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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Apr 19. 2024

버스가 내 품 안에


비밀을 하나 털어놓겠습니다. 혹시 그 정체가 드러나진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이리저리 눈을 돌려보니 아직은 저만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관찰을 포기하지 않고 수용을 거부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깨달음을 체화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죠. 


긴 시간에 걸쳐 깨달은 만큼 쌓인 껍질이 두껍습니다. 하나씩 천천히 벗겨내면 신비로운 알맹이가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알맹이의 맛은 놀라울 것입니다. 놀람의 정도가 똑같다고 섣부른 확신을 드러내진 않겠습니다만 한편으로 제 속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분명 다 놀랄걸. 몰랐다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손뼉을 칠걸.'


10년은 훌쩍 넘은 것 같군요. 패기 어린 허세는 갈무리해 직접 몰던 자동차는 한쪽에 미뤄놓고 버스에 올라타는 시간이 꽤 많이 흘렀습니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중간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도, 심지어 서울로 넘어갈 때도 거의 항상 버스를 이용합니다. 불편하지만 꽤나 적재적소에 편성된 버스 노선도를 보면 간혹 감탄을 하게 됩니다. 


주의를 잠시 환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자칫 오해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서울 몇몇 중요 지역의 버스 정류장은 제 비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워낙 많은 승객과 수요에 걸맞은 공급의 필요성으로 인해 규모가 커야 함은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깨달음의 대상은 시내 이곳저곳을 이어주는 시내버스 정류장이 됩니다. 


버스를 탈 때마다 항상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제가 목격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한번 상상해 보겠습니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저쪽에서 달려옵니다. 그리고 곧 정류장에 진입하며 정차하겠죠. 그 순간에 잠시 영상을 멈춰 봅니다. 버스가 과연 정류장 위치에 맞게, 승객이 기다리는 자리에, 승객이 편하게 승차할 수 있는 자리에 정차했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동그랗게 뜬 눈으로 맞다며 손뼉을 칠 것입니다.'


혹시나 탑승하겠다는 의사표시를 제대로 못 봤나 싶어 한때 도로에 내려서면까지 손을 흔들고 버스를 맞이한 적도 있습니다. 여전히 버스는 멀찍이 떨어진 채 멈춰서 문을 열어주더군요. 더 걸어간다면 다음 차선에 발끝이 닿게 생겼으니 겁이 나서 못 가겠습니다. 고집스레 버스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도로로 내려가 온몸으로 나의 탑승 의사를 강하게 표현합니다. 버스기사의 눈빛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갈 수 없을 때가 뒤로 물러서야 할 때라는 것을 오랜 고민 끝에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저 멀리 버스가 보이기 시작하면 정류장 구역 내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버스가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판단될 때 팔을 살짝 뻗어 탑승할 계획이라는 신호를 줍니다. 그다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멀뚱히 서서 팔만 흔들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보도블록 끝에 아슬하게 서 온몸을 내밀어도 소용없습니다. 이때는 오히려 보란 듯이 크게 한걸음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꼭 버스기사님이 그 모습을 봐야 합니다. 


랍게도 이 전략의 성공률은 상당히 높습니다. 열에 일고여덟 번은 버스가 다른 경쟁자를 제쳐두고 제 앞에 친절하게 멈추기 때문이죠. 제가 찾아낸 비밀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관점을 바꾸면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버스는 제 몸의 크기뿐 아니라 사이드미러조차 그 크기가 일반 승용차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따라서 탑승객이 보도블록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버스기사 입장에서 가까이 정차하는데 큰 부담이 생깁니다. 그때 탑승객 한 명이 한걸음 물러나 공간을 마련해 주면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 제가 기사라고 해도 그곳에 정차할 듯합니다. 이렇게 저는 제 앞에 바짝 멈춰 선 버스에 가장 먼저 편안하게 올라타게 되죠. 빈자리의 선택권도 제게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버스를 타겠다고 무작정 다가가는 것이 버스를 모는 사람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명제가 어려운 말은 아닙니다만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기시감이 잔뜩 묻어있어 필연적으로 이유를 찾습니다. 골몰하던 와중에 갑작스레 몇몇 얼굴이 떠오르네요. 버스를 지우고 난 빈자리에 그들의 이름을 채웠더니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다가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었음을, 때로는 적당한 거리와 시간과 여유를 뒀어야 하는 사실이 너무나 무겁게 가슴 한가운데를 짓누릅니다. 다가가려는 마음이 마음과 다르게 그들의 마음을 힘들게 했음을 몰랐습니다.


정류장에 선 버스가 기다리던 버스인지 알지 못한 채 올라타려고 했던 적도 있다는 사실이 또한 너무나 날카롭게 상처를 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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