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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송 Apr 02. 2023

2009. 3. 7. 콜롬비아, 보고타 도착

시작부터 심상치 않아

토론토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보고타로 가는 게이트 앞 늘어선 대기줄을 바라보았다. 와 이제 진짜 나는 이방인이구나. 한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내 눈엔 처음 보는 느낌의 얼굴과 말, 행동들. 조금 긴장되지만,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빈자리에 앉아 비행기 탑승을 기다린다.


에어캐나다를 타고 먼저 밴쿠버에 도착, 국내선 환승 후 토론토로 가서 다시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보고타로 향하는 길이다. 밴쿠버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이민국 직원한테 심화 심사? 대상자로 선별되었다. 왜 콜롬비아에 가냐고 해서 6개월간 남미 여행한다고, 무슨 돈으로 가냐고 해서 대학에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간다고 (사실은 마이너스 통장), 했더니 학생이냐, 그렇다. 휴학 중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민국 직원은 "Why are you so frustrated?"라고 본인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나는 그저 비행시간이 길어져서 피곤했을 뿐이라고 대답했는데 심화대상자로 선별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나쁜 답변이었다)


뒤편에 있는 별도의 방으로 불려 가서 흑인 가족들, 어느 중국인 할아버지, 젊은 베트남 여성분들이랑 한참을 대기하게 되었다. 일부러 론리 플래닛 책자를 꺼내서 보고, 중국인 할아버지가 중국어로 말을 걸어왔지만 알아들었음에도 못 알아듣는 척, 무사히 빠져나가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렸다. 토론토행 비행기 탑승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앞에 있는 이민국 직원에게 "Excuse me, officer"라고 정중하게 말 걸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Sit down!" 


이리도 엄격하시니 얌전히 말을 들을 수밖에. 덕분에 이 경험 이후 나는 북미대륙 경유 비행기를 극혐 한다.


2-3시간 경과 후, 호명되어 짐을 가지고 나가니 담당자는 쿨하게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내 배낭을 살펴본 후 여행 잘하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곤 비행기티켓을 보며 한 마디, "어! 너 비행기 늦었네? 하하" 결국 몇 시간씩 늦은 결과 토론토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보고타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보고타 공항의 첫 느낌은 왠지 낡고, 지린내가 났다. 설마 사람들이 공항에 노상방뇨를 하는 건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주재원으로 보이는 한국 남녀 분들이 정장을 입고 저 앞에 서 있어서, 나 혼자 마음의 위안으로 삼으며 입국 심사를 마쳤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우리나라 버스 터미널 정도의 시설이었다. 콜롬비아 페소로 조금 환전을 하기 위해 환전소로 갔는데 영어가 전혀 안 통한다. 애쓰는 내 옆에서 웬 백인 남자가 걔네 영어 안 통해- 라며 통역을 도와주었다. 이 친구 이름은 Leo, 캐나다 사람이다. 남미에 벌써 여러 번 왔었단다. 시간이 너무 늦어 같이 택시를 타고 호스텔들이 모여있는 라 칸델라리아로 향했다. 가는 길, 무단횡단 하는 사람을 향해 택시 밖으로 이 친구가 외친 말이 내가 배운 첫 스페인어였다. 


"Loco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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