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국제 변호사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사실 변호사 자격은 특정 국가(관할)에 한정되기 때문에, 한국 변호사 혹은 미국 변호사가 아닌 국제 변호사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말이 나타났을까요?
국제 변호사라고 하면 왠지 외국인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유창한 영어로 설득하는 모습, 비행기 비즈니스 석에 앉아 메일을 체크하고 업무를 마무리하는 모습 등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멋진 이미지가 떠오르죠. 특히 어린 시절 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거나, 왠지 어릴 때부터 외국어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분들의 경우, ‘나는 뭔가 국제적인 업무를 하고 싶다!’ 고 막연히 목표를 갖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 또한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릴 적 오빠가 보던 알파벳 책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단어도 외워보고, 고등학생 땐 중국어로 나름 전국구 수상도 해가며 왠지 모르게 나는 국제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았죠. 그렇게 외교관 혹은 국제기구를 꿈꾸는 정치외교학도로 대학에 진학해서, 우연히 듣게 된 민법총칙 수업 하나로 법학에 빠져버렸지만. 원인 모를 그 국제병 증상은 어디 가질 않았고, 결국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변호사가 하는 국제업무라는 것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는 건지, 국제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거 로펌 재직 당시 영국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부모님 손을 잡고 제게 조언을 구하러 온 고등학생부터, 최근에는 로스쿨 멘토링 행사에 참석한 2-3년 차 변호사 후배님들까지, 답을 찾아 헤매는데 속 시원하게 알려줄 수 있는 선배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토록 원한다고 믿었던 "국제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해보니까 이게 또 내가 생각하던 일이 아닌 겁니다. 주변에서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멋있다고 이야기해 주지만, 과연 내가 원하던 것이 이 일이 맞는지? 내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그 힘들던 법 공부를 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물론 나는 이 일 (혹은 직장)을 원했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도 있고, 정말 운이 좋으면, 처음부터 원했던 것이 맞을 수도 있겠죠. 지금까지 모든 경우를 다 본 것 같아요. 사람은 타고난 성정과 자란 환경이 다양하기 때문에 직업 선택에 있어 소위 뽀대 나는 간판이 중요한지, 혹은 구도자처럼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중요한지, 혹은 업무의 자율성이 중요한지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장단점을 어느 정도 알고 나면 그 정체 모를 국제병이 조금은 치유되어 좀 더 균형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처럼 일단 해 보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이게 아니다 싶으면 옮겨가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요. 하지만 이게 말이 쉽지 어느 정도의 운과 추진력, 그리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정부와 민간을 오가며 변호사로서 다양한 국제 업무를 경험하며 제가 느끼고 알게 된 점들을 부족하나마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부디 국제업무에 관심이 있는 로스쿨 지망생과 재학생, 그리고 변호사 후배들에게 커리어의 선택에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