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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n 14. 2024

세초(洗草)하고 남은 것, 세초(洗草)해도 남는 것

글모임_쓰기의 날들

6월 13일의 글모임


[글감] 모든 것을 바뀌어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특성/성격/조건은?




2024년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연령이 약 80세라고 한다면 얼추 그 절반은 살아온 셈이다. 세계가 급변하고 꿀렁거리는 물결 속 내가 몸담은 사회 또한 영향을 피해 갈 수 없다면 그만큼 나 또한 변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의 축이 되는 나 자신이 변했으니 축을 따라 공전하는 이 세상 또한 변했다고 해야 할까. 가장 두꺼운 변곡점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에 자리 잡고 나를 바라보는 면면의 표정 변화를 보는 것 또한 신비롭기 그지없는 경험일 테다.      


그들의 눈빛과 입 모양과 얼굴 근육을 바꿔놓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침잠해보면 몇 가지 표어가 징검다리마냥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단단하기 그지없어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은 바윗덩어리 표면을 쓸어내리니 깊게 자리한 자국이 가슬 거린다.     


1. 섬세함

파인 자국을 따라 흘러가는 물결이 그려낸 글자는 ‘섬세함’이다. 스스로는 예민함으로 종종 치환하는 이것이 삼십 대 초반 이후부터 연을 맺었던 그들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듯하다. 사랑하는 이의 매일에 관심을 가지고 기억해두는 것, 선물을 줄 때는 항상 편지를 같이 써 주는 것, 오랜만에 만나는 인연에게는 약소하게나마 반가운 마음을 더해줄 선물을 마련하는 것, 일상의 현상에 늘 ‘왜’를 던져 피어나는 파문에 온몸을 던지는 것,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을 가능한 최선의 언어로 시각화하는 것. 덕분에 글을 쓰고 덕분에 책을 만들고 덕분에 모임을 운영하며 종내에는 귀한 연을 쌓게 되니, 그들의 평가에 ‘그래요? 글쎄요.’로 대답하던 내가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요.’로 바뀌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때로 내가 품은 섬세함이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흐리게 만들 만큼 진하게 칠해진다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 무덤덤함

호들갑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평가절하의 모양새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호들갑이라고 묘사할 만한 행동을 지양하는 것은 분명하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져 앗 뜨거워하며 발을 구를 시간에 불똥을 치워내고 다치진 않았는지 다쳤다면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의도치 않은 사고로 여러 번 응급실 신세를 졌던 경험이 저 근원에 깔려 있어서인지 늘 차분하고 대화를 나누던 부모님의 영향을 진득하게 받아서인지 어지간한 일(incident)이나 사고(accident)에도 당황하는 법이 잘 없다. 아버지를 급격하게 죽음으로 몰아간 오 개월의 시간 속에서 손발을 잃은 채 허우적거려야 했던 무기력함과 좌절로 인해 이 무덤덤함이 더 단단해졌을지도 모르겠다. 해결될 일은 어떻게든 되는 것이고, 미결 기록으로 남을 것은 어떻게 하던 미결일 테니.      


3. 책임감

반성문을 열심히 쓰면 죄가 경감되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다. 반성의 기미를 보이면 피해자의 용서가 없어도 죄가 경감되는 법치주의 사회 속에 살고 있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듯하다. 꼭 부정적인 감정이 지글지글 끓고 있는 어둠의 세계에서만 생각해 볼 필요는 없다. 삶(Birth)과 죽음(Death) 사이에는 선택(Choice)만이 존재한다는, 우연히 짜 맞춘 명제에 의심의 여지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자는 선택에 이면에 자리 잡은 대가(Consequence)를 잊지 말지어다. 사랑의 상실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매일의 선택에 후회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고 뱃심으로 내뱉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까닭은 선택의 대가를 매 순간 치르고 있기 때문일 테다.      


꾸덕꾸덕한 습기가 온몸을 휘감아 내려 사지는 애처롭게 땀에 젖어가는 계절이 깊어져 간다. 적정 깊이에 도달하게 되면 곧 태풍이 몰아치고 장마 기간에 접어들게 될 것이다. 장마 전선이 한반도 상공에서 물러나고 난 이후는 어떤가. 이전의 더위는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는 듯 폭발적인 열풍을 이 땅으로 불어댈 것이다. 매년 이어지는 지루한 반복 속에서 어떤 가능성 있는 변화가 나에게 찾아올 것인지 턱을 괸 채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사뭇 즐겁다. 적어도 지금의 나를 가장 진하게 채우고 있는 모습만큼은 변함없이 굳건하기를 기원하면서, 끝없이 퍼렇기만 한 하늘에 두 눈을 던져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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