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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멋지기 Jul 20. 2024

이를 꽉 깨물고

일상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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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생긴 버릇이라고 해야 할까, 현상이라고 하는 게 조금 더 낫겠다 싶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유독 더 울적함과 공허함을 크게 느끼게 된다. 더 바쁘고 더 오래 더 길게 외부 활동을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꼭 그렇다.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내용물은 전부 빠져나가고 없는 바닥 뚫린 비닐봉지가 된 기분이다.


울적함과 공허함을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면 이윽고 찐득한 욕구 하나가 고개를 쳐든다. 이 녀석은 곧 가슴 언저리를 툭툭 건들다 눈물샘까지 치고 올라가 주르륵 몇 방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이 녀석은 동시에 또한 손가락으로 이동해 몇몇 작품 혹은 배우의 이름을 검색하게 만든다. 울고 싶을 때마다 꼭 찾아보는 동영상을 찾아서 재생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그들의 세상 속에서 친구를 잃었고, 부모를 잃었고, 자식을 잃은 이들이다. 최근에는 부모 자식 간의 관계 개선을 상담해 주는 예능 프로그램도 추가를 시켰더랬다.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운지도,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면때부터 헤아리니 햇수로 12년이 됐다. 이제는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몸에 새겨진 경험조차 희미해져 떠오르지 않을 지경이다. 그저 몇몇 동영상을 번갈아 보면서 조용히 굴러떨어지는 눈물 아래 훌쩍이는 코를 닦아낼 뿐이다. 현실이 아닌 세계에서 울고 있는 그들에게 양가적인 감정을 보내며.


어떻게든 자녀와의 관계를 개선해 보고자, 어떻게든 자녀를 더 좋은 사람으로 길러주고자, 날카로운 조롱과 질타를 받을 두려운 가능성을 뒤로하고 무대 앞에 앉아있는 부모를 보며 흘리는 눈물에 조금은 다른 온도의 감정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이 깨달음은 깨달음의 깊이와 별개로 그리 달갑지 않음을 고백해야만 하고, 12년째 계속되고 있음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현실을 마주해야만 한다.


이것은 질투일 수도 있고 부러움일 수도 있다. 원망일 수도 있고 미움일 수도 있다. 그리움일 수도 있고 속죄의 마음일 수도 있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어떤 방향으로 달려 나가도 더는 마주할 수 없는 이의 부재로 인해 미결로 남아버린 복잡하고 꼬여 문드러져 가는 이 마음은 그리하여 흐르는 눈물에도 흘려보낼 수 없는 무거운 바위가 돼버렸다.


저 자리에 왜 내 아버지는 앉아 있을 수 없었는지, 왜 그는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지, 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알려주지 않았는지. 적절한 처방과 조금씩 변해가는 희망을 목격한 무대 위 저 부모의 밝아진 표정이 서럽고 원망스럽고 질투가 나기에 차마 입 밖으로 울음을 터트릴까 두려워 이를 꽉 깨문 채 수 시간을 잠재우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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