집에』를 보지 않는 이유

일상기록 단수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2010년 12월은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마지막으로 본 해이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본 해는 언제일까. 정확하게 기억하진 못하고 대략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머니가 빌려다 주신 VHS 비디오로 본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워낙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도 12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혹은 크리스마스 당일에 챙겨 봤었죠. 이렇게 계산하니 안 본지도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내용은 생생히 기억나는 듯합니다. 우리 케빈 형의 활약과 불쌍한 강도들 그리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케빈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주변 어른까지. 물론 뒤늦게 땅을 치고 후회하며 케빈을 찾는 케빈의 부모님도 잊을 수 없군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야 케빈이 펼치는 웃기면서도 순수하고 모험심을 자극하는 활극에 눈을 더 뺏겼더랬죠.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읽었을 『톰 소여의 모험』 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때의 순수한 마음은 여전히 조금은 남아있어 미국 유학 당시 거주했던 지역을 관통해 멀리 뻗어가는 강을 처음 봤을 때도, 『무한도전』에서 자체 제작한 뗏목을 타고 한강을 종주할 때도 여전히 케빈과 톰과 허클베리가 떠오르긴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 홀로 집에』를 본 미국 생활의 2010년에는 다소 다른 점을 느꼈습니다. 이때는 나름 미국 문화라는 것을 다양하게 접했던 시기이고 그러다 보니 전형적인 크리스마스의 풍경이라는 것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죠. 눈이 내린 거리에서 창문을 들여다보면 따뜻한 벽난로가 피어있는 거실이 보이고 풍성한 음식이 자리를 차지한 큰 식탁이 놓인 거실 그리고 둘러앉은 단란한 가족 혹은 친척까지. 거실 한쪽의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놓인 선물 꾸러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지 않은 채 박제된 사진은 계속해서 선명하기만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애초에 우리 고유문화와 전혀 상관이 없고 저 또한 무교이기 때문에 이날은 많은 공휴일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크리스마스가 쭉 영향을 끼쳤던 것도 사실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이에게 연말을 기대하게 하는 특별한 날인 것은 분명하죠. 한국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쭉 커왔던, 중간의 몇 년을 제외하면 계속해서 살고 있는 저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과거를 돌이켜 봐도 크리스마스가 무언가 특별한 날로 기억될만한 것을 한 적이 없습니다. 가족과도 마찬가지이고 연애를 할 때도 이상하게 타이밍이 안 맞았었죠. 

2010년이 『나 홀로 집에』를 마지막으로 본 해가 된 것은 전적으로 당시의 제 선택입니다.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렸죠. 크리스마스라는 날에 대해 옛날과는 다른 점을 이때 느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집에』를 보면 제가 가지고 있던 미국 문화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의 모습은 찾기 어렵습니다. 대가족이 모이지만 정작 당일에는 어디론가 꼭 여행을 떠나고 케빈만 홀로 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나 홀로 집에 2』의 경우 케빈마저도 타지에서 혼자 온갖 고생을 다 합니다. 결국 케빈을 지극히 사랑해 마지않는 부모님과 극적으로 재회하지만 말이죠.

2010년의 크리스마스 낮에도 『나 홀로 집에』 1편과 2편을 이어서 봤습니다. 하지만 이전만큼 재미있지는 않다고 느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오히려 기분이 다소 좋지 않아 줄담배를 피웠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흡연자였으니까요. 그리고 다소 충동적으로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앞으로 이 영화는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강한 다짐을 했었죠. 지금까지 이 다짐이 이어져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결심이 습관이 되고 관성으로 이어져 지금은 굳이 찾아보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다만 그 결심의 이유를 한동안 찾지 못하고 잊은 채로 살다가 몇 년 전에 불현듯 깨닫긴 했습니다.

미국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 한다면 2010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슬럼프에 빠져 몇 달을 방황하며 살기도 했고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했으며 미국 생활 모든 것이 다 의미 없게 느껴진 해였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나를 괜찮다고 위로해 줄 누군가를 말이죠. 잘잘못을 떠나서 그저 따뜻하게 안아줄 누군가를 말이에요. 동시에 스스로를 다그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겉으로는 애써 포장하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고 자부심을 느낄 만큼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고, 부모님의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이곳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나 자신을 미워했던 때였습니다. 

『나 홀로 집에』 속 케빈은 용감합니다. 순수하면서 착하기도 합니다.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 타인을 사랑하는 따뜻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케빈의 부모님은 어떤가요. 어릴 때 영화를 봤을 때는 케빈의 부모님이 다른 자녀만 편애하고 케빈을 미워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케빈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케빈을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달려옵니다. 

이 점을 깨닫게 된 2010년 12월 25일은 그래서 케빈을 질투했던 것 같습니다. 저 조그만 아이가 홀로 집을 지켜내고 타지에서 용감히 살아남는 모습과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자괴감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케빈을 찾아 한달음에 달려와 앉아주는 케빈의 부모님이 마냥 부럽기도 했습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도 했죠. 그래서 홧김에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리니 별생각을 다하게 됩니다. 당장 이 영화를 안 본다고 해서 당시 가지고 있던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홧김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지금은 나이를 더 먹은 것도 있고 그 시간 동안 인생 속에서 또 다른 많은 일을 마주했으며 더 이상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만큼 덤덤해지기도 했습니다만 여전히 크리스마스가 되면 당시의 일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덤덤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제해뒀던 크리스마스의 풍경은 이미 떼어내 버렸음에도 말이에요. 그렇지만 더 이상 『나 홀로 집에』는 보지 않습니다. 볼 생각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체질이 조금 유별나서 상처가 나면 꼭 흉터가 남기 때문입니다. 흉터가 눈에 안 보여야 생각도 안 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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