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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n 29. 2024

더운 겨울

글모임_쓰기의 날들

6월 27일의 글모임


[글감] 날씨로 기억되는 순간은?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외출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 넌 내가 겪어야 하는 더위의 잔혹함을 걱정했고, 난 너의 손발을 차게 하는 에어컨 바람을 걱정했다. 너에게는 따뜻한 햇볕이 선사하는 초여름의 온화함이 내게는 무지막지한 불볕더위가 될 수 있음을, 땀을 뻘뻘 흘리며 넋이 나간 얼굴로 괜찮다고 말하는 한강 공원 작은 텐트 안의 날 바라보며 넌 깨닫고 이후로 다시는 주말 낮의 피크닉을 내게서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맺은 인연의 다리 위로 여름은 세 번에 걸쳐 뜨고 졌지만 넌 다시는 한강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고, 네가 내린 방문 금지 명령의 목록에는 따라서 놀이공원과 그 밖의 야외활동이 전부 포함됐음을, 난 알면서도 외면했고 고마웠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혹시 네가 추위를 느낄 때를 위해 몰래 얇은 겉옷을 챙기는 것으로 갈음하면 된다 속으로 되뇌면서.


타오르는 주먹을 휘두르던 바람이 품고 있던 날카로운 칼날을 꺼내 들게 되는 시기가 오면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음을 나는 또한 기억한다. 아무리 옷을 여러 겹 껴입어도 넌 무척이나 추위에 연약한 상태에 처하곤 했다. 마치 너를 감싼 내 두 팔과 심장의 따뜻함이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내 안의 빙벽은 오랜 세월이 켜켜이 쌓여 어쩔 수 없는 두꺼움을 내세우고 있었기에 연약한 봄바람 같던 네가 불어도 녹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겨울밤, 너의 집으로 바래다주던 길을 따라 넌 때로 내 손이 버티고 있던 외투 주머니 속으로 네 손을 슬며시 집어넣곤 했다. 두 손이 주고받는 온기에 따뜻해지던 외투 주머니 속 안온한 속삭임은 어느샌가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으로 바뀌어 각자 휴대용 손난로를 사용하는 말로로 치닫게 했음을 여전히 약간은 색이 바랜 고통으로 기억하고 있다.


둘 사이를 연결한 두껍고 화려한 사랑의 끈은 그렇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올이 풀려버려 조금씩 끊어지기 시작하는 광경을 우리는 그저 두고 보기만 한 것은 어떤 연유였을지, 언젠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에 두 눈을 마주하면 꺼내어 바라볼 수 있을까.


땀을 흘리면서도, 팔 저림을 버텨가며 맨살의 온기를 늦은 밤 내내 공유했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암묵적으로 합의한 거리만큼을 어깨 사이에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기매트의 따뜻함이 괴로워 홀로 이인용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한 그 날 이후로 우리는 더이상 밤을 보내지 않았다. 칼날 같은 바람이 이제 막 흩어져 한낮의 아지랑이로 피어오르던 그때였다.


어차피 바깥 활동은 최대한 자제하는 일정과 경로를 따라가는 매일이기 때문에 아직은 바깥의 더위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6월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꺼내둔 선풍기는 하루의 삼 분의 일 정도는 보내는 책상 쪽에 두고 흐트러진 이불은 적당히 구겨 다리 밑에 놓고 잠자리에 들면 잠결에 이불을 더듬는 새벽의 끄트머리에 머무는 지금이다. 곧 날씨는 불친절한 주먹을 휘둘러 나를 때려댈 것이다. 너와 함께 했으나 너를 내버려 뒀던 그때의 나를 혼내지 못했던 만큼, 이자까지 듬뿍 부쳐 나를 때려댈 것이고 난 그저 입을 다문 채 받아들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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