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공군 병장의 자기 계발 일지 D-132
길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 2025년이 왔다.
안 올 줄 알았는데 진짜로 왔다.
새해목표를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첫째도 둘째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전역하기”다.
1월부터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1. JLPT N3 합격
작년 한 해 동안 나의 군생활 프로젝트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 일본어 공부. 12월 1일에 치른 JLPT 시험은 1월의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내게 결과를 전해주었다. 붙을 거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크게 긴장하지는 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높은 점수에 놀랐다. 독해 만점이라니. 이렇게 된 이상 N2도 욕심이 난다.
입대하고 나서 발휘된 이 새로운 언어에 대한 탐구심은 돌이켜보면 다소 무모했다. ’일본어 무작정 따라 하기‘라는 책 한 권으로 시작해 말 그대로 히라가나부터 무작정 외웠었다. 어쨌거나 이런 나의 도전정신이 하나의 결실을 맺은 거 같아 기쁘다. 기분 좋은 소식 덕분에 상쾌하게 맞이하는 올해의 시작이다.
2. 양식조리기능사 필기 합격
조금 뜬금없지만 나는 양식조리기능사에 도전하게 되었다. 사실 원체 먹는 거에 진심인 사람이기에 요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현상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왜 한식, 중식, 일식이 아닌 양식을 골랐냐 물어본다면, 인터넷에서 양식이 가장 쉽다고 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계신 훌륭한 강사님들께 속성과외를 받았다. ’양식조리기능사 필기 2시간 총정리‘와 같은 제목의 영상을 빨리 감기로 두세 개 정도 보고,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기출문제를 풀었다.
파스타 종류나 재료 썰기 방식부터 식중독과 감염병등 생각보다 방대한 범위의 내용을 다뤘다. 독미나리에 들어있는 독은 시큐톡신, 섭조개의 독소성분은 삭시톡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학 물질 이름들은 머리에 잘 안 들어왔지만 일단 합격기준인 60점만 넘어보자는 마인드.
시험장에서 문제를 마주했을 땐 역시나 낯선 내용에 당황했다. 컴퓨터로 풀고 답안을 제출하자미자 점수가 뜬다. 거의 절반은 찍은 것 같지만 다행히 합격!
필기를 따버렸으니 이제 실기다. 아직 할 수 있는 요리라곤 계란볶음밥정도라지만 (그마저도 밥이 고슬고슬하게 잘 안된다.) 언젠간 흑백요리사 시즌 10 정도에 출연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꿈꾸며.
3. 독서
올해의 첫 책은 ‘무기여 잘 있거라’였다. 전혀 계획에 없던 독서였는데 생활관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야 책장을 펼치는 까다로운 나의 기준에도 통과였다. 무기와 작별한다는 게 뭔가 올해 전역하는 나를 위한 제목 같았달까.
일종의 연애소설이었다.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삶과 사랑의 소중함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4. 영화
시네필까지는 아니지만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1월에는 ‘서브스턴스’와 ‘퍼펙트데이즈’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두 편의 영화 모두 다른 의미로 매우 충격적이었다.
서브스턴스는 고어한 영화였다.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볼 순 없었다. 그렇지만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장면의 색감이나 연출이 훌륭하다고 느껴졌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스스로가 파괴돼 가는 끔찍한 과정. 자극적이지만 그만큼 영화의 주제의식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퍼펙트데이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남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누군가에게는 무료해 보일지 몰라도 주인공은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일상의 찬란함을 조명한 영화. 마지막에 feeling good 노래와 함께 알 수 없는 주인공의 표정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어느새 1월도 다 갔다. 1월 마지막 주에는 설날도 있었다. 설날은 참 좋다. 새해다짐을 합법적으로 다시 한번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진짜 새해’가 왔다고 말하고, 2025년 한 달이 채 가지 않아 해이해진 나를 다잡아 본다.
새해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선 행복을 습관화하고 싶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마침내’ 찾아오는 게 아님을 느꼈다. 내가 어떤 상태에 도달하거나 무언가를 기다려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언제나 행복해질 수 있는 나만의 공식을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올해에는 이전에 내가 하지 않았을 선택들을 해보고 싶다.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새로운 길로 가보고 싶다.
일단은 5월까지 남은 군생활 잘해야겠다.
조금 늦었지만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